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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66474660
· 쪽수 : 520쪽
책 소개
목차
서장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남은 이야기
작가 후기
참고 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아버님이 이리하라 널 사주하셨느냐?”
“싫습니다. 제가 싫습니다. 남의 인생을 살았다니 끔찍합니다. 이제는 제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가고 싶은 곳도 가보고 보고 싶은 곳도 보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단 말입니다.”
“예녹연!”
신우의 서슬 퍼런 꾸짖음에도 녹연은 발작하듯 대들었다.
“제가 왜 예씨입니까? 저도 모르는 제 성을 오라버니는 어찌 알고 계십니까?”
짓무른 눈가며 떨리는 손이며 상처받은 모습을 감추려고 독설을 해도 신우는 녹연의 그 모습이 더 안쓰러워 마음 한구석이 당겨 왔다.
“녹연아, 네 마음 아픈 것 모두 안다. 이 품에 안겨 밤새 운다 해도 내 꼼짝 않고 널 놓지 않을 것이니, 녹연아…….”
안으려는 신우의 손을 피하며 녹연은 냉정하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제는 애초부터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오라버니를 좋아하지만 오라버니를 오라버니라 좋아한 것인지 지아비로 좋아한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렀고 혼례일도 잡혔습니다. 어제는 제 처지가 너무나도 괴로워 죽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자고 나자 이상하게도 갑자기 홀가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라버니를 가족으로 사랑하였지, 남자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둔중한 것이 쿵 마음을 때렸다. 어찌나 야무지고 세찬지 순간적이나마 신우는 숨을 들이마셨다.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혹 본심이 얼마라도 담기지 않았을까 하는 사악한 의심이 올라왔다. 녹연을 향한 사랑이 때때로 소유욕으로 나타나 그녀의 날개를 꺾으려 하지 않았는가.
그 사랑이 무거울 수 있었겠지, 숨 막힐 수 있었겠지만. 입맞춤, 사랑하지 않으면 어찌 그리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네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네가 뭐라 하여도 우리는 부부가 될 것이다.”
“싫다 하지 않습니까, 이제 제발 놓아달라 하지 않습니까.”
야무진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신우의 살점을 도려냈다. 살이 낱낱이 뜯기고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잔인한 도륙은 멈추지 않았다.
“놓아요, 놓아요, 날 그냥 두라고요!”
악에 받친 녹연의 목소리에 신우는 김빠지듯 그녀를 놓아주었다.
“떠날 것입니다.”
뚝!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녹연은 몸부림쳤다. 울부짖으며 벗어나려 했다.
신우는 놓지 않았다. 더 짓밟고 탐했다. 첫날밤의 달콤한 고백과 부부됨의 신성한 의식을 고대했건만, 결국 고이 남겨두고 간직하고 참고 있었던 소중한 의식들을 교미에 미쳐 발광하는 미친 수컷처럼 쏟아 부으려 했다.
“떠날 수 있으면 떠나봐! 오늘밤 내 씨를 네 몸에 심을 것이니 떠날 수 있으면 떠나보란 말이다!”
갈구하고 갈구하던 욕구가 응집되어 터져 나오려 했다.
“저를 범하셔도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연의 곡조처럼 녹연의 목소리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