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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자기혁명

엄마의 자기혁명

(워킹맘, 전업맘 코칭으로 행복을 향해 날다!)

김상임, 이은아 (지은이)
  |  
작은씨앗
2015-02-07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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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자기혁명

책 정보

· 제목 : 엄마의 자기혁명 (워킹맘, 전업맘 코칭으로 행복을 향해 날다!)
· 분류 : 국내도서 > 자기계발 > 여성의 자기계발
· ISBN : 9788964231722
· 쪽수 : 232쪽

책 소개

저자는 워킹맘으로, 전업맘으로 살다 주도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 적극적으로 꿈을 찾고 또 그 꿈을 이루는 과정을 진솔하게 전하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_ 대한민국 엄마를 응원합니다 _4

01 워킹맘
카멜레온처럼 지혜로운 리더십을 발휘하라


제1장 지혜로운 워킹맘, 나만의 육아전략을 세워라
엄마가 준 마음의 상처 엄마가 치유해 주어라 _17
엄마는 행복을 주지만 아이들은 불행을 받는다 _25
미래의 불안이 잔소리를 키운다. _31
경청을 호소하다 지친 아이, 경청(敬聽)이 약이다 _37
가족을 지키고 싶다면 질문하라 _46
엄마 방목해 줘서 고마워요. _53
남편을 무조건 내편으로 만들어라 _58

제2장 똑똑한 워킹맘, 셀프코칭(Self Coaching)하라
내 삶의 에너지원, 자존감 지수를 높여라 _63
나를 사로잡고 있는 생각부터 찾아라 _69
인생의 수레바퀴를 온전히 굴려라 _75
나만의 시간관리 기술이 찾아라 _80
자기성찰로 깊은 나를 만나라 _86
자성예언이 성공을 불러 온다 _92

제3장 현명한 워킹맘, 조직에서도 승승장구하라
워킹맘, 감성리더십으로 정치(情治)하라 _99
360도로 피드백을 받아라 _105
이력서로 나를 업그레이드 하라 _111
자랑스런 워킹맘, 나를 브랜딩하라 _117
가슴 설레는 꿈을 디자인하라 _122

02 전업맘
가슴 뛰는 꿈부터 만나라.


제1장 용기있는 전업맘,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다.
가슴 뛰는 꿈부터 만나야 하는 이유 _132
내 운명을 바꿔 준 나의 아들과 그의 친구들 _140
엄마소는 얼룩소 _149
사랑의 족쇄가 남긴 상처 _154
내 가슴 속 상처받은 아이 _159
대리만족의 한계 _163

제2장 유연한 전업맘, 진정한 소통을 하다.
내려놓으면 보이는 것 _169
자존감이 만든 사랑의 울타리 _176
타인에 대한 인정 _183
자신에 대한 인정 _188
마음의 오작교 _193
마음을 여는 시간 15분 _198

제3장 행복한 전업맘, 잠재된 끼를 발휘하다
선택은 나만의 창조적 정답 _205
성장의 디딤돌 믿어주는 한사람 _213
나만의 노하우 _218
행복한 삶, 행복한 가정의 첫걸음! 엄마의 도전 _223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_228

