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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설교/성경연구
· ISBN : 9788957315965
· 쪽수 : 295쪽
책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 나라를 세상 나라가 아닌 ‘하나님 나라’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이 그분의 능력으로 세우는 나라이기 때문이요, 하나님께서 지배하시는 나라이기 때문이요, 그 나라의 성격이 영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간의 힘과 제도로 완성되는 나라가 아닙니다. 다니엘에 환상 중에 본 것처럼 ‘사람이 손대지 아니한 돌’입니다. 사람이 받들고 와서 던지는 돌멩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날아들어온 돌입니다. 그 돌이 세상 국가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를 무장시키셨습니다.
(2.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다)
구약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마치 성전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미문 앞에 앉아 있었던 걷지 못하는 자처럼 어떤 면에서는 소극적인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잘 체험하지 못하는 교회요, 항상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신약교회는 걷지 못하는 자가 벌떡 일어나 성전 안으로 뛰어들어가며 “할렐루야” 소리친 것처럼 능력을 체험하는 교회요, 능동적인 교회요, 하나님을 찬양하는 교회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교회입니다.
(13. 구약교회에서 신약교회로(1))
핍박보다 더 무서운 것은 부패입니다. 핍박보다 무서운 것은 세속화요, 윤리적인 타락입니다. 나도 모르게 영적으로 잠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핍박은 오히려 우리를 잠으로 깨워 줍니다. 그러나 세속화라는 이 무서운 유혹은 우리로 하여금 병들었으면서도 병들지 않은 것처럼 자신을 가장하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목사에게도 필요하고 성도에게도 필요합니다. 예루살렘 성도들처럼 성령의 불이 붙어야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그 생활만으로도 얼마든지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하겠습니다.
(20. 부흥을 주시는 특별한 때)
헬라파 사람들도 참 은혜롭지만, 집사 직분을 모두 헬라파 사람에게 양보한 유대파 사람들은 정말 놀라운 신앙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도들이 스스로 잘못했다고 시인하고 나오니까 유대파 사람들은 “아니요, 이거 우리가 뭔가 잘못했어요. 뭔가 잘못된 거예요. 이제 이런 실수가 없도록 헬라파에서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을 뽑읍시다” 하고 의견을 모았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일곱 명을 뽑아서 구제 문제를 다 맡기고 손을 떼 버렸습니다. 놀라운 아량입니다. 그야말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면모입니다.
(22. 교회의 문제에 성령으로 대처하다)
사탄은 하나님의 교회를 없애려고 작정하고 핍박했지만 엉뚱하게도 교회는 온 사방으로 흩어져 새로운 교회를 낳았습니다. 예루살렘에만 있던 교회가 온 사방으로 퍼졌고, 그것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큰 뜻을 성취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귀는 그 뜻을 망치려고 달려들었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었습니다. 또 가장 앞장서서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이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34. 교회를 위해 교회를 흩으시다)
아나니아나 바울이나 꼭 같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종이었지만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각각 달랐습니다. 어느 쪽이 더 좋은지 비교할 필요가 없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그 두 사람을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릇이 원한다고 큰 그릇이 될 수 없고 그릇이 원한다고 좋은 것을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우리가 바울 되게 해달라고 해도 하나님이 택하지 않으시면 그렇게 될 수 없고, 아무리 우리가 아나니아 노릇만 하겠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많은 해를 받을 그릇으로 택하셨으면 아나니아처럼 다메섹에 머물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대로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41. 복음의 그릇으로 택하시다)
인간의 유전에서 시작해 교리로 비화시키며 대립하게 된 할례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사실 숨은 동기가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 안에 일어나는 분쟁에는 숨은 알맹이와 겉으로 나타난 껍데기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할례파 분쟁의 알맹이는 그들의 우월감과 교만이었습니다. 이방인을 은근히 멸시하고 싫어하는 태도, 할례받지 못한 사람을 부정하다고 비판하는 자세, 이런 것들이 그들의 감춰진 속내였습니다. 이와 같은 입장을 좀더 합리화하고 논리적으로 주장하기 위해 겉으로 내놓은 것이 교리적인 문제였습니다.
(47. 유대와 이방의 벽을 허무시다)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존귀합니다. 주님이 자신의 피로 사서 세우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 아무도 교회를 위해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힐 권리가 없습니다. 특히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를 섬길 때 부들부들 떨며 행여나 자신의 결점이 하나님의 교회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다른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는 교회를 대하는 모든 성도가 가져야 할 마음 자세이기도 합니다.
(54. 이상적인 팀워크를 이루다)
복음으로 정복하기 위해 고린도로 들어간 바울을 생각해 볼 때 얼마나 대조적인 말씀인지 모릅니다. 상대는 무시무시한 거인, 지옥의 사신처럼 보이는 고린도였지만, 정복자로 들어간 바울의 자세와 입장은 그에 비해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그는 심히 떨었고, 두려워했습니다. 전도하기가 몹시 힘들 것이라는 부담감 때문에 위축될 대로 위축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울의 그 자세는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 되었습니다.
(69. 영적으로 캄캄한 도시에서 위로를 받다)
유두고처럼 졸더라도, 피곤하더라도,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아 끝까지 버티고 앉아서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드링 있는 이상 교회는 병들지 않습니다. 사람이 창에서 떨어져 목숨이 끊어지는 것 같은 위기를 당하는 사건을 보고도 다시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올라가서 성만찬을 나누고, 서로 헤어지기 싫어서 날이 새기까지 한 자리에 붙어 있던 그 위대한 사랑, 그 위대한 열정, 그 위대한 정신이 오늘날도 살아 있다면 교회는 병들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이 주시고, 말스밍 우리 마음속에 일으키는 이 놀라운 불꽃은 세상의 어떤 세력도 끌 수 없습니다.
(74. 로마를 향한 직로를 막으시다)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간증은 복음을 제시할 때 좋은 방법 중에 하나지만 간증이 곧 복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간증 그 자체는 복음이 아닙니다. 간증은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주기 위한 하나의 서론에 불과합니다. 전도를 받는 이가 방어하는 마음을 좀 풀고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간증만 잔뜩 이야기해 놓고 복음을 제대로 제시하지 않고 끝나 버리면 그것은 전도가 아닙니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십자가의 능력이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하는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뿐입니다.
(81. 부형들아 들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