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66476763
· 쪽수 : 380쪽
· 출판일 : 2013-08-19
책 소개
목차
01.
02.
03.
04.
05.
06.
07.
08.
09.
10.
11.
12.
13.
14.
15.
16.
작가 후기
Hidden Track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저기, 음, 선민 씨 혹시 처음이었어요?”
“글쎄요. 뭐라고 해야 되는지 모르겠는데, 처녀는 아니에요. 하지만 남자가 삽입한 게 강우 씨가 처음인 건 맞고요. 처녀라고 해야 되나? 아, 정말 잘 모르겠네.”
“그럼…….”
강우는 평생 처음 할 말을 잃고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선민은 아무렇지 않게 그를 쳐다보고 대답했다.
“기구는 썼거든요. 기계는 안전하잖아요. 임신 가능성 제로.”
맙소사, 그녀가 기구를 들고서 자위하고 있는 상상을 하니 몸이 곧장 달아올랐다. 게다가 남자가 삽입한 건 그가 처음이란다. 이런 젠장. 그럼 처녀인 거잖아.
“그럼 도대체…….”
“정말 우연이었지만, 나한테 딱 맞더라구요. 게다가 실질적인 삽입이 없이도 만족을 느낄 수 있고. 하지만 아마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사이코 변태라고 생각할 거예요.”
강우도 특이한 종류의 섹스에 대해 모르는 건 아니었다. 클럽이 몇 개에 그가 관계된 조직이 몇 군데인데 성의 어두운 면을 모르겠는가. 의외로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민이 저렇게 이야기를 빙빙 돌리고 있으니 떠오르는 건 몇 개 되지 않았다.
“혹시……, 매저키스트예요?”
선민이 인상을 찡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이불을 고쳐 덮은 다음 그녀가 무릎을 껴안고 부루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거랑은 달라요. SM은 때리고 맞는 데에서 쾌감을 느끼는 거지만, D/S는 말하자면 지배와 복종의 관계예요. 돔은 지배하는 쪽이고, 서브는 복종하는 쪽이죠. 돔이 명령을 내리면 서브는 그걸 그대로 따라야 해요. 따르지 못하면 벌을 받고요. 그렇게 서로 만족을 느끼는 거죠. 뭐, SM이랑 비슷한 면이 있다는 걸 부인은 못 하겠네요. 종종 돔이 서브를 묶거나 구속하고 흥분시키니까.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건 지배와 복종의 관계라는 게 다른 거예요.”
어……. 강우의 머릿속에 수십 가지 생각이 스치고 사라졌다. 지배와 복종, 구속과 흥분. 말하자면 그러니까…….
“서브는 돔의 명령을 무조건 따라야 해요.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줘야 하는 거죠. 여기서 5분간 꼼짝도 하지 말라고 하면 그야말로 그 상태 그대로 눈을 감아도, 고개를 돌려도 안 되고 그대로 기다려야 해요. 돔이 돌아올지 안 올지조차 모른 채 아무것도 묻지 말고요. 만약 돔이 온갖 흥분될 만한 행위를 하면서도 절대 오르가즘을 느끼지 말고 참으라면 참아야 하고요. 왜냐하면 돔, 그러니까 마스터는 돌보는 사람이거든요.”
가라앉던가 싶던 강우의 남성은 다시금 뻣뻣하게 솟구쳐서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하자고! 하자니까! 이 여자를 지배하는 거야! 명령을 내리고, 즐겁게 만들어주는 거야. 쾌감으로 바들바들 떨게 만들어주자고. 아까 전에 했던 영 만족 안 되는 섹스는 때려치우고, 이제부터는 이 여자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거야.
왜 지금까지 이런 걸 숨기고 있었는지는 알겠다. 웬만한 남자들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듣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도망칠 테니까. 맙소사, 이 여자 완전히 변태 아냐? 내가 ‘걸레’랑 결혼했어! 아마 그러고서는 부리나케 이혼서류를 떼러 가겠지.
하지만 강우는 십대 중반부터 이미 술집과 룸살롱, 클럽을 자기 집처럼 여겨온 몸이었다. ‘문란한’ 것과 ‘섹시한’ 것은 분명히 다르다.
왜 지금껏 선민이 그에게 거리를 두었는지 알 것 같아서 강우는 빙그레 웃으며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선민은 다시금 움찔했으나 그의 손이 부드럽게 어깨를 쓰다듬자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럼 그 옛날 애인이라는 녀석은 선민 씨랑 그런 관계였던 거예요? 그리고 그걸 포기하기 싫어서 여기까지 쫓아온 거고?”
“그런 셈이죠. 미국이라고 해서 아무한테나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서로 이미 취향을 아는 사이라면 걱정할 게 없잖아요. 자크도 그러니까 날 놓고 싶지 않은 거예요. 평범한 여자랑 결혼해서 살면 숨기느라 바쁠 테니까.”
강우는 코웃음을 치고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새 여자 찾아 용기를 내서 고백하라 그래요. 선민 씨한테는 이제 새로운 마스터가 있으니까 안 된다고.”
그가 그녀를 끌어당겨 차가워진 관자놀이에 키스하고 말을 이었다.
“말해줘서 고마워요. 선민 씨가 왜 숨겼는지 알겠는데, 나 그런 걸로 충격 받을 정도로 순진하진 않아요. 젠장, SM클럽 문지기 짓도 해봤는데.”
“진짜 우리나라에도 있어요? 와, 좀 놀라운데요.”
그녀가 쿡쿡 웃었으나 그를 살짝 밀어냈다. 강우는 인상을 찌푸렸으나 그녀를 얌전히 놓아주었다. 못 믿는 것도 당연하다. 그가 이불 아래로 그녀의 손을 찾아서 꼭 쥐었다.
“선민 씨, 진심이에요. 뭐, 선민 씨처럼 그 방면을 즐겨왔던 건 아니지만, 시도해볼 용의는 있어요. 노력해보고, 안 되면 그다음에 생각해도 되잖아. 괜히 혼자서 참고 평범한 섹스를 해보려고 하지 말고 진작 얘기했어야죠.”
선민은 몇 번인가 입을 벌렸다가 다물고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저기, 나 처음부터 강우 씨가 좋은 마스터가 될 거라고는 생각했어요.”
그녀의 말에 흥분은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심장이 쿵쿵거린다. 그녀의 손을 쥔 손바닥에 땀이 뱄다. 그럼 이제부터…….
“그런데 강우 씨가 착각하는 게 있는데.”
그녀가 그에게서 천천히 손을 뺐다. 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잘못됐는데, 그게 뭐지?
“있잖아요, 강우 씨. 지금 와 있는 내 옛날 애인 자크 앵겔버트는 말이죠.”
그녀가 한숨을 살짝 내쉬고서 희미한 미소가 어린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자크는 내 서브였어요.”
강우는 눈을 깜박였다. 선민이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내가 마스터라구요. 미스트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