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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9130580
· 쪽수 : 256쪽
책 소개
목차
한 스푼의 시간 7
작가의 말 251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시신은 바로 오늘 세상을 떠난 것처럼 얼굴이 보얗고 팽팽하며 시취 대신 방충제 냄새를 풍긴다. 곧바로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는 생각은 머리 언저리에서만 맴돌 뿐, 명정은 아들이 발견되었다면 꼭 그리했을 것처럼 시신의 뺨에 손끝부터 댄다. 모든 감각과 마찬가지로 촉각 또한 무디어져 사태의 파악보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나이지만, 그 순간 사람처럼만 보였던 피부의 질감이 사람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걸 깨닫는다. 사람이 죽고 나면 원래 피부가 이렇게 우레탄고무처럼 변하고 마는가. 아니다…… 사람의 시체가 아니다. 그때 그 물건의 등에 깔린 두툼한 흰색 제본지를 발견한다. 해독 불가능한 영문의 홍수 속에서 그는 하나의 단어를 알아본다. ROBOT.
그때 시호의 눈가에서 불규칙하게 난반사되는 눈물이 은결의 인공신경을 파고든다. 일단 하품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 이 눈물이 슬픔 또는 아픔, 외로움, 그리움, 기쁨, 어디에 해당하는지 은결은 자신이 보유한 상과 일일이 대조해보지만 그 무엇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그의 연산은 포연을 닮은 안개 속을 헤맨다. 난투가 벌어진 듯 배열이 뒤섞이다 희미해지고 이윽고 투명해지는 0과 1들. 감정과 무관한 거라면 그저 만취 상태일 수도 있고, 때로는 그 모두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눈물은 어떤 생리작용보다도 해독이 어렵다. 은결의 인공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언어체계가 엉킨다. 고독한 냄새가 인간 세계 어디에 질감과 형태를 갖추고 있는지, 슬픈 냄새란 또 무엇인가. 일상의 시공간을 벗어난 어딘가의 좌표에 위치한 냄새를 표현할 언어가 그에게는 부족하다. 그렇다고 슬프다니, 그에게도 정신이 있다면, 제정신이 아니라는 게 딱 이런 상황일 것이다. 기계 안에 정신이 기거할 곳이란 없는데 이와 같은 착각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은결은 자신이 불완전 샘플임을 알지만 어째서 이토록 연산 오류가 잦은지, 그 오류 때문에 더욱 인간과 닮은 것인지, 오류가 일어났다고 판단하는 자신의 두뇌 자체가 착각의 일종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