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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 속으로

가을빛 속으로

샬럿 퍼킨스 길먼, 에밀 졸라, 버지니아 울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제임스 조이스, 세라 온 주잇, 기 드 모파상, 에드워드 페이슨 로,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은이), 정회성, 이하영, 지선유, 김유안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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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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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가을빛 속으로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99097964
· 쪽수 : 236쪽
· 출판일 : 2025-10-31

책 소개

《봄볕 아래에서》, 《여름 언덕에서》에 이어 사계를 완성해 가는 세계 문학 단편선의 세 번째 책이다. 에밀 졸라, 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 세계 문학사의 거장들이 그려낸 가을의 풍경을 한데 엮었다.

목차

세 번의 추수감사절 ⦁ 샬럿 퍼킨스 길먼
장 구르동의 가을 ⦁ 에밀 졸라
함께 그리고 따로 ⦁ 버지니아 울프
가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비통한 사건 ⦁ 제임스 조이스
여왕의 쌍둥이 ⦁ 세라 온 주잇
후회 ⦁ 기 드 모파상
세 번의 입맞춤 ⦁ 에드워드 페이슨 로
사흘간의 폭풍 ⦁ 어니스트 헤밍웨이

저자소개

버지니아 울프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와 함께 ‘의식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소설 형식을 시도하고 완성한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188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20세기 문화,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울프는 여성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서재를 드나들며 자유롭게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1904년 『가디언』지에 익명으로 서평과 에세이를 기고하면서 문학계에 발을 디딘 그녀는 곧이어 사회 전반에도 관심을 보여 1910년에 여성 참정권 운동에 자원하기도 했다. 1917년에는 남편 레너드와 함께 호가스 출판사를 설립하여 자신의 작품뿐 아니라 T. S. 엘리엇, 캐서린 맨스필드, 지크문트 프로이트 등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저자의 도서를 펴냈다. 1935년에는 독일과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유럽의 파시즘과 영국 내 군국주의에 의한 가부장제를 보고, 반전·반제·반파시즘적인 페미니스트 시각과 통찰을 담아내기 위해 ‘소설-에세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도전하기도 했다. 울프는 평생 조울증, 두통, 환청 등 다양한 육체적·정신적 질병과 싸웠는데 이는 그녀의 문학적 자양분이 되었으나, 동시에 작가 자신의 영혼을 파괴해 갔다. 결국 세 차례의 자살 시도 끝에 1941년 3월 28일, 레너드에게 작별 편지를 남기고 우즈강으로 걸어 들어가 생을 마감했다. 주요 작품으로 『출항』, 『등대로』, 『올랜도』, 『자기만의 방』, 『파도』, 『세월』, 『막간』 등이 있다. 『댈러웨이 부인』은 1923년 6월의 어느 화창한 하루 런던을 배경으로, 저녁에 열릴 파티를 준비하는 정치가의 아내 클라리사 댈러웨이와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뒤 외상 후 스트레스로 치료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셉티머스 워런 스미스가 이야기의 두 축을 이루고 있다. 다양한 계급·연령·국적의 인물이 어우러져 다층적인 서사를 만들어 낸 이 작품은 오늘날 울프의 문학 세계를 대표하는 소설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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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퍼킨스 길먼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주장했던 페미니스트이자 사회 개혁가. 1860년 7월 3일, 코네티컷 하트퍼드에서 태어난 길먼은 친척 집을 전전하는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정규 교육은 4년밖에 받지 못해서 주로 독학으로 공부했고, 대학을 다닐 때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명함 화가, 가정 교사 등 다양한 일을 했다. 1884년에 예술가 찰스 월터 스테트슨을 만나 결혼했고, 다음 해 딸을 낳고 몇 년간 심각한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휴식 요법’을 처방받아 지적 활동을 제한당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월간 문학 잡지인 <뉴 잉글랜드 매거진> 1월 호에 단편 소설 <누런 벽지(The Yellow Wallpaper)>를 실었다. 1894년에 남편과 