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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라이트 노벨 > 앨리스 노벨
· ISBN : 9788960523241
· 쪽수 : 336쪽
· 출판일 : 2014-02-28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에필로그
작가 후기
리뷰
책속에서
홍련의 불꽃을 본다.
아름다웠던 정원의 작은 정자도 지금은 붉은 바닷속에 잠겼다. 옥좌가 있는 방에서 바라보는 중앙정원 일대는 온통 불바다이다.
공기에 섞여 살이 타는 냄새가 난다. 이 얼마나 싫은 냄새인가.
우렁찬 외침도, 비명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는다. 지금 왕궁에 있는 사람은 라일라와 반란군 병사들뿐이다.
‘그 아이는 무사히 왕궁을 빠져나갔을까?’
아마 괜찮을 거야. 마레이카는 시녀 아미나와 함께 있어. 아미나라면 반드시 여동생을 지켜줄 거야.
내가 가르쳐준 그 길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통로인걸. 다른 이들이 찾아낼 리가 없어.
그런데 라일라는 왜 이런 사태가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반란군이 쳐들어와서 왕궁에 불을 질렀다. 어머니는 이 모든 게 라일라 탓이라며 그녀를 매도하다가, 결국에는 반쯤 미친 상태로 창문 밖에 몸을 던졌다. 모든 게 마치 빛과 같이 빠르게 지나갔다. 라일라가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곤, 도망칠 곳을 찾아 허둥대는 시종들에게 돈이 될만한 것들을 쥐어주며 왕궁을 빠져나가도록 돕는 것뿐이었다.
강한 열기를 품은 바람이 불어오더니, 흩날리던 머리카락에 불이 붙었다. 머리카락이 타는 냄새에 얼굴을 조금 찡그렸다. 그리곤 입가에 살짝 거짓 웃음을 지었다.
―이제야 겨우 모든 걸 끝낼 수 있어.
이토록 처참한 광경을 눈앞에 두고도, 신기하게 마음만은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숨을 크게 들이쉰 라일라는 점점 다가오고 있는 사신(死神)의 발소리를 맞이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주인을 잃은 옥좌에 앉아 여유롭게 다리를 꼬았다. 팔걸이에 한쪽 팔을 걸치고 나른하다는 듯이 턱을 받친 채 눈앞에 나타난 남자를 위압적인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반란군의 우두머리이자 미주크 국의 제3왕자였던 칼리파. 10년 전 우리 왕국에 의해 국가가 패망한 후, 포로로 잡혀왔다가 같은 해에 탈주한 이후로 행방불명이 된 남자다.
‘아아, 살아계셨군요…….’
잊을 수 없는…… 사랑스러운 사람.
하지만 라일라에겐 그를 그리워할 자격이 없다.
핏방울이 검 끝을 타고 떨어져 만든 피 웅덩이에 눈을 가늘게 뜨고, 왕녀의 가면을 썼다.
훌륭하게 연기해 보이겠어.
10년만의 재회다. 칼리파가 라일라와 그녀의 쌍둥이 동생인 마레이카를 구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두 사람은 소름끼치도록 닮아서, 몇 년이 흐른 지금도 고작 가르마가 다를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라일라는 자청해서 마레이카를 대신하기로 했다.
외부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매스우드 국의 왕녀는 마레이카 한 명. 이 자리에서 라일라의 목이 날아가더라도 여동생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이 순간만이라도 좋아. 칼리파의 눈만 속일 수 있으면 된다.
“살아있었나?”
그래, 내 여동생 마레이카는 이런 말투야. 그 아이가 ‘왕녀’를 연기할 때는 꽤 오만한 태도를 취하곤 했다.
‘하면 되잖아’라며, 꽤 좋은 연기를 펼치고 있는 자신에게 라일라는 내심 놀랐다.
그러자 칠흑의 터번 속에서 이쪽을 주시하던 호박색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들어 올린 검 끝이 곧바로 라일라를 향했다.
‘아아, 이걸로 끝이다.’
라일라의 얼굴에 유유히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네년만은 죽이지 않겠다. ―마레이카.”
그토록 원하던 소망은 산산이 조각나고, 라일라는 마레이카로서 반란군의 포로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