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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9592326
· 쪽수 : 312쪽
책 소개
목차
악몽의 늪 속에서 / 7
아픈 자들의 기나긴 밤 / 23
끝없는 어둠의 동반자 / 59
바람은 슬픔을 싣고 / 84
쫓기는 자들의 머나먼 길 / 107
무덤 속의 사람들 / 129
아득한 천애의 끝에서 / 156
바람이 찍는 발자국 / 176
황혼에 지는 눈물 / 204
잃어버린 고향의 향기 / 227
안개비 속의 그림자 / 249
삼십 년의 마지막 노래 / 284
바람이 가는 길 / 302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뭇가지 같은 앙상한 그의 손이 오직 두 줄밖에 없는 현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그런데 그 선율이 무척 구슬프고 어떤 깊은 사연을 애타게 호소하는 듯하다. 그 속에는 기나긴 세월 가득 맺힌 슬픔이 은근히 숨어서 흐느끼고 있다. 그 슬픔이 아픔으로 변하면서 내 마음을 찌르고, 길거리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도 짙게 번져 나간다. 나는 다시 돌아온 그녀에게 악기 이름을 묻는다.
“저건 얼후라고 해요. 중국의 전통악기예요.”
나는 그녀를 바래다주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윽고 밤은 찾아오고 나는 오늘 하루를 벗어 버리며 침대에 눕는다. 도시는 희미한 가로등 빛에 물들어 이미 깊은 적막 속에 잠들어 있다. 하지만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인다. 오늘 화제 때의 느낌들이 다시 떠오르며 마음을 잡고 늘어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없이 애달픈 삶의 안타까움이 연기처럼 뭉클거리며 피어오른다. 그런데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오늘 낮에 들었던 얼후의 선율이 고개를 들고 나타나더니 가슴을 후벼 파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에 내가 알고 있던 다른 선율 하나가 가세하며 마음은 점점 아련한 슬픔으로 물들어 나간다.
무척 젊었던 시절의 일이다. 며칠간의 바람 같은 여행 끝에 어느 산에 여장을 푼 적이 있다. 늦게 저녁을 먹고 밖을 보니 달이 유난히 밝다. 그 밝은 달이 낯선 여행지의 들뜸과 합세해서 나를 손짓하며 불러낸다. 나는 결국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무작정 발걸음을 옮긴다.
이런 밤은 참으로 고즈넉하고 푸근한 느낌이 든다. 은은한 달빛 속에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 계곡의 물소리들이 한데 섞여 흐르며 밤하늘을 적신다. 한참 걷다 보니 이들 자연의 소리 속에 뭔가 다른 소리 하나가 섞여 있다. 그 소리는 언뜻언뜻 아련히 들려서 내가 혹시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귀를 기울일수록 그 소리는 똑똑해져 갔고, 나는 그것이 어떤 선율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도저히 무슨 소리인지,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앞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옆에서 들리는 것도 같은 정말 애매한 소리였다. 한참 방향을 가늠해 천천히 나아가니 바람 소리, 물소리에 섞여 그 소리는 제법 또렷해져 갔다.
정말 구곡간장을 녹이는 듯한 애달픈 선율이었다. 날아올라가는 듯하더니 갑자기 뚝 떨어져 흐느끼고, 그러다 다시 떠올라 애절히 떨어대며 애원하듯 호소하고…. 내 발걸음은 그 소리에 홀린 듯 저절로 그쪽으로 나아간다. 달빛이 휘황하게 비치는 숲길을 따라 얼마를 가니 갑자기 공터가 나타난다. 그 한쪽에는 나지막한 바위가 놓여 있고,
그 위에 한 사람이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 소리의 임자이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