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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중세 경제사

서양 중세 경제사

한스외르크 길로멘 (지은이), 김병용 (옮긴이)
에코리브르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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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중세 경제사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서양 중세 경제사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서양사 > 서양중세사
· ISBN : 9788962631692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17-12-29

책 소개

중세 경제사 입문서. 이 책의 가장 놀라운 점은 중세 전문가이긴 하지만 저자가 중세를 설명할 때 꼭 필요한 요소들을 어떻게 이렇게 잘 선정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저자는 5~15세기 중세 약 1000년 동안을 경제사 측면에서 크게 네 시기로 구분해 설명한다.

목차

1 고대 후기에서 중세로(5∼7세기): 단절과 연속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신(新)경제?|인구 감소|‘야만족’의 정주|세금 국가의 몰락|농업|토지 경작|포도 재배|올리브 특용작물 재배|목축, 사냥, 어업|광업, 철 수공업|주거지의 확장, 도시, 수공업|상업, 운송 도로|야만족의 경제

2 7∼9세기: 첫 번째 호황
대토지 경영의 대표적 형태|적은 수확량과 식량 위기|채소 재배|포도 재배|사냥, 어업, 목축업|여러 계층의 농민|농업경제 호황의 징후|기술|수공업|광업, 연금술, 화폐|상업

3 중세 중기: 경기 하락과 10~13세기의 새로운 경제성장
10세기의 경제 위기|바이킹?노르만?사라센?훈족|성과 자치권|경제성장 국면|인구|개간과 이주|농업 생산성|삼포제|포도 재배|신기술|방앗간의 확산|철 생산의 증대|소금의 생산과 판매|도시의 기원과 건설|수공업과 수공업자 조합|화폐 사용의 증대|신용|상업 호황(‘상업혁명’)|한자동맹의 시작|샹파뉴 연시장|원격지 무역의 새로운 시작|대양무역의 새로운 시작|교회의 반응

4 중세 후기: 마비, 위기, 새로운 시작
몰락 징후의 축적|인구, 임금, 물가|농업경제의 대안|원격지 무역|은행|신용|광산업과 금속|직물 생산|직물업에서 선대제와 혁신|수공업자 조합|조망

참고문헌
옮긴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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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한스외르크 길로멘 (지은이)    정보 더보기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났으며, 바젤 대학교와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특히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는 중세사의 거장 자크 르 고프(Jacques Le Goff)의 지도를 받았다. 1976년 클뤼니 수도원에 속한 바젤의 세인트 알반(St. Alban) 수도원의 지주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4년에는 바젤 대학교에서 프란티셰크 그라우스(Frantisek Graus) 교수의 지도 아래 〈중세 시대의 지대 거래(Der Rentenkauf im Mittelalter)〉라는 교수 자격 논문(Habilitation)을 발표했다. 1988년부터 2010년 정년 때까지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중세 유럽 및 스위스의 경제.사회사를 가르쳤다. 주요 연구 분야는 농촌사, 신용과 이자, 경제사상, 도시사, 기독교와 유대교 관계에 관한 사회사, 이민사, 민중문화, 바젤 공의회의 역사, 교단의 역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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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용 (옮긴이)    정보 더보기
독일 뮌스터 대학교에서 〈중세의 빈민과 영혼 구제〉로 석사 학위를,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중세의 도시와 농촌의 관계〉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8년 현재 조선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서양 중세사이고, 관심 주제는 사회 변동이다. 특히 중세의 도시 발전이 사회 변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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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포도 재배
밀 다음으로 중요한 식료품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매일 마셨던 포도주였다. 이런 포도주 문화는 로마 후기에 이미 북쪽으로 퍼졌다. 론강 유역의 알로브로게스(Allobroges)족은 1세기에 거친 기후를 견뎌내는 포도종 ‘알로브로지카(allobrogica)’의 생산에 성공했다. 이 포도주의 주요 판매 시장은 비엔과 리옹이었다. 이렇게 시장을 북쪽으로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손강을 이용한 배 운송 덕분이었다. 같은 시기에 또 다른 포도주 집결지는 새로운 포도종 ‘비투리카(biturica)’를 생산하는 보르도였다. 보르도는 특히 브리타니아로 포도주를 수출하는 중심지였다. 같은 시기에 인접한 에스파냐는 새로운 포도종 ‘코코루비스(cocolubis)’를 생산했다. 3세기에는 부르군트에 포도밭이 생겼다. 부르겐란트(Burgenland)와 남티롤 지역은 벌써 로마 이전에 포도를 재배해왔다. 알자스와 모젤(Mosel)강 지역에서도 일찍이 황제 도시인 트리어 근처의 피스포르트-뮤스테르트(Piesport-M?stert)에서 200년 이후로 추정되는 포도즙 기계가 확인되었다. 문학적으로는 4세기의 시인 아우소니우스가 그의 모젤강 여행기 《모젤강(mosella)》이라는 책에서 모젤 포도주를 칭송한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300년경 작가 여섯 명이 쓴 《황제 전기(Historia Augusta)》에 따르면 프로부스 황제(Marcus Aurelius Probus, 재위 기간 276∼282)는 갈리아, 에스파냐, 영국 사람 모두에게 포도주 생산을 허락함으로써 소수 특권층이 누리던 포도주를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센강 어귀, 루아르강, 팔츠, 라인강 등의 유역으로 포도 생산이 확대된 것은 아마 이 조치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초기 포도주 수출 지역은 론?가론?손?센?루아르?모젤?라인강 하류 등과 같은 물길이 닿는 곳이었다. 이것은 운송이 포도주 거래에 큰 역할을 했음을 알려준다. 전통적인 포도주 수출 지역, 특히 이탈리아는 알프스 이북 지역과 오랫동안 혹독한 경쟁을 치렀다.


