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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7483084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20-05-20
책 소개
목차
1부 메모리퀼트
바느질 이야기
내 품속의 작은 세상
흑순이의 죽음
능소화
상처 꿰매기
눌운
언니에게
친구가 보내온 문자
아버지
나이 듦에 대하여
마다가스카르
느티나무의 가을 노래
70대 소녀들 뭉치다
갑상선암 이야기
섬여행
엄마라는 이름으로
방탄소년단에 입덕하다
꽃 가꾸기
문하우스에서 본 해운대 백사장
장미정원 이야기
딸
앤과 앤디 이야기
조각을 이어 누빈 개량 한복
시시의 생일 카드
시시가 그린 상상화
안골만의 추억
두 딸의 희망
2부 퀼트일지
시시의 생일 선물
서부로 가는 비행기
시시의 창작 동화, 마법사 비둘기 제임스
나마스테이
나마스테이의 민들레
나마스테이의 밤하늘
자이언 국립공원의 계곡과 못(pools)
드림 캐쳐와 미니어쳐 기념품
앤탤로프 캐년
파월 호수
샌디에이고의 씨 월드
샌디에이고의 레고랜드
라호야 해변
슉슉 할아버지의 칠순기념 여행
3부 꽃가꾸기
하얀 종 모양의 섬초롱
빨간머리 앤의 머리칼 같은 산나리
수줍음 많고 단아한 분꽃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닮은 수련
마음에 평화를 주는 잔디
소박하고 겸손한 맥문동
내가 제일 사랑하는 괭이밥
정열을 품은 칸나
우아한 하늘수박 앙증맞은 계요등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여고생같은 샤프란
손녀의 부탁으로 심은 비파
상사화라고도 불리우는 꽃무릇
남다른 향기를 지닌 은목서
별모양의 가냘픈 새깃유홍초
이름 모를 꽃
황홀한 향기의 황금색 꽃 금목서
너무나도 반가운 야생화
캉캉춤을 추는 무희 치마의 주름같은 금잔화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털머위
새하얀 꽃과 붉은 열매로 눈을 즐겁게 하는 필라칸싸스
진한 향기로 늦가을의 정원을 장식해주는 감국
새해 제일 먼저 피는 영춘화
설중화라고도 하는 수선화의 새싹
사이좋게 옹기종기 피어있는 앵두꽃
앞다투어 꽃을 피우는 입춘
선옥죽차의 재료가 되는 둥굴레꽃
아름다운 파스텔색의 니겔라
뛰어난 생명력이 있는 어성초
낮은 키의 화려함 송엽국
우담동자꽃과 끈끈이주걱
어여쁘고 앙증맞은 앵두
모기와 정답게 지내는 물카네이션
팔랑팔랑 나비꽃
이웃에서 시집 온 루드베키아(검은눈천인국)
태양을 향해 미소 짓는 시계꽂
슉슉이와 꽃비
허수아비와 가마우지
비정한 가마우지의 집념
도도하기 그지없는 노랑나리
식탁 위에 봄향기 원추리
산수경석에 핀 돌단풍
바다를 배경으로 핀 목련
보라색 별무리 알리움 크리스토피
노란장미의 추억 장미정원
달콤한 향기 인동초
너무나도 화려한 아이리스
색동저고리의 돈주머니 금낭화
꽃의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천리향
검은 나비를 품은 익소라
해운대의 해넘이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마흔아홉 살에 나는 지옥 같은 세상을 만났다. 심장을 떼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열다섯 살 외아들을 하늘나라에 보내고 세상을 공기처럼 떠다녔다. 그 후 삼 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른다. 수면제와 알콜이 나를 지탱해주었다. 불면의 밤은 악마처럼 집요했고, 목까지 차오르는 울음을 이겨내려고 마신 알콜은 슬픔을 슬픔으로 토해내주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통증이 가슴을 조여 오고, 뼛속까지 스미는 슬픔과 상실감은 이성을 마비시켰다. 그 시기에 나는 깨달았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필요에 의해서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죽음보다 더한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에겐 마약도 좋은 일에 이바지될 수 있을 거라고.
아들을 보낸 외딴 바닷가에 집을 짓고 세상과 등지고 살았다. 내 존재가 나에게도 버거운데 슬픈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형제와 친구들이 너무나 무거웠다. 나를 인식하는 모든 환경을 떠나 바닷가 외딴집에 나를 유기했다.
억지로 먹으려 하지 않았고 억지로 잠들려 하지 않았다. 슬픔을 삭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먹고 싶으면 치욕스럽게 먹고, 자고 싶으면 그냥 그 자리에 눕고, 울고 싶으면 마음 놓고 꺼~억 ~꺼~억 울었다. 내 주위엔 나와 같은 또 한 사람이 있었으나 그도 나를 유기했다. 초췌해진 얼굴에 회색 눈동자로 조심스레 나를 살필 뿐이었다.
내가 엄마의 딸이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부르던 단어였다. 엄마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었다. 엄마는 수시로 무언가를 해주려고 애썼고 나는 당연히 받는 것에 익숙했다. 내가 기쁘거나 슬프거나 하면 엄마는 나보다 더 기뻐했고 나보다 더 슬퍼했다. 엄마는 늘 고개를 끄덕이며 내 모든 것을 끌어안는 큰 산이었다. 갑작스레 엄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나는 삼 년 가까이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나 울었다.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너무나도 아깝고 억울했다. 그때 이미 나는 한 아이의 엄마였고 내가 엄마라는 사실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던 때였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엄마를 몰랐다.
첫 아이를 낳고 나는 너무 신기했다.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신기해 아기를 들여다볼 때마다 중얼거렸다. “네가 내 아이란 말이지! 이제 나는 엄마인 거지….”
꽃들을 가꾸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그들은 참으로 부지런하고 정직하고 겸손하다. 때가 되면 싹을 틔우고, 때가 되면 잎을 달아주고, 때가 되면 꽃을 피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쉬지 않고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한다. 환경이 나빠지면 잠시 멈추었다가 이내 힘내어 푸르름을 갖추고 드디어 꽃을 피운다. 꽃이 떨어지면 씨방에 자신의 DNA를 저장했다가 다음 해에 또다시 싹을 틔운다. 온갖 비바람과 가뭄과 추위와 더위를 견디어 꽃을 피웠음에도 그들은 잘난 체하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킨다.
나는 가끔 꽃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 신문이나 TV에 나오는 사람들의 갈등을 접하면 사람은 정말 만물의 영장인가, 제각기 생명을 가진 생명체로서 사람이 진정 꽃보다 나은 존재인가? 하는 의문이 종종 들곤 했다. 모든 꽃은 존재 자체가 위안이 되고 기쁨을 주는데 사람도 존재 자체가 빛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