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아일랜드소설
· ISBN : 9788968176906
· 쪽수 : 336쪽
· 출판일 : 2018-11-10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7
자매들 25
우연한 만남 41
애러비 55
이블린 66
자동차 경주가 끝나고 난 뒤 75
두 건달들 85
하숙집 102
작은 구름 114
대응 137
진흙 덩어리 155
어떤 가슴 아픈 사건 166
선거 사무실에서 맞은 파넬 기념일 181
어떤 어머니 208
은총 227
죽은 사람들 263
책속에서
이번에는 신부님이 살아나실 가망이 없었다. 벌써 세 번째 발작이었기 때문이었다. 매일 밤 나는 신부님 집을 지나칠 때마다(방학이었기에) 촛불이 켜진 네모난 창문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그때마다 유리창을 통해 희미하고 은은한 빛이 변함없이 새어 나오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 나는 시신 머리맡에 촛불 두 자루를 켜놓는 관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 신부님이 돌아가셨다면 어두운 블라인드 창에 촛불 두 개가 아른거릴 것이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신부님이 이따금씩 “이제 나는 살날이 얼마 안남은 것 같구나”라고 말씀하실 때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제 보니 신부님의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나보다. 매일 밤 나는 신부님이 누워 계신 방의 유리 창문을 바라보며, ‘마비’라는 단어를 나직이 중얼거렸다. 내 귀에 그 단어는 유클리드 기하학 용어인 ‘노먼’이나 교리 문답서에 나오는 ‘성직매매’라는 단어처럼 항상 생경하게 들렸다. 그러나 이제 나에게 ‘마비’라는 단어는 ‘나쁜 짓을 일삼는 어떤 죄 많은 존재’의 이름처럼 들렸고, 그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그 존재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그것이 저지른 치명적인 행위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도 했다.
내가 저녁을 먹으러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코터 영감이 담배를 피우며 난롯가에 앉아있었다. 숙모가 내가 먹을 오트밀 죽을 푸는 동안, 코터 영감은 내가 내려오기 전까지 하던 말을 계속한다는 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