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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형 (지은이)
  |  
가하
2012-10-18
  |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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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책 정보

· 제목 : 독재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66474028
· 쪽수 : 448쪽

책 소개

김신형의 로맨스 소설. 탕! 그는 사막이다. 한 마리 사나운 짐승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고귀한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술탄의 후계자. 그가 그녀의 1년을 소유했다. 그리고 이제 평생을 소유하려 한다.

목차

열사의 땅, 북극곰
달빛 아래, 그리고……
숨바꼭질은 끝났다
첫 만남
종신계약
곰의 시중을 들다
사랑과 살인의 중간
종잡을 수 없는 남자
해윤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나라
사막과 바다의 경계
납치
의식
피할 수 없는 남자
죽음도 그를 비켜간다
육지 없는 바다
재회
에필로그
후기

저자소개

김신형 (지은이)    정보 더보기
필명은 하현달. 현재 로망띠끄 시크릿가든과 럽펜에서 활동 중. 좋아하는 것은 낭만과 대나무, 그리고 죽순. 싫어하는 것은 싫은 것 모두. 외로움을 많이 타는 방랑아. 초승달이 뜨고 별이 쏟아지는 사막에 집을 지어 사막여우와 함께 사는 소박한 꿈을 매일매일 꾸고 있다. ▣ 출간작 바람의 용 청호(靑虎) 스타와 여배우 월광(月狂), 달에 미치다 흑호(黑虎) 류(流) 블랙 레이디(Black l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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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한 치의 끝에서 서윤을 보는 아샨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넘어가지 않는 숨을 억지로 들이쉬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일렁이는 검은 소용돌이.

이곳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폭풍이 아샨의 날선 눈에 담겨 있었다. 누워서 바라보니 더욱 눈부신 달빛이 아플 정도로 시렸다.

“나는 네가 익숙해진 모양이야.”

그가 무미건조하게 입을 열었다.
마치 그것이 불쾌하다는 듯, 또는 나쁘지 않다는 듯.

“하지만 이 놀이도 이제는 끝내야겠지.”

자신의 감정에 대한 확신을 이제야 가진 사람처럼 아샨이 결단을 내렸다.

그의 눈빛만으로는 읽을 수 없었다. 그가 끝내고자 하는 것이 서윤에 대한 감정인지, 말 그대로 놀이에 불과했던 서윤과의 줄다리기인지.

그가 나타내고자 했던 감정은 생각보다 빠르게 보였다.

여전히 그녀의 목을 내리누르며 아샨이 들고 있던 칸자르의 날을 서윤에게로 세웠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서운 걸까.

마지막 순간을 목전에 두고서야 깨달았다. 아샨이 자신에게 느낀 감정은 호감이 아니라는 것을.

아스카가 말했던 아샨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사람’에게 그는 공포를 느낀 것이라고. 그가 느낀 두려움과 공포를 그녀에 대한 호감이라고 서윤과 아스카가 착각한 것이었다.

당신은 내가 무서운 거였구나.

그 말은 끝내 음성으로 나오지 못했다. 숨을 헐떡이는 것만으로도 서윤에게는 벅찼다.

그를 두렵게 하는 공포가 없는 세상에서 이 남자는 완전해질 수 있을까?

역시 나오지 못한 물음이 맴돌았다. 결여가 아니라 완전해지기를 바랐다.

바람이 불지 않기를…….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칼날을 서윤이 마지막까지 바라보았다. 자신이 그에게 공포라면 마지막 순간까지 맞서고 싶었다. 그것을 끊어내는 것을 보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서윤은 자신의 목덜미로 다가온 칼날조차 느끼지 못했다.

아샨과 맞선 그녀의 눈빛은 여느 때보다 형형하게 빛났다.

스걱.

살이 베이는 소리가 섬뜩하게 귓전에 울렸다.

자신에게 죽음이 찾아온다면 발끝에서부터 찾아오리라 여겼다. 그녀의 발끝부터 차가워지며 전신이 싸늘하게 식어갈 거라 생각했다.

붉은 피가 서윤의 목덜미를 타고 주르륵 흘렀다.

하지만 서윤은 여전히 온기를 가진 채 아샨을 보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그녀의 목을 내리누르고 있던 왼손을 들어 올렸다. 깊게 베인 손목에서 끊임없이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달빛에 선명하게 보이는 그 진홍색의 핏방울이 서윤의 얼굴 위로 떨어져 내렸다.

“마셔.”

창백하게 질린 서윤의 입술 위로 아샨이 자신의 피투성이가 된 손목을 가져다 댔다.

죽음 앞에서도 이토록 두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달빛 아래 떨어지는 그의 생명의 색은 무서우리만치 고왔다. 사람의 피가 그토록 곱다는 것을 처음으로 서윤의 머리가 인식했다.

마치 달의 눈물 같은 그 피가 서윤의 입술을 흠뻑 적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술을 열 수 없었다.

이것은 아샨만의 의식이었다.

그녀를 자신의 사람으로 받아들이려는 게 분명한 그 의식 앞에서 온몸이 굳은 채 서윤은 움직일 수 없었다.

“입 벌려.”

달큼한 목소리에 유혹이 묻어나왔다.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서윤을 보며 아샨이 자신의 팔목에 스스로의 입술을 묻었다. 그의 입술이 잔인하고 빠르게 자신의 피를 깊게 들이켰다. 서윤의 시선 아래 보이는 달빛이 일순 눈앞까지 다가온 아샨의 얼굴로 인해 그늘졌다.

“흡……!”

그녀의 입술을 열고 들어온 매끄러운 혀에 섞인 혈향이 그의 목소리만큼 달큼했다. 진득하게 타액과 함께 서윤의 입속에서 뒤섞였다. 아샨의 혀가 결코 서윤의 반항을 용납하지 않았다.

더 이상 그 달큰함이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끝까지 서윤의 입 안을 유린했다. 그녀의 고른 치아를 샅샅이 훑고 깊게 타액을 빨아들인다.

“……나와 피를 나눴으니, 네 적은 곧 나의 적이 된다.”

그리고 새벽이 오기 전, 가장 깊은 어둠이 먼저 그들에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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