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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중기(임진왜란~경종)
· ISBN : 9788961671644
· 쪽수 : 360쪽
· 출판일 : 2014-08-25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제1장 무인 이순신
이순신, 세상에 태어나다/이순신의 할아버지 이백록은 기묘사화의 피해자인가?/무인의 길로/드디어 출사하다/강직한 원칙주의자/녹둔도전투/다시 관직에 나서다
제2장 전란의 서막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본을 통일하다/임진년 이전의 조선/조선의 전쟁 준비/이순신, 전라좌수사로 부임하다/조선수군의 성장/임진년의 전쟁이 시작되다/선조, 파천하다/'임진왜란'이란 명칭에 대하여
제3장 부전자전, 원준량과 원균
아버지 원준량, 아들 원균/원균의 출사/원균의 경상우수영 병력 해산의 진실1: 경상우수영의 군사/원균의 경상우수영 병력 해산의 진실2: 경상우수영의 군선/원균의 경상우수영 병력 해산의 진실3: 경상우수영의 전쟁 준비 상황/원균의 경상우수영 병력 해산의 진실4: 그는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원균의 임진왜란 초기 승전 의혹
제4장 남해의 전신(戰神)
첫 출전을 준비하다/이순신의 1차 출전/이순신이 원균과의 연명 장계를 거부한 이유는 무엇인가/그를 위한 변명인가, 역사 왜곡인가/이순신의 2차 출전/거북선의 개발과 건조/거북선의 외형/거북선의 내부 구조/조선수군 3차 출전: 한산도대첩과 안골포해전/4차 출전: 부산포해전/떠나간 용장, 녹도만호 정운/당파전술에 대한 오해
제5장 삼도수군통제사
변화하는 전황/이순신의5차 출전: 웅포해전/웅포해전은 이순신의 패전인가?/원균의 양민 학살/한산도 진영을 설치하다/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또 다른 전쟁, 소강기 속 전력 정비 1: 식량 확충/또 다른 전쟁, 소강기 속 전력 정비 2: 병력 확충/또 다른 전쟁, 소강기 속 전력 정비 3: 군기軍器 확충/2차 당항포해전/장문포해전/장문포해전의 후폭풍
제6장 아군 속의 적
아군 속의 적: 선조 1/아군 속의 적: 선조 2/아군 속의 적: 원균/아군 속의 적: 선조 그리고 원균/충청병사 원균/거짓 평화협상의 결과/파직의 원인/이순신, 파직당하/두 번째 백의종군/
제7장 조선수군 붕괴의 원흉
삼도수군통제사 원균/곤장 맞은 삼도수군통제사/칠천량해전/원균은 전사하였는가?
제8장 이순신의 귀환
이순신, 돌아오다/대역전을 이루다: 명량대첩/명량대첩의 결과/명량대첩에 얽힌 잘못된 속설/아들을 가슴에 묻고/부활하는 조선수군/
제9장 신화의 끝
조명 연합함대의 구성/순천 예교성전투/이순신 최후의 전투: 노량해전/이순신은 자살하지도 은둔하지도 않았다/
제10장 성웅이 떠난 후
원균, 선무일등공신이 되다/≪선조수정실록≫은 원균을 왜곡하였는가?/이순신과 원균에 대한 평가: 임란 직후/이순신과 원균에 대한 평가: 조선 후기/이순신과 원균에 대한 평가: 근현대/원균 옹호론의 등장
맺음말 21세기 이순신을 꿈꾸는가?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순신은 적은 나라를 침략한 왜구만이 아니라 아군 속에도 존재했다. 이순신을 존경하고 추앙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이순신을 폄하하거나 왜곡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한 폄하와 왜곡은 이순신이 생존했던 당시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다. 이순신에 대해 왜곡된 역사를 주장하는 '아군 속의 적'은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어느덧 4백여 년이 흘렀지만, 이순신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머리말' 중에서
접근전에는 판옥선에 비해 왜선이 유리했기 때문에 굳이 조선의 군선이 적선에 가까이 다가가 충돌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거북선이나 판옥선으로 직접 들이받으며 당파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속적인 충돌은 공격을 가하는 배에도 부담이 되며, 사방이 막힌 거북선이라면 모를까 판옥선의 경우에는 백병전의 위험도 있기 때문에 들이받아 격파하는 방식을 주전술로 삼는 것은 지극히 비효율적이다.
-'제4장 남해의 전신戰神' 중에서
웅포해전에서 조선수군이 전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이전의 해전들과 비교해볼 때 큰 승리는 아니었다. 이것은 조선군의 문제라기보다는 일본군이 해전을 기피한 데서 비롯된 문제였다. 일본수군이 육지에서 버티는 요새 함대 전술을 유지하는 한 조선수군의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판옥선이나 거북선과 같은 선박은 얕은 바다로 진입하기도 어려웠기에 수륙 협공이 필수적이었으나, 이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쟁 자체도 어느 정도 소강기에 접어들었기에 임진년처럼 큰 전과를 거둘 만한 해전이 벌어지지 않게 된 것도 또 하나의 이유였다.
-'제5장 삼도수군통제사'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