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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64361504
· 쪽수 : 248쪽
· 출판일 : 2018-10-25
책 소개
목차
제1부
01 들판은 울음곳간, 하늘은 울림통이 된다 / 02 노을과 소나기가 소 등을 넘는다 / 03 소는 눈부신 치아와 눈망울을 지녔다 / 04 뿔과 수염은 구름 냄새를 맡는다 / 05 달빛은 곤충들의 몸부림을 좋아한다 / 06 들판은 관능적이다 / 07 미물들의 꿈틀거림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 08 새벽달은 숫돌에 낫과 칼을 벼린다 / 09 마당을 가로질러 무정천리를 간다 / 10 흙은 실컷 부풀어 오르는 감성이다
제2부
01 꽃 피우느라 나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 02 꽃씨를 받으며 엄마는 꽃몸살을 앓았다 / 03 풀은 인간의 삶을 맘껏 넘나든다 / 04 풀은 예측 불가능한 난세를 즐긴다 / 05 배추는 들판의 관능이고 색계였다 / 06 흙색과 꽃색은 서로를 핥고 스민다 / 07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 / 08 부처님도 함께 고추 농사를 짓는다 / 09 뿌리는 땅과 하늘의 무한 접속을 꿈꾼다 / 10 아버지의 몸에는 꽃의 수액이 흘렀다 / 11 햇마늘은 입안을 극락으로 만든다
제3부
01 들판은 드넓은 울음곳간이더라 / 02 들판에는 광란의 에로스가 펼쳐진다 / 03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사유할까 / 04 누구나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인다 / 05 들판에서 새참 먹는 재미를 아느냐 / 06 빗소리가 읽어주는 반야심경을 듣는다 / 07 시간과 고독과 인생이 함께 걷는다 / 08 십리 길이 천리 길을 건너간다 / 09 일어나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 10 하늘의 열락이 천하를 품는다
제4부
01 문풍지는 우주의 숨소리로 울었다 / 02 마시자! 어스름 한 잔의 불빛을 / 03 달빛은 지구를 비추는 개구쟁이다 / 04 자전거를 타면 바람의 성분이 된다 / 05 매일 어떤 장소와 시간을 이동한다 / 06 가장 좋은 걸음은 발걸음이다 / 07 재래시장엔 흥건한 카니발의 언어가 산다 / 08 불편함을 즐기는 것이 즐거움이다 / 09 눈도 울고 코도 울고 귀도 울더라 / 10 아버지는 늙어서도 영원한 청년이다 / 11 아버지도 불장난을 하다가 오줌을 쌌다 / 12 아버지는 아들 친구의 친구가 되었다 / 13 인수야, 니 망 좀 잘 봐라
저자소개
책속에서
봄이면 흙의 각질을 뚫고 기지개와 혀가 튀어나오고, 아지랑이와 뱀의 긴 꼬리가 스멀거리고, 까맣게 부릅뜬 개구리 눈동자가 굴러 나와 알을 낳고, 해토의 기운을 받은 제비꽃과 산수유와 매화가 퐁퐁퐁 꽃잎을 터트린다. 강아지가 킁킁거리며 앞발로 파헤칠 때 포르릉 튀어나오는 아지랑이. 싹이 비집고 나오느라 흙덩어리는 부푼다. 흙은 간지럽다. 겨우내 홀로 문을 닫았던 흙은 문을 열어 어둠을 토하고, 더 깊은 지하를 깨우고 기지개를 켠다. 흙마다 구멍이 생긴다. 점점 구멍이 많아진다. 푸른색, 노란색, 빨간색이 쑥쑥 자란다. (「흙은 실컷 부풀어 오르는 감성이다」 중)
나는 소 얼굴을 매일 들여다보며 자랐다. 소의 얼굴을 쓰다듬고, 소와 뽀뽀하고, 소의 콧등과 혀를 만지며 자랐다. 소의 이빨은 화강암처럼 크고 튼튼하며 가지런했다. 소 혀는 수세미처럼 길쭉하고 두터우며 거칠었다. 뱀장어가 제 굴 드나들 듯, 소는 자신의 콧구멍에 수시로 긴 혀를 쑤욱 집어넣는다. 긴 혀로 제 콧등을 핥고, 어깻죽지를 핥는다. 소의 눈망울은 감자알만하다. 소는 목이 마르면 물을 한 드럼은 먹어치운다. 목마른 소가 물을 쑤욱 켤 때 소의 목구멍은 수멍이 되어 콸콸콸 물소리가 들렸다. (「노을과 소나기가 소 등을 넘는다」 중)
자신의 목숨인 작은 불빛 하나로 너울거리는 반딧불. 풀잎에서 풀잎으로 날아다니던 며칠 밤의 춤이 그 생의 전부였다. 아랫배를 활활 태운 작은 불빛이 반딧불에게는 짧은 청춘이다. 심장에 조각칼을 대어 얇은 부스러기로 핏물을 썰어내 태우는 듯한. 반딧불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성냥. 그 불빛에 나의 임파선과 솜털과 눈썹과 겨드랑이 털까지 심지가 되어 하롱하롱 하르르 타오를 듯했다. 내 몸도 그렇게 불이 켜지고 반짝였으면 했다. (「달빛은 곤충들의 몸부림을 좋아한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