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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91189217846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25-11-30
책 소개
목차
독자에게 보내는 메시지 4
우리의 추억은 이곳에 남아 12
감사의 말 344
리뷰
책속에서
나는 아가트를 따라 문 쪽으로 걸어갔다. 햇살이 아가트의 머리칼에 부서졌고, 금발 속에 긴 흰머리 몇 가닥이 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내 가슴을 조여왔다. 내 눈에는 동생이 늙지 않는 것만 같았는데, 지난번 만남 이후 벌써 5년이 지났고, 어느새 아가트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내가 열쇠를 어디다 뒀더라.”
아가트는 가방을 현관 매트 위에 쏟아부었다. 껌과 담뱃갑들 사이에 긴 열쇠가 놓여 있었다.
“찾았다!”
열쇠가 거기에 없었다면 좋았을 텐데….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돌아서야 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할머니 집이 다른 사람에게 팔리기 전에 우리의 마지막 여름휴가를 여기서 보내자고 내가 제안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 문이 열리는 걸 보는 기분, 그리고 신발을 벗으라던 할머니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기분을 알지 못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나도 더는 살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다. 할머니를 사랑한 순간부터 나는 할머니를 잃을까 두려웠다. 어릴 때 밤늦게 전화가 울리거나, 할머니가 전화를 바로 받지 않거나, 엄마가 어떤 소식을 듣고 눈썹을 찌푸릴 때마다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건가 추측했던 게 아니었다. 그냥 그게 사실이라고 받아들여버렸다. 나는 할머니의 죽은 몸 위에서 울었고, 장례식에 참석했으며, 할머니의 부재를 격렬히 느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무사하다는 걸 알게 되면, 엄마가 받은 전화가 다른 소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행복에 벅차올라서 하늘과 운명과 전화기와 엄마, 감사할 수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곤 했다. 그때 세상은 갑자기 맛있고, 놀랍고, 훌륭해졌다. 한 심리학자가 어느 날 내게 말하길, 건강염려증이 있는 사람들은 중병 소식을 가장 잘 견디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머릿속으로 이미 너무 많이 훈련해서, 실제로 그런 일이 닥치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평생 반복해도 나는 할머니의 부재에 준비되지 않았다. 세상이 할머니라는 중심축 없이 어떻게 돌아갈 수 있는지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나를 한 번도 버리지 않았던 단 한 사람을 잃은 후에 내가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동생. 그게 바로 나다. 나는 동생으로 태어났고, 동생으로 죽을 것이다. 나는 형제자매 사이에서의 위치가 우리가 어떤 어른이 되는지를 깊이 각인시키고, 심지어 결정한다고 굳게 믿는다. 만약 내가 첫째였다면 아마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첫째는 길을 열고, 모든 곳에서 자리를 차지하며, 모든 관심을 빨아들인다. 부모는 첫째의 존재에 몰두하고 온갖 근심이 첫째를 감싸며, 모든 ‘처음’의 힘은 첫째에게 쏠린다. 많은 이들에게 가족은 첫째 아이와 함께 시작된다. 그다음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가족을 넓히지만, 첫째는 가족의 토대를 세운다. 첫째는 뒤따르는 이들이 알 수 없는 중요성과 책임을 짊어진다. 반면, 뒤이어 태어난 아이들은 이미 점유된 공간에 발을 들인다. 관심은 나누어지고, 불안은 덜하며, ‘처음’은 이미 지나 있다. 그들은 자신을 만들어가기 위해 본보기를 정하고, 그것에 의지하거나 거역하면서 성장한다. 그들의 성격은 반응과 비교 속에서 정의된다. 더 시끄럽거나, 더 조용하거나, 더 이렇거나, 덜 저렇거나. 어느 자리가 더 부러운지는 나도 알 수 없다. 각자의 위치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으니까. 내가 아는 건, 나는 둘째이고, 막내이고, 작은아이이고, 그다음에 태어난 아이라는 사실뿐이다. 그리고 나는 평생 그것을 깊이, 본능적으로 느끼며 살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