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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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12월 30일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25년(9세) 4월 4일, 명동 소학교에 입학했다. 1928~1930년(12세~14세) 급우들과 함께 《새명동》이라는 잡지를 만들었다. 1931년(15세) 3월 15일, 명동소학교를 졸업했다. 1932년(16세)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18세) 12월 24일,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작품을 쓰다. 이는 오늘날 찾을 수 있는 윤동주 최초의 작품이다. 1935년(19세)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 같은 해 평양 숭실중학교 문예지 《숭실활천》에서 시 「공상」이 인쇄화되었다. 1936년(20세)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숭실학교를 자퇴, 광명학원 중학부에 편입했다. 간도 연길에서 발행되던 《카톨릭 소년》 11월호에 동시 「병아리」, 12월호에 「빗자루」를 윤동주란 이름으로 발표했다. 1938년(22세) 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4월 9일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1939년(23세) 산문 「달을 쏘다」, 시 「유언」을 발표했다. 1941년(25세)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77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43년(27세)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되고 작품, 일기가 압수되었다. 1944년(28세)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되었다. 1945년(29세) 해방되기 여섯 달 전, 2월 16일 큐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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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갑주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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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인_ 前 문교부 산하 기관 국정교과서(주), 한국교과서(주) 35년 근무
수집가_ 교육자료, 역사자료, 6.25 전시자료, 근현대 생활사자료 20만 여점 수집
옛 책 복제(영인)제작 기술자 - 옛 책 41책 수작업 직접 복간 작업
35년 동안 오직 한 길, 교과서 출판 일을 하고 있다. 첫 일터 문교부 산하 정부투자기관 국정교과서(주)에서 19년, 그가 설립한 한국교과서(주)에서 16년 째. 그리고 32년 옛 교육자료 수집가로서, 옛 자료 복제(영인)본을 제작하는 기술자다.
그가 직접 우리나라 초중고 210종 교과서를 기획하고 작명했다.
그가 개발한 교과서에 의해 각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부 교육과정을 무시하고, 그가 개발한 교과서로 새로 교육과정을 짰고, 학교 이름을 바꾸는 일들이 벌어졌다. 2000년 초, 망해가는 oo상업고등학교, □□공업고등학교 등이 학교 간판을 oo정보산업고등학교, □□인터넷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교육부가 발행한 고루한 교과서는 그가 만든 책 때문에 거들떠보는 이가 없는 초라한 신세가 된 적이 있었다.
23살 때부터 지금까지 32년째 수집광이다. 옛 교과서와 교육자료, 시집, 잡지, 6.25 전쟁 흔적 자료, 역사사료, 근현대 생활 사료 총 20만여 점을 수집했다. 그는 이제 복제(영인) 기술자며, 또한 감성과 추억을 파는 문화 장사꾼이다.
-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시> 최초 초판본 복간
-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 최초 초판본(이광수 윤문) 복간
- 한석봉 <어제천자문 : 17세기> 진품 복간
수집가 전갑주는 올해 광복_분단 70년 및 국어교과서 탄생 120주년을 기념하고자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문화재급” 소장자료 41책을 한정판(각 1천부) 복제(영인)본을 직접 손수 제작(가내 수공업 수작업 : 수집가 전갑주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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