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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한국사회비평/칼럼
· ISBN : 9788966550715
· 쪽수 : 316쪽
책 소개
목차
기획의 말_4
여는글
2016년 시민항쟁을 통해 상상하는 새로운 민주주의(하승우)_10
시
광장은 비어 있다(백무산)_26
첫째 장, 몸으로 써내려가는 희망의 시
아래로, 더 아래로(한하늘)_35
노동자들, 촛불과 만나다(고동민)_41
광장의 페미니스트, ‘함께’와 ‘우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다(나영)_62
백남기가 넘겨주고 간 촛불광장(전희식)_82
선생님, 다녀오셨어요(권혁소)_100
우리 길은 광장에서 시작된다(김해원)_117
둘째 장,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발명되는 것
저항의 섬 제주에서 밝힌 촛불(김동현)_137
몸으로 새긴 역사의 기록(조성국)_157
2016년 촛불 항쟁(배길남)_171
민주주의는 기성품이 아니다(노태맹)_193
촛불은 우리를 함께하게 했다(문주현)_211
나쁜 국민들이 밝힌, 반칙사회(김희정)_225
셋째 장, 촛불이 횃불 되어
류성환/김성수/권용택/ 이종구/ 이인철/ 임옥상/ 이하/ 김병호/ 차규선/ 홍성담_249
부록
시국선언문_ 266
시국선언 명단_ 306
리뷰
책속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목소리를 낸다면 그때야말로 집단지성이 발휘되고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나올 수 있다. 누구나 접근하려고 하면 많은 정보들에 접근할 수 있고 또 자기 능력을 발휘해 그런 정보들을 가공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소통보다 주로 논쟁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지만 온라인
역시 시민들에게 매우 중요한 광장이다. 지금 시민들에게 필요한 건 ‘지도(指導)’가 아니라 길을 찾아 나설 ‘지도(地圖)’이다. 시민들의 발로 그린 지도는 싸움의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런 지도 없이는 광장이 촛불에게 좋은 공간이 되기 어렵다. 저들이 만든 공간, 저들이 짜놓은 규칙 속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바리케이드를 쌓아야 그 역량이 증가할 수 있다. 스펙터클한 광장에서 촛불의 역량은 제한된다. 세를 과시하기 위해 광장으로의 소집이 필요하지만 구체적인 정치는 광장 안과 밖에서 동시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하승우,「2016년 시민항쟁을 통해 상상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중에서
촛불은 계속 타올라야 한다. 하지만 경찰들이 정해 놓은 폴리스 라인 안에서, 법원이 지정해주는 집회 공간 안에서, 보수 언론이 상찬하는 평화 프레임 안에서의 환호와 함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혹은 상대를 놀라게 하고 싶으면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로 가서는 곤란하다. 화염병을 던지자거나, 쇠파이프를 들자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럴 만한 상황이 생긴다면 주저하지 않는 것이 이 싸움의 열쇠라는 생각 또한 동의한다. 박근혜 너머를 고민하는 기득권 세력에겐 촛불의 민심이 언제 평화집회 프레임에서 벗어날지가 진짜 공포니까 말이다. 하지만 광장의 정치에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서로 토론하고 존중하고 규율을 세우는 것 또한 여전히 중요하다. 광장에 모여야 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린 그 시간들을 잘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
_고동민, 「노동자들, 촛불과 만나다」 중에서
가부장적 권력 집단의 카르텔이 주도하는 이 체제는 ‘시민의 자격’을 끊임없이 나누고, 그럼으로써 위계를 다시 공고히 한다. 여성, 장애인, 청소년, 노인, 성소수자 등이 놓여 있는 위치를 성찰하는 것은 곧 이 체제에서 우리 각자가 놓인 위치들을 다시 확인하는 작업이다. 길들여지고, 복종하는, 그리고 다른 이들을 다시 배제하거나 차별함으로써 그 위계를 스스로 다시 만드는 위치에 남아있지 않으려면 우리는 이제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이 지긋지긋한 개발 중심의 패러다임도 박근혜 정권과 함께 끝낼 수 있다. 더 이상 개발의 뒷전으로 권리와 평등이 밀려나는 시대를 만들지 말자. 지난 2개월 여, 페미니스트들이 광장에서 외쳤던 “여성혐오와 민주주의는 함께 갈 수 없다!”는 구호에 담긴 의미가 새로운 세상을 향한 방향으로 보다 많은 이들에게 가 닿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_나영,「광장의 페미니스트,‘ 함께’와‘ 우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다」 중에서
사드에 대한 반대가 성주에서 정치를 형성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서 성주가 평화와 민주주의의 모범으로 보여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 정치를 시민권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광장에서, 무식할 거라고 생각했던 할머니들이나 허름한 시골 농부들이 어눌하지만 너무도 감동적인 연설을 하는 것을 보아 왔다. 철학자 랑시에르가 말한 ‘몫 없는 자’들 혹은 ‘입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우리는 들었던 것이다. 정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말할 수 있게, 말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들이 그들 스스로의 불복종을 들고 따져 물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만이 민주주의가 형식적 틀을 깨고 새로이 태어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_노태맹, 「민주주의는 기성품이 아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