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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63394893
· 쪽수 : 240쪽
책 소개
목차
책을 내면서 … 4
1장 그랬더라면
금은화가 피었습니다 … 15
그랬더라면 … 19
감자 싹 … 23
슬픔에도 색깔이 있다면 … 28
모과를 닮은 그녀 … 33
어떤 회상 … 37
버섯처럼 … 42
불청객을 위하여 … 46
2장 바람 속에 들다
둥지 … 53
중전유감 … 57
바람 속에 들다 … 62
큰 뿌리 … 67
다산多産의 이유 … 71
콩 타작은 언제 할까요 … 76
연구 대상 … 80
하늘과 땅 차이 … 83
3장 자객
길을 잃다 … 89
자객 … 93
꽃샘잎샘 … 98
무모한 도전 … 102
심몽心夢 … 107
늦게 핀 꽃 … 111
리모델링 … 116
미치고 싶다 … 120
4장 길고양이
빨래 … 127
新 백발가 … 131
여자들이 내달린 이유는 … 136
아직은 괜찮아 … 141
길고양이 … 145
머루 … 150
묵정밭에서 … 154
단맛을 기다리며 … 158
5장 도깨비뜨물
인고침忍苦砧 … 165
뒷간 향기 … 170
도깨비뜨물 … 174
별나물 … 179
잃어버린 밤 … 184
벙어리장갑 … 189
봄비 내리던 날에 … 193
디지털카메라 … 197
6장 아름다운 흠
어느 날의 수다 … 205
아름다운 흠 … 210
지름길 … 214
한 우물만 파라고요 … 218
뚜껑 … 222
화단지기 … 225
겨울과 만나다 … 229
아부오름 … 233
저자소개
책속에서
길눈이 밝으면 좀 좋을까. 헤매느라 시간과 기운을 축내는 일 따위는 없을 테니까. 이미 어두운 길눈이야 어쩔 수 없으니 삶의 행로나 훤히 내다볼 수 있는 마음의 길눈이라도 밝았으면 좋겠다. 삶의 길에는 지도가 없다.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서도 다시 되돌아 나오도록 세세히 알려줄 내비게이션도 없다. 길을 잃고 헤매어도 내 이름을 부르며 애타게 달려와 줄 사람들도 없다. 오로지 스스로 알아서 찾아가야만 한다. 밀림처럼 쉽게 길을 보여 주지 않는 삶의 길은 눈물로도 열리지 않을 테니 말이다.
검불이 있던 자리에 패랭이꽃과 라벤더 싹이 돋아 있다. 대극 싹도 어느새 참새 부리만큼 발그스름하게 고개를 내민다. 검불을 걷을 때마다 묻어나는 상쾌한 방향, 라벤더 새싹이 가벼운 터치에도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자그마한 목숨들이 모진 겨울을 용케도 잘 견뎌 냈다. 죽은 듯 보이지만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 안간힘으로 버텨 낸다. 땅속 세상은 이미 생의 치열함으로 가득하다. 사방으로 뻗은 뿌리는 잠에서 제일 먼저 깨어나 세포 하나하나마다 봄기운을 채워 가며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 존재하기 위해 그리고 존재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애쓴다. 찬란한 생을 꿈꾸며 치열하게 살아갈 준비를 한다.
빨래를 하다 보면 아무리 애를 써도 잘 빠지지 않는 얼룩이 있다. 하다하다 안 되면 독한 표백제의 힘을 빌리게 된다. 그래도 안 되면 세탁소행이다. 그러면 십중팔구 말끔해져서 돌아온다. 빨래의 얼룩은 그렇게라도 뺄 수 있다지만 마음의 얼룩은 대체 무엇으로 어떻게 빼야 하나.
지난날, 누군가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가 쉽사리 잘 아물지를 않는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도록 진물만 흐른다. 여전히 쓰리고 아프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상처야 아물겠지만 흉터는 남게 마련이다. 지독한 얼룩으로 남아서 종종 그 상처를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 빨래를 하듯 마음의 상처나 얼룩도 폭폭 치댄 후 말갛게 헹궈 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