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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사진 > 사진집
· ISBN : 9788964562338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18-02-23
책 소개
목차
01 러시아 가라바니 또는 망각된 형상들의 이름
02 아테네로서의 아테네와의 만남
03 늙지 않는 무덤의 숨
책속에서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차갑고 거대한 낡은 영토. 그것과 관련된 우리의 사고는 오로지 한 가지 문제에 봉착한다. 우리는 어떻게 이 영토를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울 것인가? 그리고 그 영토가 지워진 자리를 무엇으로 어떻게 메우고 채울 것인가? 소비에트연방 몰락 이후 이 광대한 영토에 불어닥친 급격한 변화는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기억할 수도 또 망각할 수도 없게 만들어버렸고 따라서 우리의 인식 속에 한때 강렬하게 자리했던 그 영토는 어느덧 싸늘하게 식어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 명백히 드러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잊혀지지도 않은 애매모호한 모습으로 부유하고 있다. 이 망각의 형상이 새로운 옷을 입고, 새로운 표정을 하고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친숙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낯설지도 않은 얼굴들은 우리에게 차가운 인사를 건네고, 무력한 우리는 아직 그 인사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오늘날 아테네로의 여행은 고대 그리스, 신들의 세계로부터 파생된 굴곡진 역사를 해체하고 그것을 다시 혼란의 상태로 밀어 넣는 잔인함과 혼란으로의 여정을 의미한다.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파르테논 신전의 복원 공사는 혼잡스러운 관광지에서의 현기증을 배가시키고 공사 현장에서 흘러나오는 먼지와 잡음은 이곳을 방문한 순례자들의 기억 속에서 재생되어온 신성과 숭고를 간단히 제압한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의 결여를 논리적으로 통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관에 의해서도 확실히 할 수 있다면 미의 학문에 대한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아테나 신에게 바친 거대한 신전으로 몰려드는 수많은 관광객의 행렬은 니체가 이야기한 직관을 현시적인 것이면서 신체적인 촉각적 경험으로 만든다. 아테네로의 여행은 이상적인 것과 신화적인 것 그리고 저마다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어떤 불특정한 공상을 파괴하고 변형을 가해 그로 인해 아테네와 아테네의 이미지 사이에 있는 심연의 깊이를 없애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