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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88957994924
· 쪽수 : 448쪽
· 출판일 : 2023-12-10
목차
추천사․2
프롤로그․10
서론․20
첫 번째 편지: 전도서를 일찍 읽어야 할 이유에 대해․21
두 번째 편지: 전도서 중심 구절과 '헛되다'는 것에 대해․30
세 번째 편지: 전도서 저자와 전도자(tRlRhOq/코헬렛)란 인물에 대해․36
네 번째 편지: 책 제목에 대해․46
다섯 번째 편지: 전도서의 모순에 대해․50
여섯 번째 편지: 창세기와의 유사성과 전도서 구조에 대해․55
일곱 번째 편지: 신약적 사고에서 전도서 비판적 읽기에 대해․68
제 1 부 전도서, 허무를 허물다
1. 해 아래 새로움 없는 인생(1:1-11)․78
2. 지혜 그것도 전부는 아니더라!(1:12-18)․96
3. 인생에서 기쁨을 찾기 위한 코헬렛의 실험(2:1-26)․109
4. 세상은 요지경, 오늘이 중요해!(3:1-15)․125
5. 세상이 왜 이래(1):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인생에서 사는 법(3:16-22)․144
6. 세상이 왜 이래(2):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삶에서 사는 법(4:1-12)․155
7. 지혜, 권력, 영광 그것들 모두 잊혀진다(4:13-16)․175
8.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라(5:1-7)․185
9. 하나님의 집 밖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라(5:8-9)․198
10. 코헬렛의 인생 질문: 무엇으로 만족을 누리려는가(5:10-20)․205
11. 억울한 인생으로 살지 않으려면(6:1-9)․218
12. 모르기 때문에 더 깊이 주님을 경외하는 지혜(6:10-7:14)․233
13. 빨리 죽지 않는 법: 역설적인 세상에서 살아가기(7:15-29)․251
14. 다 알지 못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8:1-8)․268
15. 난 알아요,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모두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을(8:9-17)․283
16. 네 손 안에 있다고? 제발 코끼리 방귀 뀌는 소리 하지 마시길(9:1-12)․303
17. 우리가 걸어야 하는 지혜자의 길(9:13 -10:20)․322
18. 과감하지만 지혜롭게(11:1-6)․340
19. 코헬렛의 결론: 기쁘게 살라 하지만 반드시 이것은 기억하라(11:7-12:8)․351
20. 전도서 에필로그(12:9-14)․367
제 2 부 소설 전도서, 고석영․(378-436)
에필로그․437
저자소개
책속에서
해 아래 새로움 없는 인생
전도서 1:1-11
1. 들어가는 말
새해가 되면 늘 야심 차게 목표를 세우고 달라질 거야라고 결심한다. 그러다 12월이 되면 벌써라는 한 마디를 내뱉게 되고 기분은 다운된다. 달라진 게 하나 없다.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나약하고 무능했던가! 시원찮은 성공도 더러 있긴 했지만 그게 뭐람. 밥은 먹었는데 먹은 것 같지 않은 기분이랄까 행복하지 않다. 그러다 다시 새해를 맞는다. 습관처럼 목표를 세우고 다시 결심한다. 달라질 거야.
콘크리트 벽을 벗어나 숲속을 거닐어 본다.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마음 한구석이 구멍 뚫린 것 같은 공허감에 땅바닥을 걷어찬다. 도대체 내 행복은 어디 있는 거야. 그때 나뭇잎이 흔들리며 작은 소리로 말한다. 행복을 찾는 그대여! 지금 구약성경의 전도서를 읽어 보세요.
일전에 멋진 풍광을 배경으로 인생 샷 하나 건진 적 있다. 그때 SNS에 자연 앞에 서라라는 나름 스웩 한 줄을 남겼다. 인간은 문명을 발전시킨다는 이유로 자연을 막 대해왔지만 그들은 그래도 우리보다 먼저 창조된 인생 선배들이다. 그 어떤 피조물보다 창조주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존재인 인간은 하루(하루가 우리가 말하는 24시간은 아니겠지만)라도 먼저 세상에 있게 된 자연이 말하고 있는 것들을 배울 필요가 있다. 다윗은 밤하늘을 보다가 사람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때문에 멋들어진 시 한 편을 썼다(시 8:4-5). 사도 바울도 비슷한 경험을 로마서에 적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20).
