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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세계문학론 > 영미문학론
· ISBN : 9788964353813
· 쪽수 : 405쪽
· 출판일 : 2011-08-19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부 급진주의자 워즈워스
1장 워즈워스, 혁명의 한가운데 서다
2장 혁명의 전도사, 워즈워스
3장 워저워스, "독립적 지성"을 꿈꾸다
2부 워즈워스의 시적 혁명
4장 자연을 거닐며 혁명을 품다 :『저녁 산책』
5장 폐허 속의 미학 : 「무너진 오두막」
6장 영국의 낭만주의, 이렇게 시작했다 : 『서정담시집』
7장 시는 혁명이었다 : 『서정담시집』의 서정성
8장 워즈워스, 자신을 돌아보다 : 『틴턴사원』
3부 워즈워스와 역사적 상상력
9장 이상을 쫓는 영혼 : 낭만주의자들의 유토피아 실험
10장 내 삶을 말하다 : 워즈워스, 엘리엇, 플라스
11장 "선택된 아들"의 노래 : 호반의 시인에서 제국의 시인으로
약어목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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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워즈워스는 성공회 목사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졸업장을 포기하고 케임브리지를 수료하자마자 프랑스로 떠났다. “불어를 좀더 배우기 위해서”라니까 요즘 식으로 말하면 ‘어학연수’를 간 셈이지만, 사실 진짜 목적은 딴 데 있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워즈워스가 프랑스에 건너가 공부한 것은 프랑스어가 아니라 프랑스혁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혁명파 장교 마이클 보피를 만나 일종의 사상교육을 받고, 곧 혁명을 열렬히 지지하는 공화주의자가 되었다. 워즈워스는 어느 날 보피와 대화를 나누며 걷다가 가난에 찌는 소녀를 만나게 되는데, 그때 보피는 그 소녀를 가리키며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가난! 우리가 싸우는 적이 바로 저것이오.”
워즈워스가 만일 <<서곡>>에서 주장하는 대로 급진주의자였다면, 그의 급진적 정치관이 정치적 실천으로 표현되었어야 할 무대는 프랑스가 아니라 영국이었다. 왜냐하면 워즈워스는 1792년 말에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영국에 돌아와야 했고, 곧 이어 발발한 영불전쟁으로 아미앵 조약이 체결되는 1802년까지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곡>>에 나오는 워즈워스의 주장을 좀더 따라가보면, 그가 그때 돌아오지 않았었더라면 그의 이념적 동지들과 함께 혁명의 대의를 위해 순교했을 것이라고 한다.
<<서정담시집>>이 출간된 계기는 1797년 6월 초 코울리지가 워즈워스를 방분하면서 마련되었다. 이 역사적인 만남에서 두 사람은 상대방의 천재적인 재능에 매료되었다. 코울리지는 위즈워스에게 자기가 최근에 완성한 비극 <<오소리오>>의 한 대목을 낭송해주었고, 워즈워스는 훗날 우리에게 <무너진 오두막>으로 알려지게 될 전쟁미망인 마거릿의 서글픈 사연을 담은 산문시를 읽어주었다. 코울리지는 “자기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면 위즈워스를 셰익스피어나 동시대의 독일 극작가 쉴러에 비교했고, 워즈워스 남매 역시 코울리지를 이구동성으로 “놀라운 인물”로 높이 평가했다......영문학사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을 역사적인 문학적 협업이었다. 그리고 그 협업의 가장 직접적인 결과물이 바로 <<서정담시집>>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