몰락 징후의 축적
확실한 사료와 지표는 13세기 말에 인구 증가가 정체되었음을 보여준다. 출산율을 의도적으로 낮추어서였는지, 사망률이 높아서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많은 지역에서 인구 감소 현상이 무더기로 나타난다. 명백한 사실은 기후가 나빠졌다는 것이다. 중세 온난기의 최적 조건은 1300년경에 끝났다. 영국의 학계에서 1315년경∼1320년경의 기간을 “14세기의 첫 번째 경제 위기”라고 명명했는데, 이것은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잘 유지되어온 자원과 인구 사이의 균형을 기울게 하고 바로 뒤이어 다음 위기, 즉 페스트 위기로 치닫게 한 결정적 균열이었고, 다른 한편으로 는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었다.
나쁜 기후로 인해 모든 곡물의 수확이 1315년부터 3년간 영국에서 40.63퍼센트까지 하락했다. 이는 정상치보다 10퍼센트 낮은 수치였다. 1321년 새로운 흉년이 왔다. 밀 경작에서 수확률이 1270∼1300년 평균 1 대 3.75이던 것이 1 대 2.5로 줄었다. 북서유럽의 다른 지역인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프랑스, 플랑드르도 흉년이었다. 독일에서 1316년의 수확은 재앙이었다. 곡물 가격은 놀랍게 올라갔고 임금은 중세 후기의 최저치로 내려갔다. 그 결과 인구의 10∼15퍼센트가 기아와 질병으로 죽었다. 1313∼1317년 가축 전염병이 창궐하여 양들이 떼죽음했다. 영국의 양모 수출이 1315/1316년과 1324/1325년 사이에 3분의 1로 줄었고, 다음 10년 동안에도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다.
1315∼1325년은 북서유럽에 소 페스트가 오랫동안 나돌았다. 영국과 웨일즈에서 1319년 4월부터 1320년 9월까지 황소와 암소의 63퍼센트가 죽었고 농업과 운송에 필요한 동물이 부족해졌다. 영국 지주들이―농민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1319년에 자신들이 가졌던 가축 수를 다시 갖기 위해서는 30년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지속적인 유제품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그 당시 목격자들은 1348∼1352년의 첫 번째 페스트 발생을 이미 전환점으로 생각했다. 전염병은 1347년 아시아에서 온 제노바의 배에서 시작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흑해의 카파에서 짐을 싣고 온 배가 병균을 가져왔고, 상업로를 통해 빠르게 전 유럽으로 퍼졌다. 계속 새로운 페스트가 발생했기 때문에 전염병은 무시무시한 성격을 잃어버렸다. 사람들은 거기에 적응했고 그것과 함께 살았다. 당시 사람들의 의식은 이 시기를 하나의 함정으로 보았고, 그곳에서 빠져나와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위기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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