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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좋아

죽어도 좋아

쇼콜라 (지은이)
  |  
가하
2012-02-06
  |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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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좋아

책 정보

· 제목 : 죽어도 좋아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66471744
· 쪽수 : 416쪽

책 소개

쇼콜라의 로맨스 소설.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어머니의 쇼핑 중독이 이령에게 남긴 것은 끝없는 빚뿐. 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에서 조금이라도 숨을 쉬기 위해 다른 사채에 손을 댄 그녀. 짧지만 달콤한 기억 속의 대학교 동창 권승진은 이제 패스트 캐시 사장의 이름으로 냉정하게 요구사항을 말하는데…

목차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Epilogue
p. s.

저자소개

쇼콜라 (지은이)    정보 더보기
「침대 속의 사정」, 「포스터 속의 남자」, 「피그말리온」, 「스프링 레이디」, 「죽어도 좋아」를 출판했다. 비터 초콜릿같이 깊은 맛이 느껴지는 로맨스를 쓰고 싶어하는 아직 젊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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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그거 알아?”

이령이 숨을 멈추고서 그를 보았다. 몸이 파들파들 떨렸다.

“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물건이야. 돈으로 환산되는 물건. 내가 대여하고, 팔고, 처분할 수 있는 물건.”

그녀는 낮게 숨을 내쉬고 천천히 들이켜며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의 손이 가슴 위로 선을 그리며 느긋하게 위로 올라오더니 목덜미에서 멈추었다.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그녀의 몸이 뒤로 밀려갔고, 마침내 침대 위로 드러누웠다. 그가 상체를 기울여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커다란 손이 그녀의 목을 감싸고 살짝 눌렀다.

“내가 여기서 죽여버려도 상관없는 물건일 뿐이라고. 알아?”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하지만 방 안이 워낙 조용해서 그녀의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얼음 같은 눈동자는 이게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이 자리에서 그녀를 죽일 수 있었다. 얼마든지.
왜 이렇게 그녀를 싫어하는 걸까? 빌려준 돈을 받아내기 위해 누군가에게 파는 것도 싫고, 그냥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은 걸까? 무엇 때문에?

“정말로 아냐고.”

그가 고개를 기울여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입김이 얼굴에 따스하게 닿았다. 이령은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목을 쥐고 있는 그의 손등에 턱이 닿자 그냥 그렇게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고 그 느낌을 느끼고 싶었다.
그에게 안기고 싶었다. 그의 품에 웅크리고서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다.

“죽여도 돼.”

생각보다 목소리가 작게 나왔다. 승진은 마치 잘못 들었나 하는 얼굴로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가 짧게 물었다.

“뭐?”

“죽여도 된다고. 죽이고 싶다면.”

“내가 못 죽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목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서 침을 삼키기도 어려웠다. 그녀는 좁아진 기도로 간신히 숨을 들이켜고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뭐, 내가 죽여주길 바라서 여기 온 거야? 죽고 싶어, 정말로?”

죽고 싶은가? 아니, 잘 모르겠다. 살고 싶지는 않지만, 힘내서 죽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사람이 대신 죽여준다면 별 상관은 없을 뿐. 더더구나 상대가 승진이라면.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보는 게 그의 얼굴이 될 것이다. 나쁘지 않잖아?
좋아했던 사람 손에 죽는 입장. 지금 그녀의 입장에선 그보다 나쁜 운명을 얼마든지 더 떠올릴 수 있었다.

“죽여도 돼.”

그녀는 나직하게 다시 말하고는 눈을 감았다. 그 외의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설명할 수도 없었다. 설명한들 아마 승진은 믿지 않으리라. 그녀 자신도 믿을 수가 없는데 그가 어떻게 믿겠는가.
나는 어쩌면 네 기억 속에서 네가 죽인 사람 중 하나로 남을지도 몰라. 1억을 빌려가 안 갚은 배은망덕한 계집애가 아니라, 네 손에 죽은 사람으로 남게 될 거야. 그 편이 나아.
죽는다면, 죽어야 한다면, 네 손에 죽고 싶어.
뭔가 따뜻하고 축축한 것이 뺨에 닿았다. 그의 혀가 그녀의 뺨을 핥고 귓가를 쓸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에 그녀가 몸을 다시 바르르 떨었다. 그의 뜨거운 숨이 귀 안쪽으로 흘러 들어오자 등골이 오싹하고 몸 안쪽이 간지러워졌다. 뭔가, 손으로 긁을 수 없는 어떤 곳이.

“너, 미쳤구나.”

뜨거운 숨결과 함께 그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녀의 입에서 흐릿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응. 아마도.”

그의 이가 귓불을 깨물었다. 액세서리라고는 해본 적 없는 귀에 따끔한 충격이 느껴지자 그녀가 움찔했다. 그의 손이 그녀의 목을 다시금 누르고 꼼짝할 수 없게 만들고 귀를 아프게 씹어댔다. 귀에 피멍이라도 들지 않을까 생각할 무렵 그가 마침내 상체를 들고 그녀를 보았다.

“다음 달에 여기서 파티를 할 거야. 아는 조직 거물들이 모이지. 접대할 애들도 부를 거고.”

그의 손이 그녀의 목을 놓고서 천천히 다시 살결을 쓸어내렸다. 이제 미지근하게 식은 액체가 가슴 위로 넓게, 그의 손을 따라 퍼졌다.

“거기서 널 내놓을 거다.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게 정신 차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널 테스트하고,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에게 팔 거니까. 모자라는 가격은 널 회수해서 되팔고, 되팔고 해서 찾을 거야. 그때쯤이면 다시는 멀쩡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걸.”

그의 말에는 억양이라고는 없었다. 이령은 눈을 깜박이며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그녀를 놓아주고 일어나서 침대에서 내려갔다. 그녀는 고개만 돌려 화장실로 가는 그를 바라보다가 화장실 문이 열렸다 닫힌 다음에야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멀쩡한 세상이라는 게 뭔지 나도 모르는걸.”

멀쩡한 정신이라는 것도 뭔지 모르겠다. 그저 멍하니 눈을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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