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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2045085
· 쪽수 : 456쪽
· 출판일 : 2026-01-31
책 소개
또다시 아주 불길한 꿈이야.
너 그때도 나를 찾아올 거니?”
마침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해지는 세계
그 무수한 예감의 균열 위에 서 있던 우리에 대하여
제22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수상자
주이현 첫 소설집
주류를 거스르는 속도 감각과 독특한 색채로 불현듯 문단에 등장한 소설가 주이현의 첫번째 소설집 『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말해지지 않는 불안의 기운을 감지하는 동시에 발생하지 않는 파국에 대해 줄곧 생각하게 하는”(문학평론가 홍성희) 소설이라는 평을 안고 202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주이현은 “미지의 낯섦에서 뻗어나갈 비정형의 에너지”를 마음껏 뽐내며 “새로운 소설적 글쓰기의 출현”(문학평론가 강동호)을 예고했다. 무엇보다 주이현의 등장이 비범했던 까닭은 그가 “세상과 웹소설의 쾌속에 정면으로 맞서” 펼치는 “일종의 곡예”적 글쓰기를 통해 “독자 측의 노동을 요구하는” 과업을 감행하며 “이 시대의 성스러운 불문율을 깨뜨”(문학평론가 조효원)렸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은 그러한 과업을 충실히 이어가며 “겸허해져야 한다는 생각마저 들” 만큼 “‘자기 세계’에 대한 이 집요한 믿음”(소설가 박민정)으로 직조된 다섯 편의 소설로 묶여 있다. 싱크홀 다발 지역 P시에 살아가는 루와 주안과 율의 이야기(「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 예지몽을 꾸는 해아와 그 꿈에 나타난 미오의 유랑(「한밤의 스키틀즈」), 크고 작은 죄를 저지르는 중학생 고다와 선요의 방황(「몬 몬 캔디」), ‘보아’를 찾아 헤매는 ‘나’의 성장기(「보아」) 그리고 얼음 호수와 스키 리조트를 둘러싼 여러 인물의 삶과 관계(「백야의 문은 얼어붙지 않으며」)까지. 현실에서 반쯤 유리된 듯한 인물들의 모습은 주이현 특유의 문체로 반복과 점진을 통해 끈질기게 열거되면서 독자를 비현실에 끌어들이는 듯하지만, “책에 실린 소설 전부가 나의 현실이며 내 친구들의 현실”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집은 이질감으로 열어젖힌 세계의 틈새에서 기어코 우리가 사는 현실의 진실을 목도하게 한다.
온갖 기척으로 흔들리는 삶의 지면 위
휩쓸리는 각각의 궤적들
주이현의 세계는 ‘예감’으로 진동한다. 재난의 예감, 죽음의 예감, 이별의 예감 그리고 상실의 예감. 표제작이자 첫번째 작품인 「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에서는 재난의 기척이 “땅 밑의 소리”(p. 81)로 형상화되어 나타난다. ‘땅 밑에서 나는 소리’는 도시라면 으레 들릴 법한 소리임에도 “매일 더 멀리, 더 끔찍한 모습으로 변태하며 퍼져”(p. 82)나가는 소문에 힘입어 시민들을 공포로, 동시에 기묘한 흥분으로 몰아간다. 예견된 재난의 도래를 불안해하는 사람은 한편으로는 재난이 닥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과도 닮은 얼굴을 한다. 미래의 재난을 예고하는 소리는 이미 참상을 겪은 듯한 과거의 기억을 불어넣으며, 그들의 결말에 최종적인 사건을 배치하고는 정해진 궤도에 따라 안정적으로 비극을 향해 치닫기를 바라게끔 만드는 것이다. 소설에서 실제로 사고가 벌어지는 장면보다 그 전후로 사고의 기척과 흔적을 가늠하는 장면이 긴 까닭은, 우리 삶 전반이 예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에 잇따르는 결과가 실제로 당도하는지는 오히려 중요치 않음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또렷하게 포착하는 주이현의 시선은 비단 재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언젠가 그럴” 것 같다가 “수명이 완전히 끝장나버”(p. 82)린 현관 등이나 “빛도, 열도, 냉기도 없이 밤새 고요히 숨죽이고 있을 쇼 케이스가 등 뒤에 있”(p. 23)음을 알면서도 녹게 놔둘 수밖에 없던 아이스크림처럼, 관계의 끝을 인지하면서도 그 끝의 끝까지 차분히 겪어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루와 주안의 시간들 또한 소설 전반에 생생히 그려진다. 자전적 편지 형식으로 씌어진 「보아」는 이러한 인간상이 극도로 치달아가는 성장기이다. 소설 속 ‘나’는 예감의 세계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불안의 배면에서 흘러내리는 기대감을 탐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나’는 끊임없이 ‘나’의 곁을 맴도는 ‘너’, 즉 ‘보아’를 기다리고 추적하는 데 생애를 바친다. ‘보아’를 마주치고 그를 붙드는 순간 ‘나’의 인생이 송두리째 뒤흔들리기를 두려워하면서, 혹은 기다려 마지않으면서.
그러나 예감은 그것이 내포한 장면처럼 세계를 망가뜨리지 않는다.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무참히 다가오는 그 성질에 반해, 예감이 실현된 이후의 세계는 이전의 세계와 다를 바 없다. 「몬 몬 캔디」는 그러한 세계의 회복성 내지는 무심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고다와 선요는 만화책을 훔치고 급식을 훔치다가 종국에는 길가의 사마귀와 키우던 잉꼬를 죽인다. 그러나 세계의 손상은 고사하고 그들 자신에게 응당한 처벌조차 내려지지 않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p. 243)처럼. 고다와 선요는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마음으로 비명 소리가 난무하는 술집에 들이닥치지만, 월드컵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을 뿐이다. 단어와 단어가 맞물리는 끝말잇기의 규칙과 달리, 반드시 예감에 응하는 상황이, 상황에 응하는 결말이 잇따르지만은 않는 세계에서 어린 인물들은 규칙의 부재를 경험하며 비로소 어른이 된다.
