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장준하의 말

장준하의 말

장준하 (지은이), 연규홍 (엮은이)
동연출판사
16,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14,400원 -10% 2,500원
800원
16,100원 >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11st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G마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서점 유형 등록개수 최저가 구매하기
알라딘 판매자 배송 14개 6,750원 >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장준하의 말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장준하의 말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64479483
· 쪽수 : 204쪽
· 출판일 : 2023-08-17

책 소개

뱃사람들이 칠흑 같은 밤바다에서 북극성을 바라보며 길을 잡듯, 해방된 조국에 살고자 하는 희망을 북극성 삼아 쉼 없는 선택으로 점철되었던 장준하의 삶을 이제 우리가 마주한다. 옳은 일에 왕도가 있을 수 없다고 스스로 말한 대로, 그는 광복군으로, 정치인으로, 그리고 언론인으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 나서는 끊임없는 선택을 보여준다.

목차

추천의 말
엮은이의 말

1편 ╻민주사회에 대하여
2편 ╻정치 개혁에 대하여
3편 ╻역사에 대하여
4편 ╻지식인에 대하여
5편 ╻민족 독립에 대하여
6편 ╻자주외교에 대하여
7편 ╻남북통일에 대하여
8편 ╻언론 자유에 대하여
부록 ╻민족주의자의 길 _ 장준하

장준하 선생 연보
화보로 엮은 장준하 일대기

저자소개

장준하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8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4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장준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다. 장준하의 할아버지는 당시 한문 지식뿐만 아니라 신문명을 수용하는 데도 적극적 태도를 보였는데, 장준하의 회고에 따르면 시골 벽지에서 유일하게 신문을 받아 볼 정도로 당대의 정세를 면밀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장준하의 할아버지는 일제에게 불령 불온자인 ‘요주의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장준하의 아버지는 3·1운동이 일어나자 의주에서 시위 참가자들에게 태극기를 나눠 주며 만세 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등 항일 저항 의식을 보였다. 이처럼 장준하는 성장 환경 속에서 할아버지의 지식인적 삶으로부터 이후 ≪사상계≫의 잡지를 발간하게 되는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항일 저항 의식과 불의에 맞서 선(善)을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민족의식과 인류 보편적 민주주의를 향한 정신을 함양하게 된다. 장준하의 이러한 모습은 1937년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사건’으로 그가 다니는 평양의 신성중학교 교장 선생님이 연루돼 일본 경찰에 체포된 데 대해 석방을 요구하는 수업 거부와 동맹 시위를 주도하면서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이것은 장준하에게 일제에 맞서 항거한 본격적 투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성중학을 졸업한 이후 장준하는 평북 정주에 있는 신안소학교의 교원이 되는데 바로 이때 스승과 제자로 만난 사람이 장준하의 반려자 김희숙 여사다. 3년간의 신안소학교 교원 생활 후 장준하는 1년간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일본 유학에서 그는 신학을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장준하가 일본 유학길에 오른 1940년대 초 일제의 군국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리더니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면서 전시 총동원 체제 아래 피식민지는 일제의 전쟁 물자를 공급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이 무렵 장준하는 김희숙과 결혼(1943)을 한 후 일본군의 ‘학도지원병’으로 지원한다(1944). 일본군으로 중국 전선에 참전하게 된 장준하는 동료 조선인과 함께 가까스로 탈출을 했고 온갖 난경 속에서 장개석이 이끄는 중국 중앙군 유격대에 들어간다. 바로 그곳에서 장준하는 그보다 먼저 일본군에서 탈출한 그와 같은 조선인 학병 김준엽을 만난다. 장준하와 김준엽은 무려 6000리(2400킬로미터)가 떨어져 있는 중국 충칭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합류하기로 결심하고 일본군과 마적의 위협을 뚫고 마침내 임시정부에 들어가 중국 중앙군관학교 린촨분교 내 한국광복군 훈련반에 입소해 군사교육을 받는다. 이곳에서 그는 ≪등불≫이라는 잡지를 만들어 신학, 철학, 사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토론과 학습 자료를 만들며 문무를 겸비해 나간다. 특히 중국 서안에서 미국 OSS의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한반도에 기습 침투하는, 오늘날 공수특공대와 같은 게릴라식 전투를 주도면밀히 준비했는데, 이는 안타깝게도 작전 개시 5일 전,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으로 중단된다. 이에 대해 장준하는 체험 수기 ≪돌베개≫에서 “떳떳한 승리의 군대로 조국에 개선해서 발언권을 가지고 국내 치안을 주도해 보려던 꿈이 잠들고 말았다”며 대단히 안타까워했다. 이렇게 일제가 패전한 후 백범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조국으로 돌아온 장준하는 해방 공간의 혼돈 속에서 못다 한 신학 공부를 했고,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1952년 9월 피난지 부산에서 월간지 ≪사상≫ 창간에 이어 1953년 4월 ≪사상계≫를 발행했다. 한국전쟁 와중에 발행된 ≪사상계≫는 척박한 한국 언론의 토양을 객토하고, 무엇보다 환멸과 허무에 침잠해 있던 한국 지성사에 신생의 활력을 북돋았다. ≪사상계≫의 역할은 상상 이상 큰 것이었다. ≪사상계≫는 분단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두 과제를 중심에 놓고 일체의 타락한 정치사회 세력에 대한 준열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5·16군사 쿠데타 이후 정권을 찬탈한 박정희가 장준하와 그의 ≪사상계≫를 탄압하기 위해 온갖 정치적 박해와 음모를 가했다는 것은 당시 중앙정보부의 암행 기록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사상계≫의 활동은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리핀의 막사이사이상 언론 문학 부문의 수상자로 장준하가 선정되면서(1962) 국제적 명성과 정당한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장준하의 이러한 지속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의 군사독재는 장기 집권을 획책하는데, 이에 대해 장준하는 박정희가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이유(친일파, 정치적 무능력, 반민주주의 독재 등)를 조목조목 언급하면서 재야 민주주의 인사를 통합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박정희의 정치적 탄압으로 옥중에 있을 때 옥중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선언했고(1967), 마침내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현실 정치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박정희의 장기 집권이 노골화되기 시작한 유신 체제 아래 장준하는 ‘유신헌법 개헌 청원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1973)을 벌이면서 숨죽이고 있던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과 군사독재에 대한 분노를 표면으로 솟구치도록 하는 도화선 역할을 맡는다. 이처럼 장준하는 반민주주의를 획책하고 정치사회적 억압을 통해 정권을 유지하는 박정희 정부를 향한 준열한 비판과 저항에 모든 것을 걸었다. 박정희 정부의 눈엣가시였던 장준하는 경기도 포천에서 등산 도중 실족으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1975). 이후 그의 죽음에 대해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는 데 한계가 있던 터에, 2012년 그의 묘를 이장하기 위해 관 뚜껑을 열었는데 그의 두개골이 함몰된 것이 드러나면서 두개골 정밀 감식을 거친다. 그에 대해 2013년 3월 26일 백범기념관에서 서울대 의대 법의학자 이정빈 교수의 결과 보고가 있었다. 보고에 따르면, “두개골 함몰은 추락에 의한 골절이 아니라 외부 가격에 의한 손상”이고, “장준하 선생은 제3의 장소에서 살해당하고 시신이 옮겨온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이로써 장준하의 죽음은 등산 도중 실족사가 아닌 타살이라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누가 무엇 때문에 장준하를 살해했는가 하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배후는 누구인가? 이 점은 아직도 미궁으로 남아 있다. 광복군으로서, 재야인사로서, 정치인으로서, 언론인으로서 장준하는 한국 현대사에서 그가 말한 대로 ‘민주대도(民主大道)’를 향한 가시밭길을 걸었다. 그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분단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수행해야 할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펼치기
연규홍 (엮은이)    정보 더보기
한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교회사 전공)를 받았다. 전남 해남의 삼산서부교회 현장목회를 시작으로 육군 군목과 (주) 린나이 코리아 사목으로 일하였다. 호서대, 루터신대, 서울장신대, 나사렛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2007년 가을 미국 버클리 대학의 GTU(Graduate Theological Union) 초빙교수로 강의하였다. 2013년 현재 한신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신대학교 평화와 공공성 센터 소장을 역임하고 교목실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교회사의 해방전통』, 『새 역사 50년사』,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한국 그리스도교 영성사』, 『역사를 살다』 등이 있다. 역서로는 『20세기의 사건들과 현대신학』,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역사와 신학』(공역), 『성서, 나를 읽는 책』, 『한국에 온 캐나다인들』 외 다수가 있다.
펼치기

