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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일본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91173324048
· 쪽수 : 536쪽
· 출판일 : 2025-11-11
책 소개
일본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전설 ‘하라 료’
당신이 기대하는 정통 하드보일드 미학의 최대치!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내가 죽인 소녀》를 잇는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3 전면 개정판
2013년 한국어판 출간 이후 오랜 시간 꾸준히 사랑받아온 하라 료의 《안녕 긴 잠이여》가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사이 작가의 부고가 전해졌고, 더는 그의 새로운 문장을 만날 수 없게 되었지만, 하라 료의 시선과 탐정 사와자키의 이야기는 지금도 또렷하게 살아 있다. 하라 료 전 작품을 국내에 독점 소개해온 비채는 이번 전면 개정판을 위해 번역을 다시 다듬고, 시리즈와 결을 맞춘 새로운 재킷 디자인으로 책을 단장했다. 떠난 거장을 기리는 마음으로, 그리고 다시 사와자키와 함께 도쿄 도심의 뒷골목을 걷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반가운 초대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특히 깊은 애도를 보내는 번역가 권일영의 ‘옮긴이의 말(2025)’과, 《책을 읽다가 잠이 들면 좋은 일이 일어남》 등 여러 글에서 하라 료에 대한 애정을 밝혀온 소설가 박솔뫼의 진심 어린 추천사를 함께 수록했다.
“이 소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교야구선수 출신인 한 청년이 십여 년 전 투신한 누나의 자살에 의문을 가지며 허름한 탐정 사무실에 사건을 의뢰하는 내용이라고 하면 정확할까. 아마 그런대로 적절한 설명일 것이다. 동시에 신주쿠 인근을 떠돌던 한 노숙자가 직업이 짐작되지 않는 한 청년의 부탁을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사백 일 만에 도쿄로 돌아온 탐정 사와자키가 사건을 해결하며 천천히 털어놓는 지난 사백 일간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야구가 정말 다른 스포츠보다 우연이 작용할 여지가 큰 스포츠인지 고민하게 하는 소설일지도 모르겠고, 하라 료의 애독자라면 허스키보이스의 전화 목소리와 소설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하라 료는 흡입력 있게 사건을 쫓으면서도 스쳐 지나가는 거리의 풍경과 마주치는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를 정확하고 간결하게 그려낸다. 모두에게 각자의 이야기가 있고 자신만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며 그러한 사람들이 오늘도 이 도시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소설 속 사건이 해결되어도 우리는 결코 그들이 안고 있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와자키가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어느 무더운 여름밤 난간에 올라간 사람과 그 사람의 비밀을 감싸안아 잘 덮어주고 싶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야기 속 인물과 독자 모두를 자신의 원칙대로 깊게 존중했던 하라 료의 방식일 것이다.” _박솔뫼(소설가)
사백 일 만에 돌아온 도쿄,
부슬비 내리는 밤의 귀환이지만
이 도시는 감상에 젖기에 너무나도 비열했다
도쿄 도심의 그늘, 신주쿠에 위치한 허름한 ‘와타나베 탐정사무소’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중년의 탐정 사와자키. 《안녕 긴 잠이여》는 일 년이 넘게 도쿄를 떠나 있던 사와자키가 오랜만에 사무소로 복귀하는 장면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구석구석 해묵은 먼지나 쌓여 있을 줄 알았던 그의 예상과 달리, 낯선 노숙자 한 사람이 사와자키의 귀환을 반긴다. 의뢰인의 대리인일 뿐이라는 노숙자의 자기소개가 이어졌지만 사와자키의 매의 눈은 그 또한 굴곡진 사연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놓치지 않는데……. 이 도시의 어느 구석치고 범행 현장이 아닌 곳이 있을까? 지나가는 행인치고 범인이 아닌 사람이 있을까? 범죄 엔트로피가 끝없이 상승하는 비정한 도시에서 고독한 중년 탐정 사와자키의 신화가 펼쳐진다.
미국에 레이먼드 챈들러와 필립 말로가 있다면,
일본에는 하라 료와 탐정 사와자키가 있다
하라 료는 챈들러의 광팬임을 자처하며 그의 작품이라면 빠짐없이 애독하는 것은 물론, 필립 말로 시리즈를 ‘하드보일드의 이상(理想)’으로 삼았다. 그래서(하드보일드 독서구력이 오랜 독자라면 쉽게 눈치챘을 테지만) 이번 ‘안녕 긴 잠이여’라는 제목은 챈들러의 《안녕, 내 사랑》과 《빅 슬립》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하라 료는 제목의 오마주로만 그치지 않고, 복잡한 플롯, 매력적인 등장인물, 철저하게 계산된 대화, 현실감 있는 전개 등, 작가 특유의 풍취로 필립 말로를 넘어서는 짙은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고품격 미스터리를 당당히 완성했다. 500페이지가 훌쩍 넘는 탄탄한 이야기 끝에는 후기를 대신하는 짤막한 토막소설 《세기말 범죄사정- 죽음의 늪에서》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목차
등장인물 7
안녕 긴 잠이여 11
후기 518
후기를 대신하여: 세기말 범죄사정 520
옮긴이의 말 530
옮긴이의 말(2025) 533
책속에서

“탐정이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그런 건 아니고. 어느 쪽인가 하면 빠른 공에 익숙한 타자를 느린 공으로 처리하는 것 같은 일이야. 자네가 주무기로 삼는 투구지.”
우오즈미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것까지 조사하셨어요? 이제 옛날이야기죠. 아니, 그런데 왜 저는 탐정이 될 수 없다는 거죠?”
“탐정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남의 트러블을 밥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야. 자네처럼 십일 년 동안 자기 자신의 트러블에 파묻혀 살아서야 스스로에게 지불할 조사비만으로도 파산하고 말걸.”
“흐음. 제 문제도 정리되지 않았는데 남의 문제를 다룰 수야 없지 않느냐는 말씀인가요? 하지만 탐정이 남의 트러블을 좋아하다니, 그렇게 야비한 성격으로는 보이지 않는데요.”
“내 성격은 밖에서 보이지 않는 면이 많지. 게다가 업무라는 이름이 붙으면 어떤 일이건 우선 자기 성격을 억누르는 일부터 시작하는 거 아니겠어?”
“무엇을 물어보건 늘 딱 어울리는 답변이 준비되어 있군요.”
우오즈미가 이번에는 어울리지 않게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이것도 알코올의 효용인 걸까? 알코올이 진심을 이끌어낸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술만 먹으면 사람이 변한다는 이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지니지 않은 것이 겉으로 드러날 리는 없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술을 마시지 않은 멀쩡한 상태일 때는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본인뿐이다.
“자네 질문이 시시하기 때문이지. 그런 질문에는 언제든 원하는 대로 옳은 답을 찾을 수 있네. 하지만 진짜 질문에는 쉽게 대답할 수 없지. 아마 답보다 질문 자체에 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을 테니까…… 잘난 척하는 건 아니야. 이 세상에서 우리 탐정만큼 시시한 질문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인종도 없으니 직업상 아는 거지.”
나는 마스다 게이조에게 ‘잘 자’라고 말하고 가부토 신사를 떠났다. 하지만 그때 나는 ‘잘 가’라고 했어야 했다.
나는 누군가와 작별하며 ‘잘 가’란 말을 제대로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 말을 적절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