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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88964374627
· 쪽수 : 392쪽
· 출판일 : 2024-08-19
책 소개
목차
서론 009
1장 식민지 평양에 체공녀가 나타났다 023
2장 1930년대 사회주의 운동과 여공 079
3장 파업 여공, 근대적 주체의 등장: 식민 통치하 민족?계급?성의 문제 127
4장 격동의 1950년대 여성 노동자 175
5장 산업화 시대 노조를 이끈 여자들 221
6장 민주화 이후 여성 노동자와 기억의 정치 303
감사의 글 369
참고문헌 375
리뷰
책속에서
통념에 의하면, 온순한 존재로 인식되는 이들 여공이 전투적 행동에 나서게 되는 것은 그들의 순진함과 무지를 이용한 외부 세력의 조종 때문이었다. 이들이 노조의 지원이 있건 없건 억압적 노동 통제에 맞서 줄기차게 고도의 투쟁성을 보여 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근현대 한국의 국가 형성 과정에서 여공에 대한 이런 식의 고정관념은 점점 더 공고해져 갔다. 1970, 80년대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활발히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수출 주도 산업화 전략 속에서 여공의 수가 급증한 1970년대가 되면 그 이미지는 훨씬 나빠져 ‘공순이’라는 멸칭까지 붙게 된다. 1990년대부터 진행된 신자유주의화 과정은 여성의 노동자로서의 가치를 더욱더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노동자들이 국가 형성 과정에 동원되거나 저항을 조직하는 방식 등에서 젠더 동학이 작동한 때문이었다. 이 책은 이와 같이 20세기 한국의 근대화와 노동운동의 발전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담당했던 중대한 역할과 그들에 대한 역사적 서사 사이에서 끈질기게 지속돼 온 커다란 간극을 이해하려는 시도다.
여공에 대한 나의 지적 관심은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후반, 여성운동과 학생운동을 경험한 연구자로서 나는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설명하는 논의들을 마주하고 부당하다는 생각을 떨쳐 낼 수 없었다. 당시는 1987년 6월 항쟁에 뒤이은 7, 8, 9월의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남성 노동자, 특히 중공업 노동자들이 긴 침묵을 끝내고 노동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한 시점이었다. 활동가들과 진보적인 학자들은 새롭게 등장한 이들의 노동조합운동을 축복하면서 이전 시기 여성이 주도했던 노동자 투쟁에 비판의 시선을 돌렸다. 1970년대 노동운동을 주도했던 여성 노동운동가들은 민주화 이후 젠더 불평등의 현실이 나아지기를 바랐지만 그들의 기대는 외면당하고 오히려 과거의 기여가 평가절하됐다. 바로 그 여성들의 노동운동이 노동자 대투쟁이 가능할 수 있었던 조건을 마련했는데도 말이다. 여성이 지배적인 산업의 여성 노동자들이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수행한 이 초창기 투쟁의 조건들은 무시한 채 이들은 1970년대 민주 노동운동의 소위 “한계”들을 무자비하게 강조했다. 이에 따르면 1970년대 운동은 (이후 전개될 남성 주도의 노동운동과 달리) 국가와 자본의 폭력에 효과적으로 맞설 물리력을 갖추지 못했으며, 정치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경제투쟁에만 매몰돼 있었다. 따라서 여성 노동자들의 희생과 성취는 남성이 주도하는 진정한 노동운동의 시작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일종의 전사前史로 자리매김된다.
19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역사는 노동운동의 주도 세력이 된 남성 노조원의 관점에서 다시 쓰였고, 1970년대 여성 노동자 운동의 이른바 ‘한계’라는 관념이 노동운동과 노동 관련 학술 문헌에서 상식이 되었다. 여성 주도의 운동에서 남성 주도의 운동으로의 ‘진보’라는 생각은 한국 노동운동 안팎의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남성 중심적 사고의 습관과 쉽게 공명하며 안착했고, 따라서 여성 활동가들이 아무리 부당하다고 느낀다 해도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이런 역사 쓰기, 신화 만들기의 과정을 살펴보면서 나 역시 당시 나를 사로잡았던 분하고 억울한 감정의 정체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 감정은 지난 수십 년간 나를 불편하게 했고 젠더 정치에 초점을 맞춘 한국 노동사 연구를 놓지 않게 한 동력이 되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많은 여성 노동운동가들이 구술사 인터뷰에 응하도록 동기를 부여한 것도 ‘역사가 올바르게 기록되지 않았다’는 비슷한 문제의식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