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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 사회문제 일반
· ISBN : 9791172132521
· 쪽수 : 388쪽
· 출판일 : 2025-05-06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_ 없음의 노동
1. 고복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손: 염습실에서
‘아무리’와 ‘아무나’사이의 일, 장례: 글을 시작하며
2. 반함
이거 괜찮은 직업이다: 시신 복원 명장 장례지도사 김영래
이름을 넣어주려고 해요: 20년 경력 여성 장례지도사 이안나
3. 성복
누구든, 그게 당신이다: 임종에서 빈소까지, 당신이 모르는 장례
택시 타고 가: 부의함 앞에서
눈 아픈 열 시간: 의전관리사 되다
4. 발인
생활에서 익힌 거지: 30년 경력 수의 제작자 임미숙
가는 길 적적하지 않게: 선소리꾼 방동진
장례 3일은 짧아요: 화장기사 이해루
좋은 집에 사는 사람은: 장묘업체 운영자 최현
5. 반곡
장례희망: 생전장례식 기획자 한주원
남좌여우: 여자 상여꾼이 있다
귀신을 믿나요?: 무덤 위에 세운 마을
장례는 이사가 아니기에: 상조 가입해야 할까?
채비가 되었습니까?: 한겨레두레협동조합 김경환 상임이사, 채비 플래너 전승욱
6. 우제
죽은 자들의 날: 다른 곳에서의 장례
당신은 혼자 죽을 수 있나요?: 연고 없는 자의 연고자들
인기척을 내는 거예요: 나눔과나눔 박진옥
불온한 장례식: 〈탈가부장:례식〉 기획단장 뀨뀨
죽어가는 이의 이웃: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이상익, 무지개정류장 운영자 지안
사람으로 기억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의 장례와 애도
7. 졸곡
모든 봄을 기억해낼 수 있으리라: 사회장 명장 장례지도사 박재익
느슨한, 난잡한, 다소 외로운: 부산시민공영장례조문단, 부산반빈곤센터 최고운
나오며_ 산 사람의 자리
주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내가 알 수 있는 건 단 하나였다. 죽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죽고 싶다는 사람도, 다가오는 그 시간 앞에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이 떠난 후 남겨질 사람, 자신이 떠나도 소식조차 모를 사람, 내 죽음이 폐를 끼칠 사람, 내 장례를 치러줄 사람, 내 장례식에 올 사람… 인생의 마지막에 떠올리는 건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사람은 말기 암을 선고받고도 다음 날 출근을 하고, 메일을 열어 거래처와 일정 조율을 하고, 장을 보고 밥을 하고, 주말에는 요양원을 찾아간다. 혼자 살아가는 사람은 없으니까. 유언이라는 걸 남기고 마지막 인사를 준비한다. 내가 죽음에 관해 아는 유일한 한 가지는, 혼자 죽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처음 입관을 지켜본 이는 여든이 훌쩍 넘은 남자 노인이었다. 그때 나는 장례지도사 실습생 신분(염습과 입관 참관이 허락된다)이었다. 안치대에 누운 그를 보며 안타까울 정도로 마른 몸이라 생각했는데, 그 뒤로 보게 되는 노인 대부분이 그랬다. 살아내는 데 연료로 써버린 듯 근육과 살이 말라붙어 있었다. 배가 없어 가슴뼈 아래가 가파르게 기울어진 데다가, 팔이건 무릎이건 한 군데 이상 굽어 있었다. 나는 사람이 시체로 나타났다는 사실보다 늙은 몸으로 등장한 데 더 놀랐다. 나이 듦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벗은 몸. 나는 나이 듦도 모른 채 죽음에 대해 알고자 했던 것이다. 고인의 몸에서 욕창 밴드를 떼어내며 죽는 일보다 늙는 일에 대해 먼저 배웠다.
시신은 당연하게도 부패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다. 이럴 때 시신을 물로 씻으려고 하면 피부가 다 쓸려나간다. 탈지면으로 온몸을 감싸고 기다려야 한다. 대규모 작업이라 장례지도사 서너 명이 동원됐다. 문제는 얼굴. 다른 곳은 한지로 감쌀 수라도 있지, 얼굴은 입관 때 가족에게 보여야 했다. 사라진 눈을 만들고, 부서진 코를 세우고, 눈썹마저 한 올 한 올 새로 그렸다. 피부색을 돌리는 일은 시신 메이크업을 담당하고 있는, 그의 아내이자 동료인 고정순이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