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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65702535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15-05-1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스니커즈 없인 못 살아!
완벽한 아내로 사는 법
왼쪽 가슴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커피 내리는 시간
나는 누구입니까?
YOON'S LIST
언젠가, 라는 거짓말
커플 탬퍼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그 여자의 방
너는 내게 가깝다
춘천 가는 기차
서른일곱 살의 파자마 파티
1퍼센트의 여자
그리고 다시, 봄
에필로그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만약 이제 와서 누군가 내게 결혼의 정의를 묻는다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결혼이란 바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자의 엉덩이가 닿은 변기에 거리낌 없이 나의 맨 엉덩이를 가져다대는 일이라고. 고질적 무좀을 가진 남자와 손톱깎이를 공유하고 가끔 칫솔이 뒤바뀐 채 양치질을 하며 남자의 코가 묻은 수건에 막 세안한 나의 해맑은 얼굴을 문지르는 일 따위는 예사인 삶, 매일 아침을 원두 향 대신 구린내 진동하는 상대의 구취로 시작할 자신이 없다면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결혼이라고 말이다.
매주 반복되는 지훈의 반찬 투정에 참았던 짜증이 치민다.
“너 정말 너무한다고 생각 안 해? 겨우 주말에 한번 올라오는 남편한테! 내가 매일 집 밥을 먹는 것도 아니고.”
그 뒤에 이어질 그의 말은 안 들어도 뻔하다. 다른 동료들 와이프는 맞벌이를 하면서도 남편 와이셔츠는 물론이고 팬티까지 손수 다림질해서 준다더라. 애 셋에 맞벌이까지 하는 같은 회사 모 직원의 와이프는 남편 영양제며 보양식만큼은 똑 부러지게 챙긴다더라, 라는 식의 남친아(남편 친구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오늘은 확인할 바 없는 남친아 타령 대신 비장한 목소리가 깔린다.
“나 지난 번 건강 검진한 거, 결과 나왔더라.”
그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간다. 혹시 건강에 문제라도 생긴 걸까?
(…)
“나, 위염이란다.”
죽을힘을 다해 팽팽하게 당기던 줄을 반대쪽에서 예고도 없이 탁 놓아버린 기분이다.
위염이란 단어를 마치 위암 말기처럼 내뱉는 저의는 대체 무얼까. 갑자기 오만정이 뚝 떨어진다.
“약 잘 먹고 당분간 집 밥 챙겨 먹으래.”
그럼 그렇지. 결론은 역시나 그놈의 밥, 밥, 밥이다. 남자들은 밥 얘기가 지겹지도 않은 걸까. 밥이 그렇게 좋으면 한정식 집 주방장 아줌마랑 결혼하지 그랬어! 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지만 애써 꿀꺽 삼킨다.
산모가 진통할 때처럼 주기적인 통증이 온다는 장중첩.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고통과 싸우고 있는 아이를 위해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만약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병원에 데려왔다면 지오는 덜 아파해도 됐을 텐데. 자식이 아픈 동안 엄마라는 사람은 학생들 앞에 서서 잘난 척 강의나 하고 있었다니. 엄마 자격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이 누구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돌이켜보면 늘 그랬다.
학원에서 일을 하면서는 아이 생각이 끊이질 않았고,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학원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면서 마치 여유롭고 균형 잡힌 삶을 살고 있는 워킹맘인 양 끝없는 자기 설득으로 간신히 버텨왔던 시간들. 결국 나는 좋은 엄마도 좋은 강사도 아닌 채 어설픈 가면을 쓰고 살아왔을 뿐이다. 그리고 그 속에 희생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아이다. 이런 내가 끔찍하게 느껴져 견딜 수가 없다.
나는 대체 누구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