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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66550548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15-06-15
책 소개
목차
귀양풀이........................007
망각의 곡선...................029
물음표의 사슬................055
감격 시대......................073
비망록..........................105
설문대 할망의 후예들.....129
잃어버린 초상(肖像).......151
얼굴 없는 사람들...........171
낫과 망치.....................189
작은 모스크바...............209
발문
수난(受難)과신원(伸寃)/김승립(시인, 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 무렵의 제주섬은 아수라장이었다. 낮과 밤이 없는 혼돈 그 자체였다. 낮에는 태양이 보이지 않고, 밤에는 달과 별이 없는 전설 속의 암흑 지대였다. 생인과 저승차사가 뒤죽박죽인 난장판이었다. 하루하루가 지상의 종말이었다. 하루살이 같은 목숨이었다. 총성과 산불 같은 불더미의 공포 속에서 나날이 숨고, 도망치고, 꼬꾸라지고, 술래에게 잡혀 죽는 숨바꼭질로 채워졌다. 섬 전체가 토네이도의 먹구름 기둥이었다. 염라대왕 같은 미군정, 저승차사 같은 군인과 경찰, 그리고 서북청년단이 생사여탈을 좌지우지했다.
-「설문대 할망의 후예들」 중에서
어느 마을에선가는, 주민들을 향사 마당에 모아 놓고, 청년들 명단을 호명해 나가는데, 한 젊은이가 ‘그 사름 우리 성[형]이우다.’ 하며 손을 들었다가 끌려가 죽었고, 또 한 사람에게는 토벌대 진입을 감시하는 보초를 서 봤냐는 뜻으로 ‘너 빗개 서 봤지?’ 하고 추궁하자, 바당에 사는 ‘비께[두툽상어]’를 먹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 줄로 착각해서 ‘예, 비께 먹어 봤수다!’ 하는 바람에 잡혀가 행불 상태이고, 그런가 하면, 한림면 어느 중간산 마을에서는, 도새기 불을 까려고 돔베칼을 씬돌[숫돌]에 갈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토벌군에게 붙들려가 총살당하기도 했다는데…….
-「비망록」 중에서
닭 수십 마리와 암컷과 수컷 돼지 서너 마리를 5일장에서 사들였다. 텃밭에 접한, 잡목이 우거진 자투리 공간에서 사육하기 시작했다. 외삼촌 집은 갑자기 양계장과 양돈장, 밀도살장으로 변했다. 도새기 것[먹이]은 마을에 단 하나 있는 식당에서 나오는 구정물로 충당했다. 닭은 두어 달, 돼지는 6, 7개월이 지나면 잡아먹을 수 있었다.
검둥개인 경찰과 누렁개인 군인, 도깨비 같은 산사람[무장대] 모두 무서운 세상이 돼 갔다. 마을 사람들이 도둑고양이로 돌변해 갔다. 당신 남편 어디 갔어? 당신 아들 산에 갔지? 하며 취조를 받은 사람은 빨갱이 가족으로 낙인찍혔다. 토벌대의 손가락과 입이 곧 법전이었다.
외삼촌은 한 달에 한두 번은 돼지를 잡거나 닭을 잡아 토벌군을 초청하여 잔칫날 같은 술판을 벌였다. 그럴 때마다 외삼촌은 아버지를 불러들여 닭과 돼지를 잡는 피젱이[백정] 노릇을 하게 했다. 나도 돔베칼[도마칼]을 숫돌에 벼려 가며 닭의 배를 가르고, 돼지를 부위별로 도려내는 일을 거들었다. 전각, 갈리, 좁짝배, 갈리, 일룬, 숭, 비피, 목도래기…….
-「얼굴 없는 사람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