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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정책/행정/조직
· ISBN : 9788960395985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14-02-11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011
제1부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
1. 폭풍우가 몰아치는 언덕에도 꽃은 피고… 022
전설 속의 나_022/ 졸지에, 고아 아닌 고아가 되다_025/ 짧았지만 다사다난 했던 학창 시절_033/ 경기도 성남, 산업역군(?)이 되다_037/ 소년, 종로통으로 진출하다_041/ 어머니, 꽃구경 가요_044/ 그래도 배워야 산다_053/ 독학과 고학의 길_058/ 시련과 방황, 그리고 무전유죄_068/ 아! 아버지… 내 삶의 반면교사_073
2.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 077
스무 살, 철없는 국가공무원_077/ PX 김 방위, 창고장 되다_083/ 복직 그리고 분노의 퇴직_088/ 경찰을 만나다: 노상강도사건_100/ 만용의 결과, 초라한 실업자 되다_105/ ‘김낙천’의 전성시대 : 한국전력 사원_108/ 패자부활의 ‘기회 사다리’ : 방송통신대학_118
3. 청운의 푸른 꿈 127
허황된 계획, 불의의 사고_127/ 절반의 실패, 절반의 성공_136/ 1986년, 드디어 청운의 꿈을 이루다_141/ 굿바이! 힘들고 외로웠던 시간들_146/ 고시공부, 힘들었지만 깨달음도 얻었던 여정_149/ 수험생들에게_151
4. 대한민국 행정사무관, 그 찬란한 희망을 꿈꾸며 156
인재들과 조우하다_156/ 중소기업을 업그레이드 시켜라_159/ 아메리칸 드림의 땅, 미국에 가다_164/ WTO 국제협상에 참여하다_166/ 또 다른 세상을 꿈꾸며_168
제2부 대한민국에서 경찰로 산다는 것
제2부 대한민국에서 경찰로 산다는 것
5. 경찰 중간 간부가 되다 172
경찰관의 첫발을 내딛다_172/ 일선 경찰간부가 되다 : 통영경찰서 경비교통과장_175/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 경찰청 보안국 경정_182
6. 일선 경찰지휘관 : 총경의 길 190
수처작주의 자세로 : 전남경찰청 감사담당관_190/ 주민의 안전을 최고의 목표로 : 담양서장, 완도서장_193/ 경찰관 처우개선을 위해 뛰어라 : 경찰청 예산과장_202/ 중앙청사의 안전을 지켜라 : 서울중앙청사 경비대장_206/ 힘들었고 가슴 아팠던 추억 : 서울 용산경찰서장_208/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 경찰청 정보3과장_211
7. 경찰의 별, 경무관이 되다 215
처음으로 충청도로… : 충북경찰청 차장_215/ 더 넓은 세상을 배우다 : 외교연구원 교육_219/ 명실상부를 생각하자 : 서울경찰청 보안부장_221
8. 주민만족과 내부만족, 두 마리 토끼를 잡아라
: 충남경찰청장 225
9. 경찰청으로 돌아오다 238
경찰을 신명나게, 국민을 행복하게 : 경찰청 경무국장_238/ 경찰청 차장_240
제3부 대한민국 경찰청장, 그 무거웠던 책임의 길
10. 경찰청장이 되다 248
인사청문회 : 공직자의 삶을 돌아보는 과정_248/ 경찰청장에 취임하다_252
11. 경찰을 쇄신하라! 261
쇄신의지를 결집하라_262/ 잔존하는 부패·비리를 척결하고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_280/ ‘112긴급상황관리시스템’을 쇄신하라_284/ 효율적 인력운용, 현장치안역량 강화_290/ 학교 폭력, 손 놓을 수는 없다_293/ 경찰이 신명나야 국민이 행복하다_296/ 당당하게 일할 수 있게 하자_299
12. 교육만이 희망이고 교육만이 살길이다 304
교육정책관실 신설_305/ 경찰 백년대계를 위해 “교육大개혁”을 추진하라_308/ 초심에서 중심으로_309/ 중간간부들 사기가 중요하다_313
13. 이제는 치안인프라에 적극 투자할 때다 319
14. 수사구조개혁, 비정상의 정상화다 330
15. 다시 경찰을 생각한다 337
경찰교육개혁, 내실 있는 추진을 기대한다_338/ 기본에 충실한 경찰, 특수 시책을 최소화 하자_339/ 순직경찰관 예우, 이대로는 안 된다_342
에필로그 ― 새로운 도전을 꿈꾸며 346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렇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학교 생활은 2학기가 시작되면서 뜻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내용은 이랬다. 1학기 6월경 학교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전교생이 체육복을 입어야 했다. 옷값은 약 3천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학생 대부분 가정환경이 불우했던 관계로 우선 학교에서 단체로 주문하고 대금을 지급했으며, 학생들에게는 대금을 후불로 분납하도록 했다. 그런데 여름방학이 끝나는 시기까지 일부 학생이 완납 하지 못했고 학교에서는 독촉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2학기가 시작되자 자원봉사하던 담임교사가 그만두었고 연락도 안 되었는데 그 담임교사에게 분납한 몇몇 학생의 체육복 값이 증발해버린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증빙이 없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다시 내라’는 주장이었고 학생들은 ‘말이 안 된다’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당시 학급에서 H.R(당시 자치회 비슷한 것)의 회장을 맡고 있었고 나 또한 분할 납부한 사람 중 하나였다. 