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후기(영조~순종)
· ISBN : 9788964990285
· 쪽수 : 308쪽
· 출판일 : 2016-03-14
책 소개
목차
Ⅰ. 교섭의 기원 21
1. 셔먼호 문제 26
2. 무덤 도굴사건과 그 영향 28
Ⅱ. 신미양요와 그 뒤의 교섭 31
1. 미함내방美艦來訪 32
2. 강화만상江華灣上 충돌 34
3. 양요洋擾의 여문餘聞 36
4. 쇄국의 근본이유 39
5. 신미 후의 조선정세 41
6. 황씨 ≪조선책략≫ 44
7. 조야朝野여론 추향趨向 46
8. 이홍장李鴻章의 권도勸導 49
9. 조선식자朝鮮識者의 연미설聯美說 52
10. 영선사의 파견과 숨은 사명 55
11. 암밀리暗密裡에 기운점숙機運漸熟 57
Ⅲ. 수호 직전의 정세 61
1. 천진회담 62
2. 완만한 교섭 64
3. 예비의약豫備議約의 시말始末 67
4. 의약의 초점과 난관(上) 69
5. 의약의 초점과 난관(中) 72
6. 의약의 초점과 난관(下) 74
7. 예비의약의 여론 77
Ⅳ. 수호修好 전의 미국태도 81
1. 재교섭의 동기 82
2. 슈펠트의 사명 84
3. 교섭돈좌交涉頓挫와 신방침 87
4. 제독을 초청한 내막 89
5. 재再도항 후 제독 91
6. 천진체류의 제독 94
7. 훈령과 슈 제독 96
8. 슈 제독과 이李 총독 98
9. 중요한 차이점 101
10. 쌍방의 견지와 타협 103
Ⅴ. 정식담판과 조약성립 107
1. 미사美使 청사淸使의 동항동래同航東來 108
2. 이중당李中堂의 내서來書 110
3. 조약 조인 광경 112
4. 한미조약에 대한 논평 121
5. 수호성립과 열국 태도 123
Ⅵ. 미공사내美公使來駐와 초기외교 127
1. 푸트 공사의 내주 128
2. 비준교환과 폐현陛見 130
3. 고종과 미공사美公使 132
4. 외아문外衙門과 충돌 135
5. 갑신정변과 푸트 공사 138
Ⅶ. 보빙사절報聘使節과 양국친선 143
1. 민영익 특파 144
2. 대통령 알현식謁見式 146
3. 국서와 신임장 149
4. 대통령 답사의 내용 151
5. 미국문물 시찰 154
6. 민 대사의 세계일주 156
7. 사절과 문화적 영향 158
8. 복명復命과 군신의 대화 161
9. 사절의 의의 165
Ⅷ. 미국 초기의 대한정책 167
1. 반도와 열강의 경쟁 168
2. 당년當年외교와 중요인물 170
3. 청국책동淸國策動과 고문顧問 173
4. 포크와 한성외교 분야 175
5. 1884년의 한국정변 178
6. 대한책對韓策 일전기一轉機 180
7. 밀약과 사관士官초빙 182
8. 포크의 고심과 미국의 퇴영退嬰 185
9. 폐립음모와 상원의원 187
10. 한청관계와 미국 정부 190
11. 포크와 결론 192
Ⅸ. 주미 최초 한국 공사 195
1. 주미 전권대신 박정양朴定陽 196
2. 사명과 영약삼단另約三端 198
3. 공사일행 도항渡航 201
4. 요코하마에서 워싱턴 204
5. 박 공사와 미국 국무성 207
6. 청 공사의 힐문詰問 210
7. 무례한 청국간섭 213
8. 영약과 미국 여론 216
9. 국서봉정식國書奉呈式 광경 219
10. 정관시무定館始務 개시 221
11. 공사관 생활 1년간 223
12. 광물鑛物기사 초빙과 영사관 증설 226
13. 소위 영약 위반과 박 공사 소환 229
14. 복명復命과 미국관美國觀 232
Ⅹ. 주미 서리공사 시대 241
1. 200만불 차관 242
2. 외교관 생활의 일면 244
3. 철도모형과 미국문화의 유입 247
4. 미국박람회 출품 249
5. 교사파면과 봉급독촉 252
Ⅹ|. 다사한 씰 공사 시대 255
1. 청일전쟁과 씰 공사 256
2. 방전防戰운동과 한미교섭 258
3. 정동 구락부와 미국인 261
4. 을미정변과 미국인 263
5. 국무성과 공사관의 간격 266
6. 아관파천과 미ㆍ러파의 책동 268
7. 파천播遷의 동기와 일화 271
8. 독립협회와 민권사상 273
Ⅹ||. 알렌 공사에서 모간 공사로 277
1. 알렌 공사의 인물 278
2. 미국인 고문顧問 280
3. 샌즈의 책동 282
4. 미국인 선교사 285
5. 이권운동利權運動 287
6. 러일전쟁과 미국태도 290
7. 러일강화露日講和와 로우즈벨트 292
8. 보호조약과 밀사사건 294
9. 유미留美학생과 노동자 297
L. 결론 301
C. 여론餘論 305
책속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되던 그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 생각하건대 일찍 18세기 중엽에 미국이 아직 영국의 식민지로 있을 때부터 중국 시장에서 우리 고려인삼에 대하여 미주美洲 인삼의 경쟁이 생겼으니 한미관계는 멀리 여기서 유래하였다. 미국이 독립 후 그 국운이 크게 진전하여 널리 시장을 세계에 구할 새 1853년, 페리 제독이 일본에 와서 미ㆍ일 통교를 틀 때도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이웃집 담 너머로 보이지 않는 처녀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셈으로 미국인의 짝사랑에 지나지 못하였다. - 한미교섭의 시작 중
경진(1880) 9월 초8일 경복궁 중희당에서
이최응: 몇 해 전 마야모도宮本小一가 연향燕饗에서 아라사에 대한 말을 하는데 이것이 참 진정입디다. 우리나라 사람은 공연히 의심하더니 이번 신사행중信使行中에 청인이 보낸 책자를 보매 그 실정에 맞습니다.
임금: 아라사는 염려가 되나 일본인이 아주 극진하게 굴던 모양이지요?
이최응: ……실정實情입니다.
임금: 신사행중에서 가져온 책자는 청나라 사신이 준 것으로 후의가 일본보다 더하며 그 책자를 대신께서 보았는지요?
이최응: 일본이 이렇게 정답고 친절하게 구는데 청나라 사람이야 말씀할 것 있겠습니까……. 그는 우리나라로 방비케 하려고 하는 것이건만 우리나라 사람은 본디 의심이 많아 책을 덮고 연구하지 아니합니다.
임금: 그 책자를 보니 과연 어떻던가요?
이최응: 신이 본즉 그의 제조논변諸條論辯이 우리 심산에 맞으니 그대로 두기는 아까운가 합니다. - 신미양요와 그 뒤의 교섭 중
"슈펠트 제독은 홍장이 앞서 의정擬定한 원고를 보고 '제1관 조선은 중국의 속방'이라는 조목을 강력히 윤종允從치 않습니다."
라 하였다. 이때 이중당은 이 1관에 대하여 자기 막료인 주복과 마건충을 시켜 미국 사신과 힘겨루기한 지 17일에 이르러도 결국 미국 사신을 설복할 수 없었으므로 홍장이 미국 사신에게 심지어 이런 말까지 하였으니 "귀관이 만일 제1관을 승인하지 아니하면 중국은 이 조약에 찬성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일종 위협을 하였으나 미국 사신은 어디까지든지 아니하였다. - 수호직전의 정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