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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한국문학론 > 한국작가론
· ISBN : 9788964362204
· 쪽수 : 376쪽
· 출판일 : 2022-05-31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5
제1장 고독과 우울과 명상의 삶
어머니의 죽음과 젖어머니 16 / 강서에서 평양으로 25 / 평양에서 도쿄와 교토로 32 /
연희전문학교 시절 41 / 경성제국대학과 서울대학교 시절 73 / 미국 체류 시절 80 /
동숭동과 우이동 98 / 침묵의 몸짓 105
제2장 시인 이양하
시인은 태어나는가 124 / 정지용과 이양하 129 / 고향 상실과 실낙원 133 /
자연과 죽음 139 / 연정과 인정 146 / 한반도의 분단과 이양하의 정치의식 154 /
소리와 의미 162 / 이양하 시의 상호텍스트성 182
제3장 수필가 이양하
늦깎이 수필가 200 / 신변잡기적 개인 수필 210 / 자연 예찬 수필 217 /
기행 수필 221 / 자기 반영적 수필 226 / 계몽적 사회 수필 229 /
이양하 수필의 문체 235
제4장 번역가 이양하
이양하의 번역관 251 / 토착어의 구사 255 / 자국화 번역 262 /
시의 어조와 번역 271 / 에세이 번역 283 / 리처즈의 『시와 과학』 번역 291
한국시의 영문 번역 294
제5장 영문학자 이양하
졸업논문 305 / 리처즈의 『시와 과학』 315 / 월터 새비지 랜더 평전 326 /
한국 비교문학의 초석 334 / 영문학과 문학평론 353 / 영어사전과 교과서 편찬 359
참고 문헌 366
찾아보기 372
저자소개
책속에서
평생 이양하의 영혼을 짓누른 트라우마는 두말할 나위 없이 그가 대여섯 살 때 겪은 어머니의 때 이른 죽음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는 글은 두 번째 수필집 『나무』(1963)에 실린 「어머님의 기억」이라는 글이다. 첫 번째 수필집 『이양하 수필집』(1947)에도 「아버지」라는 글이 실려 있지만 일흔이 넘어 병 치료를 위해 상경한 아버지에 관한 것이어서 그의 유년 시절을 이해하는 데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양하는 「어머님의 기억」을 이렇게 시작한다.
무더운 한여름 칡덩굴 엉킨 언덕길을 커다란 손으로 붙들어 주는 사촌 형님한테 이끌리며 어머님의 상여 따르던 것을 생각하고, 흰 댕기를 드린 채 동리 앞개울에서 헤엄치고 숨바꼭질하다 가끔 큰어머니한테 야단맞고 하던 일을 생각하면,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것은 내가 적어도 대여섯 살 먹었을 때였으리라고 생각된다._16~17쪽
그 이듬해 봄 큰어머니는 동리에서 5리쯤 떨어진 곳에 어린아이를 갓 잃은 가난한 어머니가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그 집에 아이를 맡겼다. 어린아이가 갓 사망했다니 젖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다니 젖을 먹이는 수고를 물질적으로 보답해 줄 수도 있었다. 그 집은 이양하가 태어난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마을에 대하여 이양하는 “20호 내외의 오막살이들이 오므라진 골짝에 다닥 붙어 있는 찌그러진 마을이었는데, 젖아버지는 그중에도 가장 가난한 농군으로서 타향에서 이사 들어온 지도 오래지 않아 그 집은 마을 맨 꼭대기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말한다. 또 이양하는 그 집이 “바자 울타리에 부엌 하나 달린 단칸치기(단칸짜리) 오막살이로 동쪽 끝에 검은 굴뚝이 있고, 서쪽 싸리문 밖에 박우물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의 젖어머니는 마을과 집이 하나 같이 초라하고 누추하기 그지없는 곳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중략) 젖어머니는 단순히 이양하에게 젖을 먹여 육체적으로 양육한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정신적으로도 양육하였다. 젖부모는 비록 가난하고 무식할망정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나이 어린 이양하에게 삶의 나침판 역할을 하였다. 젖부모를 두고 이양하는 “일생 가난을 고통으로 생각지 않으시고, 그 가운데서도 기쁨을 찾을 수 있는 드문 덕을 가졌었다”고 회고한다. 이양하가 성인이 되어서도 작은 것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으려고 한 것은 일찍이 젖부모한테서 배운 소중한 덕목일 것이다.
교토제국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는 동안 이양하는 영문학도로서의 학문적 성과를 쌓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1931년 4월 그는 일본영문학회의 기관지 《에이분가쿠켄큐(英文學硏究)》(11권 2호)에 구도 시오미(工藤好美)가 번역한 월터 페이터의 단편집을 평하는 서평을 발표하였다. 1933년 이양하는 이 저널 13권 2호에도 두 번째로 「월터 페이터와 인본주의」라는 좀 더 본격적인 논문을 기고하였다. 한편 1932년 이양하는 영국 비평가요 수사학자인 I. A. 리처즈(Ivor Armstrong Richards)의 『과학과 시』(1926)를 일본어로 번역하여 『우타토가가쿠(詩と科學)』라는 제목으로 출간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젊은 지식인이 일본 영어영문학회의 기관지에 서평과 논문을 발표한다는 것은 여간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때 이양하의 나이 겨우 이십 대 후반에 지나지 않았다. 몇 해 뒤 경성제 국대학 법문학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최재서가 이양하의 뒤를 이어 《에이분가쿠켄큐》에 논문을 발표하였다. 또한 그는 《시소(思想)》, 《가이조(改造)》, 《미타분가쿠(三田文學)》 같은 일본의 저명한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유수출판사에서 번역서를 출간하였다. 이양하와 최재서는 식민지 시대 조선의 영문학계를 대표하는 학자와 다름없었다.
윤동주는 이 시집 원고를 자필로 3부 필사하여 그중 한 권은 자신이 보관하고, 다른 한 권은 누상동에서 같이 하숙하던 후배 정병욱에게 주었다. 윤동주는 나머지 한 권을 들고 그가 평소 존경하던 이양하를 찾아가 시집 출간을 상의하였다. 그러나 이양하는 원고를 읽어 본 뒤 출간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대동아 공영권을 꿈꾸던 군국주의 시대 일제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할뿐더러 자칫 일제의 심기를 건드려 화를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양하가 특히 우려한 작품은 민족주의적 성향이 짙은 「십자가」, 「슬픈 족속」, 「또 다른 고향」 같은 작품이었다. 결국 윤동주는 때를 기다리라는 스승의 권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시집 출판을 기꺼이 단념하였다. 그해 12월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여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것을 돌이켜 보면 이양하의 권고는 참으로 적절하였다. 만약 윤동주가 스승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시집을 발간했더라면 그는 어쩌면 좀 더 일찍 일제의 탄압을 받고 사망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