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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를 걸어온 과학자들

물 위를 걸어온 과학자들

(물과학 분야의 프런티어)

한국수자원학회 (지은이)
  |  
한티미디어
2012-02-20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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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를 걸어온 과학자들

책 정보

· 제목 : 물 위를 걸어온 과학자들 (물과학 분야의 프런티어)
· 분류 : 국내도서 > 과학 > 과학자의 생애
· ISBN : 9788964210918
· 쪽수 : 280쪽

책 소개

물과학과 관련되어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되고 큰 전문학회인 한국수자원학회에서 물과학의 기초를 확립하고 발전시킨 40인 과학자들의 삶과 에피소드를 모아 펴낸 책이다. 이를 통해 물과학의 태동과 발전, 응용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목차

Chapter 1. 물과학의 기초이론을 확립하다
탈레스 | 물은 만물의 근원
아르키메데스 | 유레카를 외친 물 과학자
장영실 | 세계 최초의 측우기 발명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 유체역학에도 두각을 나타낸 천재 과학자
갈릴레이 | 수공학의 르네상스시대를 연 천재과학자
토리첼리 | 기압계의 원리를 발명하다
파스칼 | 파스칼의 원리를 발견한 생각하는 갈대
뉴턴 | 근대 물리학의 문을 열다
베르누이 | 유체의 에너지이론을 정립하다
오일러 | 물의 운동법칙을 규명하다

Chapter 2. 유체역학을 정립하다
보르다 | 유체의 에너지 손실 개념을 만들다
라그랑지 | 유체입자의 움직임을 새롭게 해석하다
나비에 | Navier?tokes 방정식을 유도하다
프루드 | 현대 수리모형실험의 이론을 정립하다
스토크스 | 점성유체의 이론을 확립하다
레이놀즈 | 층류와 난류의 경계를 규명하다
프란틀 | 유체역학에 경계층이론을 도입하다
카르만 | 난류이론을 체계화하다
블라시우스 | 경계층 및 난류이론의 공학적 접근
니쿠라제 | 관의 마찰실험을 선도하다

Chapter 3. 수리학을 과학으로 이끌다
쉐지 | 하천흐름의 원리를 제안하다
베난트 | 하천흐름 해석에 열정을 바치다
다르시 | 관수로와 지하수흐름의 선구자
바이스바흐 | 관수로 흐름손실을 이론화하다
매닝 | 하천흐름의 실용적 설계
두 보이스 | 유사이송 해석의 대중화
호튼 | 토양침투능을 구체화하다
크로스 | 복잡한 관망 흐름을 해석하다
타이스 | 지하수 흐름을 정량화하다

Chapter 4. 물과학을 대중화하다
검벨 | 수문량을 통계학적으로 규명하다
써론스웨이트 | 잠재증발산 개념을 도입한 실험 과학자
아인슈타인 | 현대 유사이송론의 대가
라우즈 | 유사수리학 분야의 초석을 놓다
쉴즈 | 쉴즈다이어그램을 만든 엔지니어
펜만 | 증발산량 계산이론을 개발하다
단찌히 | 최적화 이론을 실용화하다
차우 | 현대 수공학의 이론적 체계를 세우다
린슬리 | 강우-유출모형의 시조인 Stanford Model의 창시자
이글슨 | 과학과 수문학을 만나게 하다
로드리게스-이투르베 | 수문기상학, 생태수문학의 거장

저자소개

한국수자원학회 (지은이)    정보 더보기
한국수자원학회(회장 배덕효)는 ‘물 관련 학술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 사회 공익에 기여’를 목적으로 1967년에 창립됐다. 현재는 물을 연구하는 국내 대표 학회로서 21세기 “물의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회원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
펼치기

