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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61042451
· 쪽수 : 144쪽
· 출판일 : 2019-11-05
책 소개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사랑아, 미안하다
부부 ————— 10
마지막 산책 ————— 12
혼자 걷는다 ————— 14
아내는 아직도 흥정하고 있다 ————— 16
어떤 유행가 ————— 18
가계부 ————— 20
밍크코트 ————— 22
사랑이 머물던 술 번지 ————— 24
생일여행 ————— 26
당신은 보고 있을 거예요 ————— 28
붉은 광장에서 첫눈을 만나다 ————— 30
꿈에서도 제사장을 보는 아내 ————— 32
사랑아, 미안하다 ————— 34
비로암에서 ————— 36
제2부 그분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독거노인 ————— 40
맥문동 ————— 42
채 주사님 ————— 44
투명인간 ————— 46
떼까마귀 ————— 48
혈세 ————— 50
꽃 ————— 52
샤워기 물도 따라 웃는다 ————— 54
보배 선생님 ————— 56
금슬 좋은 지기 ————— 58
설날 ————— 60
그분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 62
어느 암울한 오후의 단상 ————— 64
고래 ————— 66
제3부 열다섯 번의 장미꽃바구니
까보다로까cabo da roca ————— 70
펠리컨과 함께 춤을 ————— 72
티티카카에 대한 회상 ————— 74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헬싱키까지 ————— 76
리마 발 비행기 안에서 ————— 78
무두말라이에 핀 꽃 ————— 80
부끄러워하라 ————— 82
들꽃 같은 사람들과의 첫날 ————— 84
들꽃 같은 사람들과의 둘째 날 ————— 86
불암산을 오르며 ————— 88
머귀나무 ————— 90
장모님, 내 가슴에 사시다 ————— 92
첫 번째 버킷리스트 ————— 94
열다섯 번의 장미꽃바구니 ————— 96
간이역 ————— 98
세렌디피티 2 ————— 100
세렌디피티 4 ————— 102
제4부 십리대숲의 추억
봄비 ————— 106
산 7번지 그 둑길 ————— 108
추억 한 장 ————— 110
마곡사 천년 숲길 ————— 112
회상 ————— 114
전화 한 통 ————— 115
솔메이트 ————— 116
연인 ————— 118
새벽 강에서 ————— 120
한 그루 회나무로 서 있다 ————— 122
백곡저수지 ————— 124
십리대숲의 추억 ————— 126
어둠이 길을 내다 ————— 128
▨ 이한열의 시세계 | 김건영 ————— 131
저자소개
책속에서
아내는 아직도 흥정하고 있다
생전에 아내와 함께
가까워도 북적대는 태화 장보다
조금 멀어도 한산한 다운 장에 가곤 했다
아내는 장꾼들과
농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깔고
눈치를 깎으며 흥정하면서 장을 다 본다
어느 날, 난전 옷 가게에서
아내 말대로
막 입는 여름 내의 하나 사는데
이만 원짜리를 고르다가
질이나 디자인이 조금 나아 보이는
삼만 원짜리를 다시 골랐다
이삼천 원 깎아도
손톱이 들어가지 않는 주인과
이십여 분 동안이나
깎고 붙이고 밀고 당기는 실랑이 속에
오늘 큰맘 먹었다면서
이만 사천 원에 지갑을 여는 아내
진작부터 입고 싶었다면서 배시시 웃었다
요즈음
나 혼자 다운 장에 가면
그 옷 가게를 바로 보지 못하고 지나간다
죽인지 밥인지도 모르고
아내의 애가 타는지
등이 타는지도 모르고
백화점의 수십 곱절 비싼 옷을 사주면
생각 없이 아내의 고충을 입었던
못난 처신이 죄스러워 외면하고 지나간다
오늘도 파장 되어가는
장터 모퉁이 돌아 나오면서
힐끗 쳐다보니
아내는 아직도 그 옷 가게에서 흥정하고 있다
십리대숲의 추억
낯설지 않는
이 겨울,
코트 깃을 세운 연인들의
댓잎 밟는 소리에 사랑은 깊어가고
태화루 강둑 아래
원앙은 쌍쌍이 노니는데
바람처럼 스치며
오지 않을 약속은
떨어진 잎이 되어 퇴색되어 간다
부질없이 스며드는
하루살이 회상
강물 따라 무심히 흐르지만
순정 담긴 시詩 한편,
살아갈 이유가 되어버린
그리운 세월에 매이고
꿈속에서도
오붓하게 거닐던 대숲 길 아늑하다
혼자 걷는 발걸음에
추억이 풀풀 묻어나도
기다림은 저만치 홀로 고즈넉하고
미명 속을 내딛는
기다리는 발자국은
두근거렸던 순간을 밟으며
또 같은 그리움으로 하루를 연다
부끄러워하라*
고장 난 고무보트에 작은 몸을 싣고
천진난만한 얼굴 환하게 웃는다
가족과 국경을 건너던 시리아의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
에게 바다의 에메랄드빛,
하얀 집들이 어우러져
터키에서는 멋진 유럽풍을 지녀
부자들이 즐겨 찾는 보드룸 휴양지 한 해변에서
파도에 휩쓸려 떠 내려와
물고기처럼 죽은
어린 주검은
빨간 샤스와 파란 팔부 바지 차림으로
얼굴을 모래 속에 묻은 채 짧은 생을 마감했다
꿈도 꾸어보지 못한 채
낯선 타국 바닷가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아일란의 죽음은
단지 그 나라에 태어나 난민이 된 이유뿐이다
폭정에 이어
전쟁이 할퀴고 간 고국을 떠나
새 삶을 찾으려는 그의 아버지는
아일란의 형과 아내마저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하늘나라로
난파선의 파도에 실어 떠나보내야 했다
아일란이 죽은 얼마 후 알리호자 해변의
바닷가로 내려가는 언덕 위 나무에
누가 내걸었는지 모르는 검은 현수막이 펄럭였다
‘사람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라.’
* 부끄러워하라 : 2015년 9월 15일 경향신문 김유진 기자 4신 기사 내용 일부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