전도자 코헬렛(tRlRhOq)은 자연을 바라보다 인간의 모든 수고는 썩어짐의 종노릇과 같아 탄식밖에 나오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되었고 그러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만났다(1:3-11; 12:1-8). 코헬렛은 모든 게 귀찮다고 말하는 걸까, 아니면 의미 없다고 말하는 걸까. 코헬렛이 어느 날 바라본 자연, 그 자연은 어느 날과 같은 날이 아닌 특별한 날이 되었다. 갑자기 헤벨(lRbRh)이란 단어가 공기를 가른다. 코헬렛은 살아있음은 별 의미가 없다, 라고 생각하는 허무주의자(nihilist)였던 건 아닐까. 그가 내뱉는 숨소리가 거칠다(1:2). 그런데 행복을 찾는다면 전도서를 읽어 보라는 말, 진짜 맞는 말인가?
2. 코헬렛, 그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거야
사람을 만나도 코헬렛과 같은 사람을 만나면 맥 빠진다. 몸이 무거워지고 우울해진다. 으샤 으샤하는 사람을 만나야 기분이 업되는데 모든 게 헛되다라고 한숨지으니 전도서를 덮어 버리고 싶다. 그래도 얼마나 힘들면 헛되다라고 말하나 싶어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용기를 낸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 두세 번도 아니고 다섯 번이나 연거푸 말하니 천하의 오은영 박사도 당황할 것 같은 금쪽이다. 코헬렛은.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이가 어느 정도 들었던 어느 해, 코헬렛은 자연 앞에 서 있었던 것 같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어느 날 자연을 바라보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끼고, 그날 바로 하야(下野)를 선택했다면, 해외 뉴스 토픽감이다. 철학자 냄새도 풍긴다. 코헬렛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스라엘 왕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물론 전도서라는 책 안에서 등장인물 얘기다. 리얼 스토리로 보기는 어렵다. 장르로 볼 때 페이크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기원전 6세기경, 이와 비슷한 사람이 있었다. 고타마 싯다르타! 석가모니다. 그는 네팔 남부와 인도 국경 부근인 히말라야 기슭의 카힐라 성의 작은 산촌 석가족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인으로 성장한 어느 날, 그는 외출했다가 밭 가는 농부에게서 수고의 고통을 깨달았고 새에게 잡아먹히는 벌레를 보고 삶의 덧없음을 알았다. 쇠약한 노인에게서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알게 되면서 그는 인생무상(人生無常) 번뇌를 느꼈다. 그러다 그는 29세에 가족 어느 누구에게 한마디 말도 남기지 않고 진리를 찾고자 출가했다. 그러던 그가 35세가 되었을 때 생로병사의 근본적 고통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어떤 번뇌에도 흔들리지 않은 열반(涅槃)의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열반(涅槃)이란 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가 소멸된 상태를 말한다.
전도서 전체를 보니, 코헬렛이 싯타르타처럼 왕의 자리를 던진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젊어서 대각(大覺)한 것 같지도 않다. 깨달음은 싯타르타처럼 버린다고 얻는 것도 아니고, 코헬렛처럼 늙어야만 얻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잠시 코헬렛이 깨달은 사실 하나를 짚고 넘어가 보자.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9:11).
이어령 박사는 <나에게 이야기하기>라는 시에서 너무 조급해 하지 말라 하네. 천천히 가도 얼마든지 먼저 도착할 수 있으므로라고 말했다. 빨리보다는 바로가 중요하고, 알기보다는 깨닫기가 중요하다. 노년의 인물로 등장하는 코헬렛의 깨달음은 과연 옳은 깨달음이었을까? 주야장천 헛되다고만 말하니, 왜 이렇게 오래 살았는가? 그런 얘기를 하고 있었는가 싶다. 전도서 끝에서도 코헬렛은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8)라는 말을 남겼다. 늙으면 죽어야지를 입버릇처럼 말하는 촌로(村老)를 대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헛되다라는 말이 처음 다섯 번에서 마지막에선 한 번 줄었으니 인생이 헛되다는 생각이 조금은 사라진 것일까. 좌우간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그의 탄식 섞인 깨달음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나온 것인지 독자를 궁금하게 만든다. 어느 한 날 문득인지, 깨달음이라는 편린들이 켜켜이 쌓여 감성이 폭발한 날인지는 전도서 전체를 봐야 할 것 같다.
