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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66394715
· 쪽수 : 265쪽
· 출판일 : 2011-12-30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라운드. 그들의 신경전
2라운드. 뒤바뀐 승자
3라운드. 협상 결렬 or 성공
4라운드. 직사각형의 세상에 너를 담다
5라운드. 보슬보슬 익어 가는 그 무엇
6라운드. 한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7라운드. 가까이 더 가까이
8라운드. 서로를 담다
9라운드. 지금 이 시간
에필로그 둘. 따로 또 같이
에필로그 셋. 다시 도진 소하의 귀차니즘
에필로그 넷. 아주 오래전 그날
후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밥 먹으려고?”
묻는 도아의 말에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제법 긴 시간이 지났기에 이미 사라졌을지 모를 신선로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아, 진짜. 이러면 안 되는데.”
말은 그리 내뱉었지만 그는 이미 의자에 앉아 젓가락을 들고 있었다. 그래. 맛만 보는 거다. 그리고 보란 듯이 ‘별거 아니네.’라고 말하고 젓가락을 내려놓고 돌아서는 거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그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움직였다.
“맛있지?”
정신없이 이것저것을 먹는 와중에 들린 그녀의 말에 생각할 여유가 없어 재율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신선로는 입을 즐겁게 해 주는 탕이라고 해서 열구자탕이라고 해. 오색 빛깔이 보기에도 좋고 영양만점이거든. 손이 좀 많이 가기는 하지만 내가 잘하는 것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이상하게도 제법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따뜻했다. 요상하게 생긴 그릇 중앙이 뻥 뚫린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살짝 고개를 숙여 바라보고 그 중앙에서 따뜻한 열감이 느껴졌고, 그 아래 붉게 달아오른 숯이 있었다.
“숯불?”
“신선로는 시간이 지나도 따뜻하게 먹을 수가 있어. 이 중앙에 난 통로를 통해 화통에서 시작된 열이 전해지고 있거든. 어때, 맛있지?”
거듭 묻는 말에 저도 모르게 재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저를 들어 신선로의 국물을 떴다. 그녀의 말처럼 따뜻함이 사라지지 않은 신선로의 감칠맛 나는 국물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아니, 맛있다는 말로 표현하는 제 표현력의 한계가 아쉬울 뿐이었다.
“내일은 비빔밥 해 줄까? 아니면 불고기?”
“둘 다.”
“너 한식 좋아하는구나.”
붉은빛의 더덕구이의 아삭함이 입안에 퍼짐과 동시에 향긋함이 몰려왔다. 그 향긋함에 취해 재율은 도아가 자신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모른 채 대답했다.
“내게 한식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거든. 타국에 살아봐, 이 맛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래? 그럼 매일 매일 이렇게 맛있는 한식 먹고 싶겠네.”
“그럼 당…….”
도아의 말에 생각 없이 대답하던 재율은 그제야 그녀가 꺼내는 말을 요지를 깨달았다. 탁, 소리가 나도록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뭐야?”
“아니. 내가 말 안 했던가? 나 매일 저녁 이렇게 한 상 거하게 차리거든. 근데, 손이 커서 그런지 매번 음식이 남더라고.”
“남아?”
그녀가 자신을 구슬리기 위해 요리를 대접했다는 사실에 입맛이 똑 떨어져야 하건만 그녀의 말에 저도 모르게 침이 입안에 고였다. 애써 시선을 돌리려 하지만 신선로의 맛에 취해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윤이 좔좔 흐르고 있는 잡채가 눈에 밟혔다.
“남는 요리를 먹어 줄 사람이 없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비딱하게 의자에 기댄 채 재율이 도아를 빤히 바라봤다. 지금 와서 표정을 가다듬고 목소리를 깐다고 해서 방금까지 허겁지겁 밥을 먹던 최재율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건만 그는 요리에 관심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먹고 싶으면 모델이 되든가.”
별것 아니라는 투의 말에 재율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내민 것은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다. 그렇게 질색이라고 말을 했음에도.
“내가 말했지? 나 카메라 소름끼친다고.”
“알아. 아니까 협상 카드를 제시하는 거잖아. 서로가 원하는 것 하나씩 주고받자는 거잖아. 넌 하루면 되고 난 네가 원할 때까지 차려 주겠다고. 네 그리움인 밥을 말이야.”
그녀의 말처럼 카메라 앞에 하루 동안 서 있는 것과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는 저녁식사는 애초에 그에게 이로운 협상카드였다. 하지만 재율에게는 아니었다.
“됐다. 그만하자.”
그녀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재율은 돌아서서 밖으로 나왔다. 오피스텔 밖으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차가운 겨울바람이 그를 휘감았다. 그제야 알았다. 그녀의 요리에 아니, 꾐에 놀아나 재킷도 입지 않은 채 니트 바람으로 나왔다는 것을.
“하, 원하는 것을 주고받아? 웃기지도 않아.”
혼잣말을 쏟아낸 재율은 오피스텔 1층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 생수를 샀다. 그리고 벌컥 벌컥 들이켰다. 차가운 생수건만 이상하게도 차갑지 않았다. 속에 열불이 난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