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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63710198
· 쪽수 : 496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봄바람
여름바람
가을바람
겨울바람
다시, 봄바람
작가 후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서진이 기억하는 행복은 언제나 짧았다. 그게 옆에 있었는지도 모르게 그냥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가 버리곤 했다. 그런데 어떤 행복들은 시작도 하기 전에 아픔으로 변해버리곤 하나 보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느닷없이. 아니, 어쩌면 예상했던 순간에.
숲 냄새가 가득한 그 공기 사이로 그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결혼해. 내년 4월에.”
서진의 발걸음이 가로등 아래에서 멈춰 버렸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를 올려다보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역시……, 그랬구나.
옅은 꽃향기가 어지럽게 흩어졌다. 현기증이 밀려왔다. 서진이 그의 발끝을 내려다보며 서있는 동안 다시 차분한 그의 말이 들렸다.
“그런데……, 널 원해.”
잔인하고, 부당하고, 솔직한 고백.
유원이 결혼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않았다. 약속을 깰 만큼 유원은 무책임하지 않다.
서진이 고개를 들고 그를 응시했다.
“……그럼 나하고 이런 건 뭐예요?”
마주치던 눈빛, 애틋한 키스, 따뜻한 웃음, 그건 무엇이었을까.
한동안 생각하더니 유원은 어깨를 으쓱했다. 눈빛이 차고 덤덤했다.
“글쎄……. 바람, 같은 것.”
서진은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았다.
‘바람.’
행성이 궤도를 이탈하게 했던 그 바람. 가야 할 길인데, 다시 그 궤도에 돌아오지 못하게 밀어 버렸던 바람. 가벼워서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머물지는 못하고 어느 날 훌쩍 다시 떠나 버리는 바람.
또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그 두 가지가 아니라면, 정해진 상대를 놔두고 다른 사람과 잠시 함께하는 일.
세 번째일 거라고 서진은 생각했다. 약혼녀를 두고 잠깐 마음이 흔들리는 일 같은 것.
무얼 바라는지, 어떤 제의를 하는 건지 모를 만큼 그를 몰랐다면 차라리 편했을 것이다. 무언가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깝지 않았다. 그에게 여자로서 함께 있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지금, 같이 있지 못한다면 평생 후회하겠지. 결혼하고 난 이후에는 다시 보지도 못할 테니까. 다시 태어나도 유원은 먼 사람뿐일 테니까.
유원이 여전히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그리워만 하던 어린 시절엔, 잠들기 전 손을 모아 그 뜻도 알 수 없는 기도들을 하며, 어쩌면 모든 꿈이 이루어질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기도 했었다. 하지만 성장하며 유원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먼 사람인지 알아가면서는 그들 사이에 이루어질 수 있는 최선은 이 결론 외에 없다는 것을, 체념처럼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떠오르는 건 서연희라는 세 글자. 어딘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아름다운 약혼녀.
서진은 차분히 그의 눈길을 받아내며 조용히 대답했다.
“그건……, 안 되는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