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대한계년사

대한계년사 (천줄읽기)

정교 (지은이), 이계형 (옮긴이)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2012-10-31
  |  
28,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알라딘 26,600원 -5% 0원 1,400원 25,200원 >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인터파크 로딩중
11st 로딩중
G마켓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aladin 22,400원 -10% 1120원 19,040원 >

책 이미지

대한계년사

책 정보

· 제목 : 대한계년사 (천줄읽기)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근대개화기
· ISBN : 9788966805709
· 쪽수 : 538쪽

책 소개

고종 1년부터 대한제국 멸망까지 조선 시대 말년의 역사를 다룬다. 당대 지식인 정교가 <관보>, 신문류, 각종 상소, 주한 외국 공사관의 기록 등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비판적 관점에서 기록한, 격동하는 당시 사회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다.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권1
권2
권3 상
권3 하
권4 상
권4 하
권5
권6
권7

옮긴이에 대해

저자소개

정교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56년 7월 8일 서울에서 태어났고 1925년 3월 15일 이리(현 익산)에서 사망했다. 당시는 전통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근대 질서가 잡혀 가는 전환기였고 외세의 침략에 위협받고 결국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겨 가던 시기로, 그는 충군애국을 실천하려는 삶을 살았다. 그는 갑오개혁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된 이후 1894년 8월 제1차 김홍집 내각의 궁내부 주사에 임명되었다. 1895년 4월 수원 판관을 거쳐 7월에 황해도 장연 군수에 임명되었지만, 1895년 10월 을미사변이 발발하자 사임했다. 그는 외세에 자주독립 국가가 흔들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조선이 나아갈 방향을 고민했으며, 그 결과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 참가해 자주독립과 자유 민권을 외쳤다.
펼치기
이계형 (옮긴이)    정보 더보기
국민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문학박사)를 받았다. 국민대학교, 중앙대학교, 가천대학교 등에서 강의했으며 친일진상규명위원회·대한민국역사박물관건립추진단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숫자조선연구, 식민지 조선인의 삶』(2014), 『한국근대사』(2018), 『최현배(우리 말글을 목숨처럼 지킨)』(2019), 『한 줄로 읽는 한국근대사 연표 1863-1945』(2020), 『한말 ‘한일조약’ 체결의 불법성과 원천 무효』(2021), 『한 줄로 읽는 한국현대사 연표 1945-2020』(2021), 『끝내지 못한 독립운동가 이야기, 최명식 회고록』(2022) 등이 있다.
펼치기

책속에서

“나라가 나라답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자립해 다른 나라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고, 자기 힘으로 학문을 닦아 한 나라의 정치와 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 145쪽 ‘독립협회 회원들이 상소하다’ 中


그는 자기의 옛 주인 민영환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종로로 가서 통곡하다가 귀가하여 종일 목 놓아 큰 소리로 울었다. 인력거를 끌어내 이를 세 준 주인 김 참령 집 안에 넣어 놓고, 그날 밤 경우궁 뒷산 기슭 소나무에 목을 메달아 죽었다.
- 374쪽 ‘인력거꾼이 자살하다’ 中


재판장은 “본국을 떠난 후 3년 동안 무슨 일을 했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떳떳하게 “내가 목적한 것을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 첫째는 해외 동포들을 교육하는 것이고, 둘째는 의병을 일으키는 것이었다”라고 대답했다. 또 재판장이 “독립사상이 언제부터 일었는가?”라고 묻자, 안중근은 “몇 년 전부터 독립사상을 품었다”라고 대답하고, 이어 힘찬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러일전쟁 당시 일본 천황 폐하의 선전 조칙 중에 ‘한국의 독립을 돕고 동양 평화를 유지한다’는 말이 있었다. 한국의 일반 백성들은 감격해 일본군의 승리를 축원했다. 수천 리 먼 길을 군량과 무기를 나르고 도로와 교량을 닦고 만들었다. 일본과 러시아의 강화가 성립된 결과 일본군이 개선하자 한국인들은 마치 자기 나라 군대가 개선해 돌아온 것처럼 환영하며 한국의 독립이 확고하게 되었다고 확신했다.
뜻밖에도 1905년 11월 이토 히로부미가 대사로서 한국에 와 많은 금액을 나라의 역적 일진회 두령 몇 명에게 주고는 그들을 사주해 소위 ‘선언흉서(宣言凶書)’를 발표케 하고, 또한 병력으로 황실과 정부를 위협하며 ‘5조약’을 제창했다. 우리 황제 폐하께서는 재가치 않으셨고 참정대신 또한 조인치 않았다. 다만 세상에서 소위 ‘오적’이라 일컫는 다섯 명의 대신만이 날인한 것이기 때문에 이는 무효인 조약인데 온전히 성립되었다고 칭하고 당당히 우리 대한제국의 국권을 박탈했다. 4000년 국가와 2000만 백성들은 어육(魚肉)의 신세가 되었는데 어찌 분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474~475쪽 ‘안중근이 합이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다’ 中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