책속에서

학부 때 배우는 유체역학과 수리학 관련 문헌에서는 대부분 도입부에 물의 물리적인 성질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이때 물의 점성에 대한 설명에서 접하게 되는 이름이 동점성계수의 단위로도 쓰이는 조지 스토크스(George Gabriel Stokes)이다.
스토크스는 점성유체의 움직임에 관한 식에 나비에(Navier)의 이름과 더불어 최종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연결시켜 나비에-스토크스식(Navier-Stokes Eg)을 개발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로, 연구분야가 광범위해 수학에서 미분·적분방정식론 등에 공헌한 바 컸고 물리학에서도 유체역학·광학·음향 등의 이론적 전개에 큰 업적을 남겼다. 한편 실험에도 재능이 있어 X선이 전자기파라는 결론과 형광체에서 나오는 빛의 파장에 관한 스토크스 이동(Stokes shift)을 발견했다.
이러한 폭넓은 연구분야 중에서 유체역학 분야의 이론 확립에 크게 기여한 업적으로는 점성유체 중에서의 물체의 낙하에 관한 ‘스토크스 법칙(Stokes law)’이 있다.
점성유체 이론을 확립한 스토크스는 1819년 8월 13일 아일랜드 슬라이고 주 스크린(Skreen) 교구의 신교 목사인 아버지와 교회 목사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유년기 동안 매우 종교적인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부친인 가브리엘 스토크스(Gabriel Stokes)는 6남매를 키우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종교 외의 폭넓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자 노력했으며, 이러한 이유로 1832년 스크린을 떠난 스토크스는 더블린의 학교에 입학해 3년을 보냈다. 스토크스가 더블린에서 3년을 보내는 동안 부친이 타계했으며 이 일은 젊은 날의 스토크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835년 16세가 되던 해에 스토크스는 영국 브리스톨의 브리스톨(Bristol) 대학에 입학했는데 그곳에서 2년을 보내는 동안 캠브리지에서 수학하기 위한 기초를 닦았으며 이 기간에도 수학에 대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1837년 캠브리지대학 펨브룩(Pembroke) 컬리지에 입학하게 되고 캠브리지 생활 2년째부터 유명한 윌리엄 홉킨스(William Hopkins)의 지도를 받기 시작하면서 수학적인 관심 방향을 설정하게 된다. 1841년 스토크스는 수학과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펨브룩 컬리지는 졸업과 동시에 그에게 특별 연구원(Fellow) 자격을 부여했다.


동수역학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도록 스토크스에게 조언한 것은 앞서 언급한 홉킨스였으며 이 분야는 스토크스가 그 자신만의 연구를 시작한 최초의 영역이었다. 홉킨스의 조언과 조지 그린(George Green)의 최신 연구 성과에 힘입어 동수역학 분야의 연구를 시작한 스토크스는 1842년과 1843년에 비압축성 유체의 거동에 대한 논문들을 발표하게 된다. 특히 1842년 논문에서는 비압축성 유체의 정적 거동을 다루었다.
(중략)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진행하면서 스토크스는 1849년 캠브리지에서 수학분야의 13대 루카시안 석좌교수로 임명되었고 1851년 왕립학회에 선출되었다. 1852년에는 학회로부터 Rumford Medal을 수상하고 1854년 왕립학회 서기관에 임명되었다. 이즈음 발표한 유체 속의 흔들리는 물체 거동에 관한 논문은 1851년 당시에도 동수역학 분야의 필수 논문으로 인정되었다.
- '수학과 점성유체 이론의 대가' 중에서


스토크스의 연구는 1857년을 기점으로 확실히 다른 궤적을 찾아가는데, 그전까지의 왕성한 이론 연구에 비해 그 이후 연구에서는 실험 연구와 행정 경력을 보다 더 많이 포함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1857년의 결혼과 무관하지 않다. 스토크스가 북아일랜드 아마Armagh천문대 천문대장의 딸인 메리 로빈슨(Mary Susanna Robinson)과 결혼한 이후 이전의 수학 관련 연구 이외의 다양한 분야의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 캠브리지대학 특별연구원은 미혼이어야만 했고 따라서 1857년 결혼으로 인해 스토크스는 펨브룩 컬리지에서의 특별연구원직을 그만두어야만 했다. 그러나 1862년 학칙이 변경되어 기혼자도 특별연구원직을 할 수 있게 되자 다시 그 직을 맡게 되었으며 1903년 사망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1849년 뉴튼 이래 최초로 캠브리지대학에서 루카시안 석좌교수에 선출된 이후, 50년 뒤인 1899년 6월 1일 유럽과 미국의 수많은 대학의 대표자가 참석한 가운데 캠브리지대학 임용 50주년 행사가 성대하게 개최되기도 했다.
스토크스는 1889년 남작의 작위를 받았으며 나아가 캠브리지대학 선거구의 2명 중 1인으로 1887년부터 1892년까지 대학을 대표해 의회에 봉사했다. 또한 1854년 이래 영국 왕립학회 서기관직과 1885년부터 1890년까지 왕립학회 회장직을 수행하는 동시에 루카시안 석좌교수직도 유지해 뉴튼 경 이후 최초로 세 가지 업무를 수행한 유일한 사람이다. 뉴튼도 세 가지 직을 동시에 유지하지는 못했었다. 또한 1893년 왕립학회로부터 Copley Medal을 수여받았으며 1886년부터 사망한 1903년까지 빅토리아 연구소 소장직을 수행했다.
- '결혼과 연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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