책속에서

사회를 구성한 자가 인간 개인이며 사유하고 의욕하고 정감하는 자가 개인인 한, 반성과 기획과 창작을 기대함도 개인일 뿐이다. 이러므로 비판의 표준을 정함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예상되는 주체는 인간 개인일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개성을 발휘시키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데에서만 사회는 진정한 발전을 볼 수 있는 것이다.
“1편 _ 민주사회에 대하여” 중에서


한국은 도시 사람들만을 위하는 나라라는 말이 있다. 심지어는 “지방은 서울 사람들을 위하여 있는 식민지가 아니냐”는 극언까지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발걸음이 오직 서울 중심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결과로 서울을 비롯한 큰 도시는 직장 없는 사람들의 유입으로 인구만 팽창하여가고 한편 지도자도 없고 중앙의 협조가 부족한 농어촌은 날로 피폐를 더하고 있다. 그들은 오직 말단 관원들의 무계획한 지휘 밑에 이리 움직이고 저리 밀려가며 원시적 생활방식만으로 되풀이해 나갈 뿐이다.
“2편 _ 정치 개혁에 대하여” 중에서


역사는 불연속적 현실의 무한한 연속이다. 우리의 현실도 영원한 역사 속에서 일어난 유(唯)일회적인 사건이면서 이 역사를 형성하는 절대적인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파악 없이 역사는 정당히 이해되지 않으며 역사에 대한 정당한 이해 없이 새로운 역사의 창조나 보다 나은 현실에로의 지양은 바랄 수 없을 것이다. 사고의 필요성은 현실을 합리화시키거나 도피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하고 보다 우월한 것으로 향상 발전시킴에 있는 것이다. 이러므로 사고의 목표는 항상 현실에 대한 가장 정당한 비판과 결함 제거에 두어야 하며 나아가 새 역사 창조에 두어야 한다.
“3편 _ 역사에 대하여” 중에서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이 포스팅은 제휴마케팅이 포함된 광고로 커미션을 지급 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