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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57512272
· 쪽수 : 328쪽
책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아까부터 왔다 갔다 하던데, 뭐 도와줄까요?"
윤희가 그를 빤히 쳐다봤다. 무안해질 정도로 유심히 그를 바라보던 홍윤희가 난감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런 부탁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뭔데요? 남자 힘이 필요하면 말해요."
"필요하긴 필요한데요."
홍윤희가 떨떠름하게 말을 이었다.
"음, 플래카드를 걸어야 하는데, 한쪽 끝 좀 잡고 있어줄래요? 좀 웃기는 광고니까 창피당하지 않으려면 플래카드 펴자마자 도망가는 거 잊지 말고요."
"도망이요?"
"생리대 광고하는 플래카드거든요."
정훈의 볼이 붉어졌다. 눈을 가늘게 뜨고 정훈을 응시하던 윤희가 한 번 더 강조했다.
"아는 사람한테 들키기 싫거든 바로 뛰어가세요. 꼭 잊지 마세요."
"아, 네."
정훈이 돌돌 말린 플래카드의 한쪽을 붙잡았다. 윤희가 그를 돌아보더니 또 한 번 다짐을 했다.
"펴자마자 도망가세요."
두 번, 세 번 다짐을 받은 윤희가 정훈에게 플래카드 한쪽 끝을 넘겼다. 붉은 기운이 조심스레 하늘을 물들이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 그들의 학교 앞 육교 위를 홍윤희의 하이힐이 위태롭게 달리기 시작했다.
플래카드가 드르륵 펴지면서 누런 재생지가 여름날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재생지에는 '독재 타도'라는 구호가 새빨간 글씨로 쓰여 있었다.
붉은 글씨가 꽃잎처럼 흩날렸다.
"도망가!"
벌써 육교를 반쯤 내려간 윤희가 소리치고 있었다. 정훈이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지만, 마치 마술처럼 완전 무장한 전투경찰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정훈의 눈이 윤희를 찾았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사람마냥 사라지고 없었다. 전투경찰 수십 명이 순식간에 정훈에게 다가왔다. 몽둥이가 날아왔다. 무릎이 꺾이고 손이 포박됐다. 누군가의 발길질이 정훈의 복부를 정확하게 강타했고, 감사하게도 정훈은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