저자소개

김상임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64년 태어났다. 동국대학교에서 일어일문학과 교육학을 전공하고, 1987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했다. CJ제일제당 기획실 발령을 시작으로 19년간 전략, 경영관리, 그룹 사업 포트폴리오 재정립, 브랜드 및 사업 구조조정, 신규 사업 기획, 기업 M&A 등을 진행했다. CJ그룹에서 25년간 CJ푸드빌 경영지원실장, 빕스 VIPS 사업부장, 고객만족실장, CJ프레시웨이 단체급식 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현업 중심의 리더십을 경험했다. 신입 공채 출신 최초의 여성 임원이다. ICF 국제 인증 코치, 미 갤럽 인증 강점 코치인 저자는 '이끄는 리더십'이 아닌 '잠재력을 믿고 일깨워 주는 코칭 Coaching'으로 대한민국의 리더십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기를 꿈꾼다. 삼성, 현대차, SK, LG, KT, ASML, EY한영회계법인 등 유수 국내외 기업에서 7천 시간이 넘는 코칭과 강의를 하며 1만 5천 명에 달하는 리더들을 만나오고 있다.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명상심리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비즈니스 코칭에 마음을 접목시킨 비즈니스 마음 코칭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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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아 (지은이)    정보 더보기
‘코칭’을 통해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법을 배우며 아이의 방황을 수용하고 자신과 가족의 삶을 변화하였다. 이후 코칭의 매력에 빠져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새로운 꿈을 실현하고자 국민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리더십·코칭 MBA를 졸업했고 동 대학 일반대학원에서 인사조직 박사과정을 공부하며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국제코치연맹에서 인정한 PCC이며 한국코치협회에서 인증한 KPC(Korea Professional Coach)로 현재 Active Coaching 연구소를 운영하며 기업, 정부기관 등에서 비즈니스코칭, 그룹코칭 등 코칭강의를 하고 있다. ICF(국제코치연맹) 코리아 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사)한국코치협회 사회공헌 위원회 홍보국장으로 활동하며 코칭문화 저변확대에 힘쓰고 있다. http://cafe.naver.com/Activeco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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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나는 정말 멋모르고 결혼을 했다. 사회생활을 채 일 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했고 27살에 첫 애를 출산했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된 것이다. 처음 임신을 모르고 건강검진을 했다.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건강한 태아를 보장할 수 없다며 간접적으로 유산을 권유했다. 그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중정 수술은 좋은 병원에서 해야 한다기에 사람들이 추천해 준 병원에 예약을 하고 수술하러 갔다. 병원에서는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며 수술을 만류했다. 대신 나는 8개월간 무척 가슴을 졸였다.