표제 1:1에서 보면 코헬렛은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이다. 지혜자라고 말하고 잠언을 많이 지었다라고 말하는 것을 참고하면(12:9), 영락없는 솔로몬이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전도서의 저자는 솔로몬이 아니고 솔로몬을 주인공으로 쓴 익명의 현자일 수 있다. 익명의 현자가 솔로몬은 이렇게 인생을 깨달았어야 했다라고 말하기 위해 역사적 인물 솔로몬을 등장인물화하여 그의 삶을 통해 인생의 참된 목적을 얘기한 것일 수 있다.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이런 생각이 들거든 서론의 전도서 저자 부분을 참조하면 된다.
일단 솔로몬이 전도서의 저자인 것이 맞든 안 맞든, 개의치 않고 전도서를 접해 보자. 실제 저자(real author)는 따로 있다 하더라도 전도서 전체는 솔로몬이 화자로 이끌어가고 있다. 즉 내포 저자(implied author)가 솔로몬인 셈이다. 솔로몬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한 장본인으로 보면 된다. 물론 전도서 1:1-11은 3인칭 관점에서 쓰여 있기 때문에 편집자의 글이다. 이건 또 무슨 골치 아픈 소린가하는 독자도 있겠다. 전도서 본론 부분은 1인칭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부분은 3인칭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다. 어떤 관점에서 말하고 있고 누가 화자로 말하고 있건 전도서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솔로몬을 연상시키는 코헬렛이다.
전도서 저자가 코헬렛을 솔로몬으로 독자가 읽어주길 바라는 그의 의도대로 이제부턴 코헬렛을 솔로몬으로 생각하고 본문 속으로 들어가 보자. 솔로몬이 어느 날, 왕궁 옥상 정원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보다가 깨달음을 얻었다(1:5). 옥상이 아니고 발코니일 수도 있다. 어느 곳이든, 또 어떤 한 날이든, 솔로몬은 어느 날, 이전과 전혀 새롭지 않았던 그날이 그날만큼은 새롭게 다가왔다. 그 새로움이란, 역설적이게도 세상에 전혀 새로움이란 없다라는 걸 깨달은 어제와 같았던 평범한 날이었다. 잠시 업무의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 마실 것 하나 손에 들고 그저 먼 곳을 멍때리다가 순간 얻게 된 깨달음과 같았으리라. 바람도 쐬면서 나라를 어떻게 다스릴까, 묵상에 잠겼던 것일까(1:6). 그날 날씨가 어찌나 그리 좋았는지 아니면 심상에서 그래 보였는지, 시냇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까지 보았다(1:7). 아버지는 왕궁 옥상에서 아름다운 자연이나 감상할 것이지 왜 목욕하는 여인을 감상하셔서 그리 고생을 많이 겪으셨는지…, 어쨌든 그 여인의 배에서 내가 태어났으니 감사하긴 한데…….
코헬렛이 어디서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회고했는지는 모른다. 전도서 저자의 머릿속을 들어가 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왕궁 옥상에서였을 것이라는 것은 나의 상상력이다. 코헬렛은 왕궁 옥상에서 사람들이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라고 말하는지 분명하게 들리진 않아도, 사람들의 말소리, 가축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모두 자기 삶에 열심히 살아가는 백성들의 모습이었다. 나라가 안정되고 부유했으니 모두 얼굴에 기쁨과 행복이 넘치고 있었다. 그것 자체로 감사했다. 하지만, 코헬렛의 눈에는 그들의 얼굴에 피곤함이 짙게 묻어 있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