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28년 러시아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844년 카잔 대학교에 입학하나 대학 교육에 실망,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삼 년간 방탕한 생활을 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캅카스로 가서 군대에서 복무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유년 시절」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하여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록』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을 하기도 했다. 민중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민담 22편을 썼는데 그중에서도 「인간에게 많은 땅이 필요한가」는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가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로 꼽기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사유재산 및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영면하였다.
펼치기
이동진 (옮긴이)
정보 더보기
시인, 소설가, 수필가, 희곡작가, 번역가, 전직 외교부 대사
그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재학 중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교관이 되었다. 참사관(이탈리아, 네덜란드, 바레인), 총영사(일본), 공사(벨기에)를 거쳐 주 나이지리아 대사를 역임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의 연구위원(Fellow)으로 1년 동안 재직하였다.
그는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월간 <현대문학>에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첫 시집 『韓의 숲』과 최근 시집 『내 영혼의 노래』 등 수십여 권의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본인이 영역한 시집 『Songs of My Soul』은 1999년 독일 Peperkorn사가 출간하였다.
그는 대학졸업 직후 극단 <상설무대>를 창단하여 대표로 활동, 유신 초기에 여러 번 공연된 『금관의 예수』을 비롯하여 『누더기 예수』『독신자 아파트』등 희곡집을 출간하였다. 그 가운데 희곡 『금관의 예수』는 본인이 영역하여 『Jesus of Gold Crown』이라는 제목으로 나이지리아에서 출간하였다.
번역서로는 『장미의 이름』『걸리버 여행기』『천로역정』『제2의 성서』『링컨의 일생』『아우렐리우스 명상록』『통치자의 지혜』『잠언과 성찰』『365일 톨스토이 잠언집』『1분 군주론』 등 수십여 권이 있으며, 『이해인 시선집』, 『홍윤숙 시선집』등을 영어로 번역, 독일에서 출간하였다.
현재 한국외교협회, 한국시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펜클럽 한국본부, 한국휴머니스트회, 가톨릭문학인회 등의 회원으로 있다.
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