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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반환 청구소송

간도반환 청구소송

강정민 (지은이)
  |  
바다출판사
2014-08-15
  |  
13,8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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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반환 청구소송

책 정보

· 제목 : 간도반환 청구소송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5617344
· 쪽수 : 384쪽

책 소개

강정민의 두번째 재판소설.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고토회복을 공약으로 내세운 야당 후보가 당선되고, 대한민국은 중국 영토가 된 간도를 되찾기 위해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한다. 대통령 당선인의 간곡한 부탁에 독도반환청구소송을 승소로 이끌었던 김명찬 변호사와 소송팀이 다시 뭉쳐 법정 공방을 준비한다.

목차

들어가는 말
프롤로그
제1부 공약
제2부 당사자 적격
제3부 한일합병
제4부 간도협약
제5부 결정적 기일
제6부 백두산정계비
제7부 봉금정책
제8부 동북공정
제9부 백두산은 알고 있다
에필로그
작가후기
부록

저자소개

강정민 (지은이)    정보 더보기
2001년 제43회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현재 법무법인 영진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소설가로서 『독도반환청구소송』(2013), 『간도반환청구소송』(2014), 『북한반환 청구소송』(2015), 『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2016) 등 다수의 책을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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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어떻게든 이번 회담을 결렬시켜야만 하는 토문감계사 이중하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한마디 한마디를 뱉어냈다.
사실 홍토수는 말이 되지 않는다. 이중하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압록강과 두만강의 분수령이라고 한다면 홍단수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토문강이 아닌 두만강을 국경으로 만들어 버릴 수는 없었다. 청은 토문강이 아닌 두만강을 국경선으로 강요하고 있었다. 홍단수를 인정하면 모든 것이 끝나 버린다.
백두산정계비는 분명 압록강과 토문강이 양국의 경계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정계비가 세워진 지점에서 솟는 물은 분명 토문강으로 이어지고 있다.
처음부터 이중하는 청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홍토수를 주장함으로써 회담을 결렬시킬 작정이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참으면 이번 회담을 결렬시킬 수 있다. 추후 다시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우리 강토를 지킬 수만 있다면 이 한 목숨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
회담은 그렇게 결렬되었다.
그리고 135년 뒤.


“당선인께서는 왜 간도를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김 변호사의 질문에 대통령 당선인이 말을 멈추고 김 변호사를 빤히 바라본다.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이야기를 시작한다.
“제가 어렸을 때 한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를 본 적도 없고 할아버지 묘소에 성묘를 드린 적도 없습니다. 명절 때면 어김없이 선산을 찾아 인사드렸는데 할아버지 묘만 없었습니다. 한번은 너무 궁금해서 아버지께 여쭤보았지요. 아버지는 어린 저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셨는데 할아버지께선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가산을 정리하여 간도로 가셨고 그곳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답니다. 일본 관동군과의 전투에서 돌아가셨는데 워낙 급박한 상황이라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를 잃은 아버지는 간도에서 온갖 고생을 하시다가 해방 후 할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오셨습니다. 고향으로 가고 싶었지만 빈손이라 가지 못했고 명절 때만 성묘하러 갔습니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온갖 힘든 일을 하시면서 가정을 꾸리셨는데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많이 하셨습니다. 독립지사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오히려 더 힘들었다고 하시더군요. 김 변호사님, 역대 정부가 간도에 대해 적극적으로 영유권을 주장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했기 때문이잖아요. 오랜 냉전이 끝나고 중국과 수교하게 되었는데 간도 문제로 인해 한중관계가 악화되면 국익 차원에서 여러 가지 손실이 발생한다는 것 아닌가요?”
“그건 표면상의 이유에 불과합니다.”
“표면상의 이유라고요?”
“네. 간도 문제는 친일파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간도는 항일운동의 터전으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던 지역입니다. 간도 문제가 불거지면 독립운동가들이 재조명되고 필연적으로 친일파 문제가 대두되게 되어 있습니다. 버젓이 정치판에서 행세하고 있던 친일파들이 중국과의 관계악화를 명분으로 간도 문제를 회피해버린 것입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 친일파들도 모두 운명을 달리했기에 비로소 이 문제를 다룰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간도협약은 간도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의 재산을 인정하고 청인들과 동등하게 대우하며 조선인들의 간도 출입을 자유롭게 허용한다고 되어 있다. 왜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간도에 주로 조선인들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 변호사는 당시 간도 거주 인구조사통계표를 찾아보았다. 거주 인구의 80% 이상이 조선인이었다. 간도파출소에 대해서도 꼼꼼히 살펴보았다. 일본은 1907년 8월 19일 용정촌에 〈통감부간도임시파출소〉를 개설했다. 헌병 46명, 조선 순검 19명, 기타 8명 등 총 64명 규모였다. 파출소장은 사이토 중좌, 총무과장은 시노다였다. 사이토는 조선 주차군 사령부 소속으로 러일 전쟁 당시 여순 군정관을 지냈고 중국통으로 알려져 있던 자인데 파견 직후 대좌로 승진하였다. 총무과장 시노다는 국제법학자 겸 변호사로 러일전쟁 당시 국제법 고문관으로 종군하였고 나중에 《백두산정계비》를 저술하였다.
파출소를 설치하여 간도를 관리하던 일본은 1909년 느닷없이 간도를 청의 영토로 인정해버렸고 1년도 지나지 않아 한일합병이 이루어졌다.
‘간도가 한국 영토라고 강변하던 일본이 돌변한 이유가 무엇일까?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이 간도를 청에 넘겨준 이유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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