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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66476060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13-05-02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01. 헬퍼
02. 이상한 나라에서 날아온 힌트
03. 나비
04. 서툰 유혹
05. 사육 혹은 조련
06. 연애보다 더한 관계
07. 그 여자의 착각
08. 그 남자의 비밀
09. 연애보다 더한 집착
10. 폭풍의 밤
11. 계약종료
12. 누군가를 들여놓았던 빈자리에 대처하는 법
13. 사랑이거나, 아니거나
14. 할 필요 없는 말, 혹은 할 수 있는 말
15. 너와 함께 보낼, 아주 야한 시간들
에필로그 01.
에필로그 02.
작가 후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식사하세요.”
지수는 인상을 찡그리며 모니터 오른쪽 아래에 떠 있는 시계를 보았다. 오후 7시 10분, 페이지는 몇 장 넘어가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이다. 미치겠다. 마감은 다가오고 있는데 여주인공은 천하의 바보 멍텅구리다.
“지수 씨, 식사 시간이에요.”
그리고 문 앞에 다가온 수현이 똑똑 문을 두드리며 성마르게 보채고 있었다.
“잠깐만!”
지수는 모니터 위에 떠 있는 외계어를 일단 지웠다.
“지수 씨!”
“기다리라니까!”
보채는 수현에게 성질대로 버럭 소리를 질렀던 지수는 소리 없이 문이 열리는 순간 움찔했다.
이수현. 권지수에게 있어서 사랑은 아니지만 일상도 아닌 남자.
“밥 먹어요. 아니면 내가 먹을 거예요.”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하지만 지수는 수현이 식사 시간을 지키지 않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고 있다. 그는 이미 화가 많이 난 상태였다. 이쯤해서 항복 선언을 하고 가서 밥을 먹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사람이 언제나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 지금 일하잖아.”
지수는 풀리지 않는 작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수현에 대한 반항으로 표현했다. 너 따위가 뭘 알아. 아무것도 없는 A4지에 세계를 창조하고 생명을 불어넣어야 하는 내 마음을 네가 어떻게 알아.
부러 팽하니 몸을 돌려 그를 등지면서, 지수는 고집스럽게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노려보고 있으면 깜빡이는 저 커서가 절로 움직여 명문(名文)을 적어내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더운 입김이 귓가에 훅 끼쳐 온 것은 그때였다.
“찌개가 식으면 맛없다니까요.”
지수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등 뒤에서 팔을 둘러 지수의 가슴을 쥐고 주무르는 수현의 손을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찌개가 식는 거랑 내 가슴을 만지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밥 안 먹으면 내가 먹는다고 경고했지 않았나?”
수현의 입술이 지수의 귓불을 물고는 뜨거운 혀가 귓바퀴를 간질였다.
“그래, 당신이 먹어. 난 나중에 먹을…….”
지수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수현이 그녀의 겨드랑이 아래에 손을 집어넣어 일으켜 세우고는 의자를 치워버렸기 때문이다.
“수현 씨, ……아!”
항의하려 몸을 돌리던 지수는 수현이 등을 미는 바람에 균형을 잃고 책상 위에 두 손을 짚었다.
“난 밥이라고 말한 적 없어요.”
목덜미에 뜨거운 키스가 내려앉았다. 익숙한 남자의 체취와 호흡에 어느새 지수의 호흡이 가빠졌다.
“작업이 잘 안 풀려요?”
“……으응.”
“그래도 나쁜 아이……. 내가 밥은 제때 먹어야 한다고 했죠? 일이 안 풀리면 나에게 말하든지. 말도 안 하고, 밥도 안 먹고. 혼나야 해요.”
맞붙은 등과 가슴이 같은 속도로 오르내렸다. 마치 파도를 타는 것 같다.
“으응……,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지수는 몸서리쳤다.
“나쁜 아이예요.”
“으응. ……나쁜…….”
이제 그는 그녀의 허리를 잡고 있었다.
“또 밥 안 먹고 그럴 거예요?”
수현의 목소리에 묻은 흥분조차 섹시하다.
“아……니.”
복종할 수밖에 없어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고 싶어서 복종하는 기묘한 상황이다. 지수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항상 생각한다. 왜 이렇게 쉽게 흥분해버릴까? 권지수는 원래 이런 여자가 아닌데.
지금 이 상황은 권지수가 문제가 아니라 이수현이 문제인 거다.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될 거예요?”
“으응.”
스르르 허물어지는 지수의 몸을 받아 안은 수현이 쿡쿡 낮게 웃고는 조심스럽게 지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제 와서 밥 먹어요.”
옷도 다 입혀주고, 입도 다시 맞춘 수현이 빙글거리며 밥 이야기를 했다. 이것만 아니면 진짜 좋을 텐데. 가끔은 도대체 얘가 왜 이러나 싶을 정도였다. 얄미웠다. 아주 짧은 시간이 그 손아귀에서 요리된 입장에서는 이렇게 말짱한 얼굴로 밥 이야기를 하면 화가 난다.
하기야 밥도 거부하면서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지수의 프로의식이라면, 밥에 집착하는 것이 수현의 프로의식일지도 모른다.
뭐라고 해도 이수현은 가정부니까 말이다.
“국 다시 데울 테니까 5분 안에 나오는 거예요.”
싱긋 웃고 돌아서는 수현은 언제나처럼 단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