이미 소진된 결말 앞에서
예감이라는 힘으로 세계를 앞지르는 삶
중요한 점은 예감된 것이 예감된 내용으로 일어났는지 일어나지 않았는지가 아니다. 실현 여부와 무관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반복된다는 점도 아니다. 예감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어떤 움직임이 시작된다는 사실, 그로 인해 더 많은 것이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나아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반복되기도 한다는 사실, 그 가운데 각자의 굴레에 사로잡혀 있는 삶들이 헐겁고도 단단하게 얽혀 마주 서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홍성희 해설, 「도넛이 구르는 문장」에서
예감의 향방은 세계에서 인간으로,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것일까. 주이현의 소설은 도리어 인간으로부터 출발해 또다시 인간을 그리고 세계를 밀고 나가거나 거스르기도 하는 예감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백야의 문은 얼어붙지 않으며」의 배경 중 하나인 스키 리조트에서는 눈이 무너지기 전에 다이너마이트로 미리 눈더미를 터뜨린다. “감당 가능한 수준의 눈사태를 미리 일으켜서, 큰 사고를 방지”(p. 349)하려는 이 작업은 폭발 사고로 인한 직원의 사망으로 이어진다. 예감에 대비하려는 인간의 행동이 도리어 그 결과를 촉진한 것이다. 연인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실의 예감을 먼저 맛보고는 이별을 선언해버린다. 근사한 여행을 마친 체이는 시나에게 헤어짐을 고하고, 여름을 함께 보내자는 한서의 제안에 백은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 편이”(p. 422) 낫겠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파라솔 아래 누운 J 위로 무섭도록 우박이 쏟아지다 어느샌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p. 425)해진 해변처럼, 세계는 어떤 일이 벌어지든 그전의 모습으로 회귀하기 마련이기에 백의 말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한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p. 423)다. 그는 “누워 있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어버”리는 미래에 안착하지 않고 “주저 없이 자리에서 일어”(p. 387)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밤의 스키틀즈」는 예감에 추동되는 인간들이 그 지향성으로부터 탈피하는 장면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미오가 나무 밑에 멀거니 선 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꿈을 꾼 해아는 불현듯 미오가 죽었으리라 생각한다. 그길로 미오를 찾아간 해아는 꿈을 통해 예감한 미오의 죽음을 실현하기 위해 그를 무수한 나무 밑에 세워본다. 그 과정에서 해아와 미오는 “눈앞에 있는” 서로를 “엄청나게 꼼꼼히 보게”(p. 126) 되고,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p. 133)게 되며, 종국에는 추락하는 홍시로부터 해아가 미오를 구해낸다. 예감으로 촉발된 움직임들이 모여들어 예감을 거스르는 방식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에서 인물들이 천사를 향해 빌었던 소원에 대한 답가는, 땅으로 떨어져 뭉개진 감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이는 예감을 맛보고도 그 예감을 모조리 겪고, 모든 걸 보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결말까지 나아가 정해진 장면을 보거나 정해지지 않은 이후를 열어가는 것이 삶이라는, 가냘픈 전언과도 같다.
세계의 불확실성을 체현하듯 더듬거리며 나아가는 주이현의 문장 속에서, 우리는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홍성희의 말처럼 “완전히 닫혀버린 것 안에서도 모든 것이 완전히 닫혀 있지는 않음을 예감하게 된다”. 그리고 삶을 이끄는 힘의 궤적과 그에 힘입어 우리가 남겨온 족적이 겹겹이 덧그려진 소설집의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그 흔적 위로 포개지는 새로운 미래의 장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목차
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
한밤의 스키틀즈
몬 몬 캔디
보아
백야의 문은 얼어붙지 않으며
해설 | 도넛이 구르는 문장 · 홍성희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드물게 올라오던 인터넷 기사 속 사진들과 주안의 잠기 섞인 이야기들이 정말이라면, 율은 그곳에서 걸음을 내딛는 순간마다 어떤 기로에 서 있는 셈이 되었다.
(「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
도시의 사람들은 꾸준히 땅 밑의 소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귀신처럼 골목 곳곳을 떠돌며, 가만하던 사람들을 미약한 흥분 상태로 차례차례 밀어 넣었다. 입에서 입으로―손끝에서 손끝으로 전해지고, 돌고 돌며 조금씩 더 험악해지던 그 이야기들은, 그곳의 모두가 하나같이 비슷한 종류의 결말을 기다리고 있으리란 인상을 자아 내기도 했다. 도시는 벌써 몇 달간 아무런 사고 없이 조용했으므로, 누군가는 정말로,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을 위험을 기다리며 모종의 지루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런 예감이 공중을 분분히 떠다니고 있었다.
(「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
이 동네, 사이렌 소리가 너무 자주 들려. 건너편에서 해아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을 때, 미오는 원래 좀 그래,라고 무심히 대답해주었는데, 그러고 나자 걸음을 걷는 일이, 나무에 몸을 기대는 일이, 해아를 돌아보는 일이, 전부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졌다. 산책로의 풍경이, 안쪽의 호수가, 그 너머의 도로가, 나아가 온 도시가, 아무것도 아닌 곳처럼 느껴졌다. 누구에게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혹은 누구에게나 비슷비슷한 일들만이 일어날 것 같았다.
(「한밤의 스키틀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