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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88958070306
· 쪽수 : 112쪽
· 출판일 : 2024-09-27
책 소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이거 어때? 넌 피부 톤이 하얘서 핑크가 어울리겠다. 빨리 껴 봐.”
다현이 입을 꾹 다문 채 반지를 뿌리쳤다. 얼굴에 빗금이 그어진 것처럼 표정이 어두웠다. 빨리 골라야 한다는 생각에 옷만 보느라 다현의 표정을 살피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맘에 안 들어? … 다른 거 볼까?”
다현은 잠깐 이야기 좀 하자며 반지를 제자리에 놓고 내 손을 잡아 한쪽 구석으로 끌었다.
“하늬야. 난 네가 좋아. 너랑 노는 게 제일 재미있어.”
내용과 말투의 온도 차가 너무 커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좋아요’는 확실히 아닌 것 같은데 왠지 ‘싫어요’도 아닌 것 같아서 헷갈렸다. SNS 속 사람들은 호불호가 분명한데, 현실에서 마주하는 사람은 그보다 복잡해서 너무 어려웠다. 예전엔 다현이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아챘는데.
아이템 간의 찰떡 매치를 ‘#1일1아이템’ 해시태그를 붙여 업로드하면서 팔로워도 조금씩 늘었다. 공유가 늘어날 때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내 뒤를 쫓아다니며 너무 예쁘다며 핸드폰으로 나를 찰칵찰칵 찍는 것만 같았다. 좋은데,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나에게 열광해 주는 사람들이 한순간에 돌아설까 봐. 그래서 예전처럼 악플이 달리지는 않는지 매시간 확인했다. 악플은 온라인상에서는 지워졌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반복 재생됐다.
결국 줄넘기 수행 평가는 망했다. 어제 산 옷이 나와 함께 뛸 거라고 생각하니까 소름이 끼쳐서 한 개도 성공하지 못했다. 밴드 붙인 다리 핑계를 대 봤지만, 체육 선생님은 그러기엔 밴드가 너무 작지 않냐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저번 주까지 3반에서 제일 잘하던 애가 오늘 왜 그러냐며 다시 해 보라고 기회를 줬지만, 나는 옷을 신경 쓰다 엇박자로 뛰는 바람에 줄에 걸려 크게 넘어졌다. 이번엔 팔꿈치도 까졌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5교시 영어 시간에는 등을 긁으며 뒤를 돌아보다가 선생님한테 단어 수행 평가 중에 부정행위하지 말라며 또 한소리를 들었다. 영어는 젬병인 데다 딱히 잘하고 싶은 의지도 없어서 부정행위 따윈 꿈도 꾸지 않았다고 대꾸했다가 그게 자랑이냐며 또 한소리. 오늘 나의 콘셉트는 동네북이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나는 새로 산 고양이 간식을 들고 집 근처 담벼락 아래에서 까미를 기다렸다. 포장지를 조금 뜯고 서 있었더니 온갖 고양이들이 아는 척을 해 왔다. 마음이 조급해져 간식을 바치고 아무 고양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무조건 까만 고양이어야 한다. 전에 큰언니가 그랬다. 몸이 검은 짐승은 예로부터 귀신을 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