반장은 따로 있었는데 무슨 연유인지 내가 나섰다. 상대는 교감 선생님이었다. 교무실로 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자 교감 선생님은 “돈을 냈다는 증거가 없으니 다시 내야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학생이 선생님을 믿지 못하고 영수증을 써달라고 할 수도 없지 않느냐”며 항의했고 교감 선생님은 울그락불그락 하더니 갑자기 나의 귀싸대기를 때리며 폭행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한 대 맞으면 교무실 바닥에 그대로 내동댕이쳐졌다. 나는 다시 벌떡 일어나 노려보았고 다시 패대기쳐졌다. 옆에서 다른 선생님은 때리는 교감을 말리지 않고 나에게 “잘못했다고 빌어라”고 했다.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되어 끝까지 그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고아원 시절을 겪은 이후 폭행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없었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나? 얼마든지 맞겠다는 생각이었다. 아! 그런데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 교감 선생님의 입에서 “이런 놈이 무슨 장학생이야! 당장 장학생에서 짤라 버려!”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 끝이구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떻게 들어오고 다니게 된 학교인데……. 돈 내고 다닐 형편은 안 되는데…….
과거 종로2가 분식센터에서 일하던 시절, 인근에 대학입시 학원들이 많이 있고 학원에 고학생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고심하다가 어느 날 무작정 경복학원에 찾아갔다. 그 당시 종로2가 주변에는 대일학원, 상아탑학원, 제일학원 등 단과반 학원이 있었고 종합반으로는 정일학원 등이 있었는데 그 중 단과 학원으로 경복학원이 가장 유명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그곳 직원을 만나 ‘일하면서 강의를 듣고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잠시 후 어떤 40대 후반의 덩치가 크고 눈두덩은 부은 듯 두툼한 아저씨가 나타났다. 나중에 보니 공식 호칭은 ‘이 부장’이었고, 별명은 ‘곰’이었다. 눈을 내리깔고 거만한 표정으로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북한 사투리로 “야, 아직 꼬맹이잖나? 기냥 보내라우”라며 거절했다. 그러나 나는 그대로 물러 설 수 없었다. “열심히 하겠다. 할 수 있다”고 간청하자 드디어 “기럼 열심히 해보라우!” 하면서 허락을 했다. 그리고는 신입 절차로 “빳다 30대를 맞아야 한다”기에 나는 “기꺼이 맞겠다”고 했고 즉석에서 야전침대 각목으로 맞았다. 꽤 아팠지만 30대를 맞는 동안 한 번도 일어서거나 주저앉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키며 반드시 버텨내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그날 이후 나는 경복학원에서 일하면서 학원비를 내지 않고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막상 들어가 보니 경복학원은 수십 명의 강사와 하루에도 수천 명이 넘는 학생이 드나드는 매우 규모가 큰 학원이었다. 학원생들은 우리를 통칭 ‘기도’라고 불렀는데 당시 극장이나 유흥업소 등에서 입구를 지키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로 일본말에서 유래한 것 같다. 당시 기도들은 대부분 재수생이었기에 나보다 두어 살 위였고 그들은 나를 ‘꼬맹이’라 불렀다. 그리고 우리끼리는 칠판을 닦는다는 의미로 ‘판돌이’라 부르기도 했다.
경복학원에서 기도 생활을 시작한 지 1년여가 되었을 즈음인 75년 말경, 나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내가 전수학교를 잠시 다녔기에 그 증명으로 중졸은 인정되었고 바로 고졸검정고시를 볼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확인 결과 나는 중학교 1년 중퇴이므로 고졸 검정고시를 볼 수 없고 중졸 검정고시를 먼저 합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문제였다. 76년 한 해에 중졸검정고시―고졸검정고시와 대입예비고사를 다 합격해야 대입시험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나는 중졸검정고시를 본다 해도 합격할 자신도 없었다. 왜냐면 나는 중학교 과정을 거의 배우지도 않았고 고졸검정고시와 과목이나 내용이 같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궁리 끝에 검정고시 전문학원에 다니기로 했고 어찌어찌 학원비를 조달, 종로 인근에 있었던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했다. 그리고 약 3개월 동안 압축과정을 열심히 공부했더니 다행히 76년도 4월에 중졸 검정고시를 합격했고 같은 해 8월에 고졸검정고시까지 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