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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라이트 노벨 > 앨리스 노벨
· ISBN : 9788960523869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14-08-30
책 소개
목차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
작가 후기
역자 후기
리뷰
책속에서
“엘리어스, 오늘도 지각인가?”
엘리어스 오스칼리우스는 문을 열자마자 들린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근무처인 기사단 본부에 다다른 건 근무 시작 시간을 조금 넘겼을 무렵이었다. 늘 있는 일이기에 딱히 서두르지 않고 걸어온 게 잘못이었던 모양이다. 기분 탓인지도 모르지만, 그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너는 좀…… 뛰거나 빨리 걸으려는 노력이라도 해. 그러면 못 본 척 넘어갈 수도 있어. 네 태도가 너무 뻔뻔스러워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곤란하잖아.”
그렇게 말하고 엘리어스의 앞을 가로막은 이는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의 상사였다.
“죄송합니다. 곤경에 처한 어르신이 계시기에 짐을 옮겨드리고 왔습니다.”
엘리어스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상사인 휴 그레이브스에게 지각한 이유를 말했다.
“그렇군…….”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얼굴을 들자, 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엘리어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짙은 파란색 눈동자와 갈색 머리카락, 남자답고 단정한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만큼 위압감이 있었다. 엘리어스도 휴와 마찬가지로 파란색 눈동자지만 조금 더 연한 빛깔이며 머리카락은 은색. 체격도 휴에 비하면 작았다.
엘리어스는 미소를 띠며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상사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럼 이만”이라며 인사를 하고 대기실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즉각 한 손으로 머리를 잡히는 바람에 도망은 실패로 끝났다.
“그건 닷새 전의 지각 이유였지?”
휴의 손이 엘리어스의 정수리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는 머리를 쓰다듬는 것처럼 보일 터였다. 하지만 손끝으로 거세게 쥐고 있기 때문에 제법 아팠다.
“그랬나요? 그럼 임산부가 고통스러워하기에…….”
“그럼이라니! 게다가 그건 일주일 전에 들었어. 너는 산달인 임산부와 조우하는 확률이 아주 높구나?”
“네, 신기하게도 말이죠.”
엘리어스는 물러서지 않고 대답했다. 휴는 크게 한숨을 쉬고 고개를 떨궜다. 엘리어스는 그의 움직임에 맞춰서 흔들리는, 보기보다 더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을 멍하니 바라봤다.
“됐어, 가. 내일은 지각하지 말고.”
머리를 쥐었던 손을 놓으며 지친 듯 비틀거렸다. 엘리어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제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대기실로 향했다.
휴 그레이브스는 기사단장 보좌관이라는 직위의 우수한 남자다. 아직 20대 전반의 젊은 나이에, 검술만으로 그 지위까지 올라간 실력자였다.
그런 휴가 대장을 맡은 부대는 괴짜들만 모인, 기사단에서 가장 개성적인 부대였다. 다루기 어려운 인간은 휴에게 떠넘기자는 기사단장 때문에 괴짜들이 모인 부대가 된 모양이다.
휴의 부대는 통칭 ‘만물상’이라 불리고 있다. 그 이름대로, 기사단 본부의 화장실 청소부터 사건 발생 시의 구경꾼 정리까지 무슨 일이든 맡고 있다.
그렇게 인원과 업무가 늘어, 부대를 총괄하는 입장인 휴의 부담도 점점 늘고 있다.
지지리 운도 없는 휴와 안 지 벌써 3년이 되었다. 엘리어스는 기사단 입단 뒤 곧장 그의 부대에 배치되어, 방금 전과 같은 대화를 3년 내내 아침마다 반복했다.
이 나라에서는 작위가 있는 자가 반드시 나라의 중추와 연관되지는 않는다. 물론 권력을 얻고 싶어서 관료가 된 귀족은 있다. 하지만 국왕이 실력주의기 때문에, 귀족이라는 이유로 특권에 유리하지는 않다. 귀족도 장사를 하고, 평민도 의원이 되는 등, 직업의 선택은 자유롭다.
후작인 엘리어스의 아버지는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적자(嫡子)인 엘리어스가 그 사업을 물려받지 않고 기사단에 들어온 건 어떤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휴는 엘리어스의 그 복잡한 사정을 알기에 그에게 무르다. 휴가 이따금 신경 쓰는 듯한 시선을 보내는 건 걱정하기 때문이리라. 따라서 지각을 해도 관대하게 봐준다.
휴에게는 감사하고 있다. 휴의 덕을 본 부분이 많았다. 형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지각을 해 놓고도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옷을 갈아입은 뒤 본부로 돌아가자, 웬일인지 방 안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