공식적으로 이혼한 후 딸과 함께 캘리포니아 패서디나로 가서 왕성한 저술 활동을 시작하며 사회 개혁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896년에는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국 여성 참정권 협회의 대회와 영국 런던에서 열린 국제 사회주의 노동자 회의 모두 캘리포니아 대표로 참가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단편 소설 <누런 벽지>, 여성은 경제적 자유를 확보해야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 논문 <여성과 경제(Women and Economics)>, 페미니즘 유토피아를 다룬 장편 소설 <허랜드(Herland)>가 있다. 1909년에는 월간 잡지 <선구자(The Forerunner)>를 창간하여 사설, 비평, 서평, 시, 단편 소설, 장편 소설 등 다양한 글을 썼다. 《내가 마녀였을 때》에 실린 작품들 또한 모두 <선구자>에 실린 작품이다. 1932년 1월, 길먼은 말기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불치의 환자에 대한 안락사 옹호자였던 그는 그로부터 3년 후 1935년 8월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어 75세에 생을 마감했다. 1960년대 여성 운동이 등장하며 길먼의 작품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3년 시에나 연구 기관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6위에 선정됐고, 1994년에는 미국 여성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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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40년 4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인 어머니와 이탈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에밀 졸라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던 것 같다. 학교에서의 성적은 들쑥날쑥했고, 공부보다는 친구와 놀기를 좋아했으니 말이다. 훗날 인상주의 화가로서 크게 유명해지는 폴 세잔(Paul Cézanne)은 당시에 그와 가장 친했던 친구였다. 점점 심해지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에밀의 어머니는 파리로 이사하기로 결심한다. 1858년 파리로 상경한 에밀 졸라는 그의 지역 사투리 때문에 학교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에밀 졸라는 그다음 해에 본 자연계 대학 입학시험에 실패했다. 같은 해인 1859년 11월, 그는 프랑스 남부의 마르세유(Marseille)로 가서 다시 입학시험에 응시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크게 낙심한 어머니는 그가 일자리를 찾도록 했다. 주변의 도움으로 세관의 말단직에 취직했으나 그가 받는 급여로는 집안의 생계를 제대로 꾸려갈 수가 없었다. 그는 좀 더 나은 직업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렇게 2년을 고생한 끝에 아셰트(Hachette) 출판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출판사의 일은 그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이 시기에 그는 많은 책을 접하면서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문학적 재능에 신뢰를 갖기 시작했던 것이다. 24세부터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1865년 생리학자 클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의 저서 《실험 의학 개론(Introduction à la Médecine expérimentale)》에 심취한다. 이때부터 에밀 졸라는 정신에 미치는 육체의 영향과 유전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그의 대표작 《루공ᐨ마카르 총서, 제2제정 시대 어느 집안의 자연적·사회적 역사(Rougon-Macquart, Histoire na- turelle et sociale d’une famille sous le Second Empire)》는 바로 이 문제를 증명하기 위해서 집필된 실험소설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는 자연주의의 대표적 주자로 평가되고 있으며, 이 작품집의 제7권인 《목로주점(L’Asso- mmoir)》과 제13권인 《제르미날(Germinal)》은 자연주의 소설의 정수로 알려져 있다. 에밀 졸라는 귀족적이기보다는 서민적이며, 그래서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투쟁을 벌인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특히 ‘드레퓌스 사건(l’affaire Dreyfus)’과 관련하여, 1898년 1월 13일 〈로로르(L’Aurore)〉 신문에 〈나는 고발한다(J’accuse)〉라는 제목으로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 형식의 논설 기고문을 발표해 프랑스 사회가 정의와 진실, 그리고 인권 옹호의 문제를 인식하도록 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생전에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드레퓌스 사건의 부당성에 대한 기고문을 발표한 직후, 그는 프랑스 육군 참모본부에 의해 명예훼손죄로 기소되어 징역 1년에 3000프랑의 벌금을 내라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항소했고, 그해 4월 2일 고등법원은 그에 대한 유죄판결을 기각했다. 