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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도가철학/노장철학 > 노자철학
· ISBN : 9788960867970
· 쪽수 : 308쪽
· 출판일 : 2015-03-12
책 소개
목차
서문
1. 생각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 인간, ‘생각의 터전’을 마련하다
:: ‘나’라는 존재의 발견
:: 신과 소통하는 내공, ‘예’와 ‘덕’의 출현
:: 천명보다 ‘인간의 힘’을 믿다
:: 덕은 지식이 아니라 동력이다
2. ‘생각하는 힘’이 만든 역사
:: 주변과 중심의 역전, 그리고 ‘철학’의 탄생
:: 철기, 부의 흐름을 바꾸다
:: 하늘의 시대에서 땅의 시대로
:: 법法의 등장이 말해주는 것
:: 인간의 생각으로 닦은 길, 도道
:: 노자, 공자를 꾸짖다
3. 유와 무로 완성한 노자의 사상
:: 공자와 노자, 천명론을 극복하는 법
:: 정의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다
:: 본질을 부정하고 관계를 보다
:: 관계론의 총결, 유무상생
4. 가짜에 속지 않는 법, 관계론
:: ‘생각의 틀을 버리는 것’이 무소유다
:: 차이가 없다면 의미도 없다
:: 불교에서 말하는 관계론
:: 《주역》에서 말하는 관계론
:: 관계론 철학의 종착점, 《도덕경》
5. 왜 현대 철학자 ‘노자’인가
:: 철학이란 무엇인가
:: 세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6. 지知가 아닌 명明으로 본다는 것
:: 진실의 세계는 저곳이 아닌 이곳에
:: 해와 달을 품다
7. ‘안다’는 것은 결국 ‘모른다’는 것
::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위대함
:: 사랑과 이별은 하나다
:: 확신하지 않는 힘
:: 자기표현이 안 되는 공부는 끊어라
8. 무위, 변화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 살아 있는 나무만이 흔들린다
:: 코끼리가 살얼음 밟듯이 행동하라
:: 나는 타인의 타인일 뿐
::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없다
:: 물러서면 앞서고 숨으면 빛난다
9. 불편한 법칙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 보여지는 대로 보라
:: 지배당하지 않는 힘
:: 욕망과 희망의 자발성
:: ‘선善’이라는 이름의 모순
10. ‘고유명사’로 살아간다는 것
:: 자기로부터의 혁명
:: 삶은 결국 ‘내 몸’에 있다
:: 일반명사가 아닌 고유명사로 존재하라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인간이 인간만의 능력으로 건립한 그 길을 바로 ‘도道’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만의 능력이란 믿음의 힘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말해요. 인간은 이제 천명을 따르지 않고 도를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이 단계에 이르러 비로소 우리에게 익숙한 도를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도의 출현은 바로 중국 문명에서 최초로 터져 나온 인간의 독립선언이에요. 도의 출현 이전에 중국인이 세계를 해석하는 두 개의 중심축은 ‘천’과 ‘덕’이었습니다. 도가 출현하고 나자 이제 중국인들은 세계와 관계하고 세계를 해석하며 또 삶의 의미를 확인하는 두 개의 중심축을 새롭게 갖게 됐으니 그것이 바로 도와 덕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덕道德’은 바로 이 도와 덕을 붙인 말이지요.---71쪽
노자의 꿈은 인간의 주관성을 완전히 탈피해 자연의 객관성으로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가치’의 세계와 결별하고, 자연이라고 하는 ‘사실’의 세계에서 인간질서의 근거를 발견하려는 것이죠. 자연이 움직이는 모습을 그대로 따라서 혹은 모방해서 살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의 질서를 인간의 질서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연의 질서는 누구나 관찰할 수 있지요. 또 누구에게나 똑같은 모습으로 열려 있습니다. 그러니 객관적일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투명하고 어디에나 똑같이 적용되는 보편성을 가지게 되겠지요. 천명론을 극복할 수 있는 객관성?보편성?투명성은 이렇게 확보되었습니다.---87쪽
노자는 거대국가 시스템이 아니라 작은 나라 시스템인 지방자치제를 지향합니다. 그런데 지방분권이나 지방자치를 하려면 하나의 표준으로 전체를 묶어서는 안 됩니다. 각각의 분리된 곳들 각자에 맞는 다양한 기준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저 멀리서 표준으로 기능하는 보편적 이념을 버리고 바로 여기에 있는 구체적인 것들의 자율성을 취하는 방식, 즉 ‘거피취차去彼取此’가 더 적합한 방식으로 요청될 수밖에 없습니다.---160쪽
이 세계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인식 능력은 어때야 할까요? 노자에 의하면 그것은 ‘지知’의 방법이 아니라 ‘명明’의 방법이어야 합니다. 해를 해만으로 보거나 달을 달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달을 해와의 관계 속에서, 해를 달과의 관계 속에서 보는 것이지요. 해를 해로 보고, 달을 달로만 보는 것은 해와 달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지요. 분리된 것으로서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을 ‘지’라고 합니다. 반면 해와 달을 상호 연관 속에서 인식하는 것을 ‘명’이라고 하는데, 달과 해가 존재적으로 따로따로 분리된 두 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이루는 한 벌의 사건으로 보는 것이죠. 해와 달을 동시에 포착하는 능력, 이것이 바로 ‘명’입니다. 이것이 바로 노자의 통찰입니다.---194쪽
대립면의 긴장 상태를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은 과감하지 않으며 광신狂信하지 않아요. 광신은 대개 협소한 믿음에서 옵니다. 앞서 말한 “저 똑똑하다고 자처하는 자들로 하여금 과감하게 무엇을 하려고 하지 못하게 한다[使夫智者不敢爲也]”는 말은 사람을 광신하게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광신하는 사람은 대개 헛똑똑이라는 말입니다. 충혈된 눈으로 과감하게 말하는 사람, 굵은 팔뚝을 휘저으며 주장하는 사람, 깃발을 들고 소리치는 사람, 머리띠를 하고 내달리는 사람, 서둘러 충고하려 덤비는 사람이 대개 헛똑똑이라는 것입니다. 헛똑똑이들이 판치는 세상은 거칠고 갈등이 심하며 선명성 경쟁이 하늘을 찌르게 됩니다. 세계가 대립면의 긴장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시 말해 대립면의 경계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진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214쪽
무위란 바로 이런 이념이나 기준과 같은 관념의 구조물에 수동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세계의 변화에 따라 자발적이고 유연하게 접촉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래서 ‘유위’적 태도를 가진 사람은 자신 앞에 펼쳐지는 세계를 자신의 기준에 따라 ‘봐야 하는 대로’ 보게 되지만, ‘무위’적 태도를 가진 사람은 어떤 기준의 지배도 받지 않기 때문에 세계를 “보여지는 대로” 볼 수 있습니다. 세계를 ‘보여지는 대로’ 보고 반응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세계를 “봐야 하는 대로” 보는 사람은 과거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겠죠. 그러니 무위의 태도를 지녀야만 변화하는 진실과 접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244~245쪽
'학고창신學古創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거룩함은 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서 있는 바로 여기가 거룩함이 등장하는 원초적 토양입니다. 이상적인 삶은 저 멀리 있는 곳에 도달하려는 몸부림이 아니라,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착실한 발걸음일 뿐입니다. 저 먼 곳에 인위적으로 걸어 놓은 기준을 추종하지 말고,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자기 자신에 집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