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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외국 과학소설
· ISBN : 9788956373706
· 쪽수 : 720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내가 원하는 건…… 나의 운명이야. 아마 그런 거야. 내가 되는 것, 이루어져가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한껏 나 자신을 달성하는 것.” 그러하기에 네이스미스 제독을 창안해낸 것은, 마일즈 자신의 면모 가운데 바라야에서는 발붙일 곳이 없는 면모들을 전부 붙들어두고자 함이었다.
-3장
마일즈는 선 자리에서 휙 뒤돌며, 방어하려는 듯 손을 쳐들어 옷깃을 움켜쥐었다. “내 눈 표식은 못 내놔요!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제가 설명할게요. 설명할 수 있다고요.” 방 안에 있는 사물들의 윤곽과 표면이 갑자기 이전보다 날카롭게 도드라져 보였다. 통신단말기 탁자, 의자들, 일리얀의 얼굴……. 마치 한층 증강된 현실감이 사물들에 덧씌워진 느낌이었다. 녹색 화염이 둥그렇게 팍 터져 올라 색색의 파편으로 흩어지며 마일즈의 의식을 감싸 덮어 왔다. 안 돼!
-6장
마일즈는 어떤 경과로 네이스미스를 잃고 말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실수의 한 단계 한 단계를 다. 사슬처럼 하나의 사건에서 다른 사건으로 이어진 그 참혹한 실패의 과정에, 마일즈는 사슬의 고리들을 전부 따로따로 더듬어보고 이름 붙일 수 있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보르코시건을 잃고 말았던가?
-10장
소규모의 죽음을 겪은 후에, 다리가 으스러지고 팔이 으스러지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의 전신에 가느다란 하얀 흉터로 된 지도를 남긴 그 수많은 부상을 겪은 후에도 그는 돌아갔더랬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겁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도대체 몇 번이나 죽어야 했나? 그 과정을 밟아내기 위해 도대체 얼마만큼의 고통을 삭여야 했던가?
-12장
그 시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무서웠던 시간 중 하나였다. 그렇게 기억을 잃고, 자신을 잃고……. 일리얀이 지금 현재 겪고 있는 것도 그 비슷한 것일까? 아니면 심지어 그보다도 더 끔찍한 어떤 것일까? 마일즈는 낯선 이들 사이에 빠져 갈 곳을 몰랐더랬다.
-14장
그 정체성에 대한 굶주림을 만약 예컨대 음식을 더 먹고 싶어 하는 굶주림으로 환산한다면, 마일즈는 마크보다 더한, 마크조차도 설마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고는 꿈도 못 꾸어보았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탐식가가 되었으리라. 비이성적인 게 아닌가? 그렇게 많은 것을 갖고자 한다는 것, 그렇게 고통스러울 정도로 심하게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은? 그래, 그렇다면 얼마만큼이 충분한 건가?
-20장
야, 넌 누구지?
……물어보는 넌 누군데?
생각하자 축복받은 정적이 내렸다. 텅 빈 명징함이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더없이 막막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막막한 느낌은 일종의 자유낙하와 같았다. 영원히 떨어지는, 떨어져 가 부닥칠 지면이 없는 자유낙하다. 이것은 고요함이었다. 균형 잡혀 있는, 탄탄한, 기이할 만큼 평정한 느낌이었다. 거기에는 어느 쪽으로든 쏠려 나가는 추진력 따위 걸려 있지 않았다. 앞으로든 뒤로든 옆으로든.
나는 내가 되기로 선택하는 그 사람이야. 지금까지 항상 내가 선택한 그것이 되어왔어…… 늘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 되진 못했지만.
-2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