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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6374079
· 쪽수 : 312쪽
책 소개
목차
제1장 명군, 마포나루로 침입하다
제2장 애오개 격돌
제3장 마포나루 전투
제4장 반역의 배후
제5장 승전 축하, 그리고 이별
제6장 효령 공주의 부친상
제7장 삼남 순시, 그리고 귀향
저자소개
책속에서
뒤를 돌아보니 온통 난리였다. 그 모든 것을 지휘하며 바라보는 김여서의 눈에 붉은 눈물이 떠올라 있었다.
이런 전투는 그로서도 경험이 없었다 전투 중에 부하가 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비애를 느꼈다.
이들은 내가 지켜야 하는 사람들인데 이들이 어쩔 수 없이 죽었다는 자괴감에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였다. 할 말이 없었다. 그 충성심에 할 말을 잃었다. 전투를 할 줄도 모르면서 하겠다고 달려든 열정으로 목숨을 던진 이들의 희생에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앞만 바라보았다. 쉴 새 없이 터져나오던, 끝없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명령도 더 이상 튀어나오지 않았다.
자리를 파하려는데 이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정에게는 아직 끝이 아니었다. 전면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슬픈 표정이 안타깝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는 어쩔 수 없이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일이 있다. 사양할 수 없을 때 딱 버티고 서서 운명을 맞는 것이 진정한 용기다. 이정은 그 운명을 생각했다. 활짝 열린 문과 문 뒤로 보이던 종친부의 건물들이 어둠에 희미해져갔다. 뜰의 꽃이 회색으로 바뀌고 점점이 불을 피운 바깥에 심하게 대비되어 어둠이 짙어갔다.
“아니오. 정작 나와야 할 사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이정이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니, 어쩌면 기다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기다리지 않는 기다림이다.
길이 험해졌다가 평탄해지고 다시 험해지기를 반복했다. 계속 속도가 느려지니 눈치 없는 새벽별과 깊은물이 무슨 일이 있는지 앞으로 다가와서 정성진의 옆얼굴을 얼핏 본 뒤에 꽁무니를 내뺐다.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 때문이었다.
의문이 끝도 없이 일어나고 어쩌면 잘못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이 모든 업장業障으로 계산하여 내 생애 전체가 잘못된 것이었다면 그 앞에 선 인간은 지나온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반성하면 되는 일일까? 아니다. 그것마저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을 게다. 오류와 실수 그리고 태만으로 계속된 삶일지라도 그 당시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지만 결국 스스로 바라보던 그 원래의 자리에서 멀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도를 구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천공을 우러르던 소년은 피 칠갑을 한 무인으로 무거운 업장을 짊어지고 처음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발걸음이 무겁다. 말도 그 마음을 아는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