결혼할 때도 회사가 뒤집어질 정도로 핫이슈였는데 출산은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더 철저하게 나를 관리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임신하면 졸음이 온다느니, 낮잠을 자야 한다느니 하는 말은 나에게 사치였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정신줄을 놓지 않고 더 집중해서 업무를 했다. 당시 주 업무가 광파일 시스템 관리였다. 서류를 전자파일로 스캐닝해서 보관하는 업무였다. 전자파가 태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 같은 생각에 걱정거리가 늘어났다. 신문을 덮고 또 덮어도 세어 나오는 전자파를 차단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많은 걱정 속에 잉태한 그 순간부터 출산하는 날까지 매일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출산하는 날 아이가 정상인지를 묻고 실신한 기억이 있다. 다행히 아이는 건강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문제는 출산이 아니라 육아였다. 내가 택한 전략은 시어머니에게 조르기 작전이었다. 처음에는 아주 당황하는 기색이셨다. 우리는 맞벌이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계속 간곡히 부탁드렸다. 솔직히 ‘저는 애를 키울 자신이 없습니다’라며 엄살을 떨었다. 실제 그랬다. 아이를 가까이 한 적도 없고 워낙 활동적인 성향이 강한 나는 하루종일 집에서 애만 키우고 남편을 기다리면서 산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시댁은 시아버지가 8대 독자로 자손이 아주 귀한 집안이었다. 아들을 출산한 둘째 며느리가 기특해 보이셨을 것이다. 몇 번을 부탁드렸다. 너무 뻔뻔스럽게 부탁을 드리니 나중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애를 봐주시겠다고 했다. 3주간의 출산휴가를 마치는 날 파주에 잇는 시댁에 애를 떼어놓고 오면서 가슴이 쓰라리고 눈물이 한없이 줄줄 흘렀다. 자꾸만 애가 눈에 밟혔다.
슬픈 감정에 빠진 것도 잠시 출산휴가를 마치고 회사에 다시 출근하면서 전쟁은 시작되었다. 새벽에 남편과 밥을 챙겨먹고 달음질치며 출근했다. 업무 숙련도도 낮은 신입이라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시절이었다. 주중에는 회사 일에 녹초가 되고 주말이면 육아에 필요한 의·식·주 용품을 바리바리 싸들고 시댁으로 달려가는 생활을 이어갔다.
몸이 고단할 땐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나에겐 주말이 더 힘든 시간이었다. 자식을 시어머니에게 맡겨 놓은 이상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잘 보여야 우리 아들에게 잘 해주실거라는 생각, 애를 본다는 것이 육체적으로도 너무 힘든 일임을 알기에 보상을 해 드려야 한다는 생각, 가능하면 좋은 먹거리를 애한테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 등으로 심신을 혹사하면서 주말을 보내야만 했다.
휴식이 없다보니 신경이 예민해지는 일이 잦아졌다. 칭얼대는 아들을 받아줄 수 없었고 너무 당당하게 며느리 역할을 강조하는 시댁에 가끔 화가 나기도 했다. 괜스레 화살이 남편에게 가기 일쑤였다.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는 내가 참아내기 힘든 순간들이 늘어났다. 그러면서 그 어린 불쌍한 아들에게 화를 내고 감정을 노출하는 횟수가 늘어갔다. 치닫는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을 때는 심하게 야단치고 가끔 체벌을 가하기도 했다. 이성을 잃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참다 참다 어느 순간에 폭발하는 나를 제어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자꾸 늘어났다. 어린 아들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그러면서 회사는 회사대로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야근도 잦아졌다. 정말 힘들었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주 히스테리를 부렸다. 사면초가의 상황이 이어졌다.
―「엄마가 준 마음의 상처, 엄마가 치유해주어라」중에서


워킹맘이면서도 나는 부단히 자기계발을 했다, 새벽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과장 시절에 선배가 “매년 이력서를 써봐라. 그러면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이다.”라는 충고를 마음에 담고 살아서일 것이다. 해마다 이력서를 작성해서 보관하는 습관이 생겼다. 매년 이력서를 작성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력서를 쓸 때마다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떠한 성과를 냈는지, 얼마나 역량이 개발되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열심히 살아온 해엔 이력서에 작성할 것이 많다. 반대인 경우에는 이력서에 채울 것이 없었다. 매년 이력서를 써내려가면서 리더에게 요구되는 역량을 하나둘 채워갔다. 엄마, 아내, 며느리 역할을 병행하면서도 회사에서는 과장으로 차장으로 부장으로 승진을 했던 것은 아마도 이 이력서로 스스로 역량강화를 한 덕분이 아닐까 싶다.
오지랖이 넓은 나는 같이 일하는 동료나 부하사원들에게도 이력서로 자신의 가치를 올리라고 요구하곤 했다. 현업도 힘든데 무슨 자기계발이냐며 볼멘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친구들이 이력서 턱을 꽤 봤다. 빕스 사업부장 시절에 팀장, 점장들이 그들의 역할에 비해서 역량이 균형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 부하사원에게 이력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도록 했다. 대부분이 A4지 반장을 넘기지 못했다. 입사, floor 경력, Kitchen 경력 대리·과장 승진 등이 전부였다.
당시 그들에게 강하게 물었다. “만약 이 회사가 아니라면 당신들은 어디에 갈 것인가? 헤드헌터업계에 당신들의 이력서는 얼마짜리가 되겠는가?”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생각해보라고 권했다.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학습이 필요한지 등등 실제 이력서를 써본 후배들도 자신의 현주소를 인식했다. 그런 다음 어학· 마케팅·재무 분야 등 목표를 세워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뻐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 이후에도 몇몇 사원들은 매년 이력서 쓰는 습관을 버리지 않고 계속 해오고 있다.
2011년 11월에 25년간 몸담아왔던 그룹에서 갑작스럽게 퇴임통보를 받았다.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았다고 생각해왔던지라 당황스러우면서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다. 몇 개월을 방황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도 했다. 이력서를 정리하면서 새로운 의욕과 인생 이모작에 대한 또 다른 도전이 나를 자극했다. 인재육성에 남다른 투자를 하는 회사가 다양한 교육을 받게 해준 것이 더없이 고마웠다. 게다가 교육받은 내용을 현업에 적용해서 효과를 본 경험도 많았다. 그 덕분에 퇴임과 동시에 다양한 강의와 코칭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많은 투자를 해준 회사에 감사하다.
워킹맘들 중에 육아 등으로 퇴직을 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력서를 매년 관리하다 보면 몇 년간 휴직을 하더라도 또 다른 도전의 마음을 놓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력서를 관리한 만큼 자신의 브랜드력을 분명 올라갔으니 말이다. 퇴직을 하더라도 다시 사회생활을 할 것을 대비해서 이력서를 채워가면서 관리하면 좋겠다. 경력단절 여성들을 대상으로 강의나 코칭을 하면서 아쉬운 것은 완전히 손을 놓고 5~10년 가정주부로 생활하다가 애들이 대학교가고 하니 그때 일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때는 이미 사회생활의 리듬이 깨진 후다. 회사를 다니든 잠시 휴직을 하든 퇴직을 하든 이력서는 매년 작성하도록 하자. 그 이력서가 나의 가치를 알려주는 것이고, 브랜드력을 강화해주는 단초가 되니 말이다.
―「이력서로 나를 업그레이드하라」중에서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아이가 자랄 때까지 유행했던 놀이교육, 영재교육, 원어민, 영어문법 개인교사 수업, 수학, 논술, 축구교실, 어학원, 컴퓨터 학원 등 쉴 새 없이 아이에게 좋다는 것은 모두 들이밀었다. 아이의 생각은 묻지도 않았다. 우리 아이는 정말 엄마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 이 때문이었을까? 큰 아이는 일곱 살 때부터 머리를 흔드는 틱 장애가 왔다. 후회가 밀려왔다. 무엇이 아이를 그토록 닦달하게 했을까?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나의 경쟁의식이 아이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만약 타임머신이 있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난 절대 이 무모한 뺑뺑이는 돌리지 않을 것이다. 뺑뺑이 대신 가족 간의 신뢰와 사랑을 더욱 돈돈히 하는 여행을 할 것이다. 인생을 길게 볼 것이고 내 조바심을 아이에게 전달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내 안에 불쑥불쑥 솟아나는 욕심과 기대를 자제할 것이다. 인간이란 참 간사하다. 아니 나만 그런가?
아이의 틱을 보며 마음 치유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명문대에 입학시키고 싶다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결국 나는 당근과 채찍을 교모하게 쓰고 있었던 것이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까지 소위 남들이 말하는 ‘엄친아’로 자라 주었다. 나의 열정과 계획을 착실하게 잘 따라와 주었고 나에게 흐뭇한 훈장들까지 안겨주었다. 통계경진대회 동상, 한자 3급, 워드프로세스 1급, 국가공인 정보기기운용기능사, 정보처리기능사……. 아이에게 타이틀이 하나씩 붙을 때마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보다 나에게 더 집중적인 관심을 보였다.
내 안에 어떤 마음들이 있었을까? 조금씩 우쭐해 하는 나를 느끼게 됨과 동시에 엄마들 사이에서 나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게 되었다. 난 어느새 이 모든 것을 은근히 즐기며 대리만족의 기쁨을 맛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이런 과정이 초등학교 내내 이어졌다. 나의 기대와 환상은 점점 커졌고 아이의 마음속이 어떤지 들여다 볼 필요도 그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오로지 내 자신의 이기심만 있었던 것이다. 마냥 착실하고 성실했던 큰 아이가 주는 즐거움은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사라졌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고 하였던가? 지나간 6년의 소소한 즐거움은 이후 5년 동안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과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는 길로 인도하였다. 아이에게 비행이라는 단어가 적절한지 모르겠으나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우리 아이와 그의 친구들은 비행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
―「내려놓으면 보이는 것」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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