프랑스 육군 역시 고등법원의 판결에 항소했다. 에밀 졸라는 새로운 재판이 열리기 전에 변호사와 친구들의 충고에 따라 영국으로 도망을 쳐야 했다. 1899년 6월 5일 드레퓌스 대위가 대통령 특사로 석방되면서 에밀 졸라도 영국에서 프랑스로 귀국했다. 그는 다시 활동을 재개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1902년 9월 29일 밤 뜻밖의 사고가 발생했다. 메당(Médan)의 별장에서 여름을 보내고 파리의 아파트로 돌아온 에밀 졸라 부부는 몇 달째 비워두었던 집 안이 눅눅하다고 느꼈다. 그들은 난로를 피우고 식사를 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한밤중에 마담 졸라는 몸에 이상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머리가 무겁고 속이 메스꺼웠다. 난로에서 발생한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에밀 졸라 역시 동일한 증세로 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구조를 요청할 힘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아홉 시경 아무런 기척이 없던 방문을 하인들이 열고 들어왔다. 그들은 이미 죽어 있는 에밀 졸라와 실신한 그의 아내를 발견했다. 당시 62세였던 에밀 졸라는 이렇게 어이없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1902년 10월 5일 일요일, 그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졌으며, 그로부터 6년 뒤인 1908년 6월 6일, 그의 유해는 프랑스의 위인들이 안치되어 있는 팡테옹 신전(le Panthéon)으로 옮겨졌다. 이제 그는 프랑스의 영원한 지성으로 기억되며 존경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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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82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태어나, 예수회 학교들과 더블린의 유니버시티 칼리지(UCD)에서 교육을 받았다. 대학에서 그는 철학과 언어를 공부했으며, 대학생이던 1900년, 입센의 마지막 연극에 관해 쓴 긴 논문이 《포트나이틀리 리뷰》지에 발표되었다. 당시 그는 서정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는 나중에 《실내악》이란 시집으로 출판되었다. 1902년 조이스는 더블린을 떠나 파리로 향했으나, 이듬해 어머니의 임종으로 잠시 귀국했다. 1904년 그는 노라 바너클이란 처녀와 함께 다시 대륙으로 떠났다. 그들은 1931년 정식으로 결혼했다. 1905년부터 1915년까지 그들은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에 함께 살았으며, 조이스는 그곳의 벨리츠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1909년과 1912년, 그는 《더블린 사람들》의 출판을 위해 아일랜드를 방문했다. 이 작품은 1914년 영국에서 마침내 출판되었다. 1915년 한 해 동안 조이스는 그의 유일한 희곡 《망명자들》을 썼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1916년에 출판되었다. 같은 해 조이스와 그의 가족은 스위스의 취리히로 이사했으며, 조이스가 《율리시스》를 작업하는 동안 그들은 심한 재정적 빈곤을 겪어야 했다. 이 작품은 미국의 잡지 《리틀 리뷰》지에 연재되었다. 연재는 1918년에 시작되었으나, 작품에 대한 외설 시비와 그에 따른 연재 중지 판결로 1920년에 중단되었다. 《율리시스》는 1922년 파리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으며, 조이스 가족은 양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그곳에 체류했다. 1939년에 《피네간의 경야》가 출판되었고, 이어 조이스 가족은 스위스로 되돌아갔다. 두 달 뒤, 1941년 1월에 조이스는 장궤양으로 사망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초고의 일부인 《영웅 스티븐》이 1944년 저자 사후에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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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현재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를 두었고, 여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평생을 낚시와 사냥, 투우 등에 집착했으며, 다방면에 걸쳐 맹렬한 행동을 추구하고, 행동의 세계를 통해 자아의 확대를 성취하려 했다. 그러한 인생관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고등학생 때 학교 주간지 편집을 맡아 직접 기사와 단편을 썼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17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하기도 했으며,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고 귀국했다. 휴전 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의 특파원이 되어 유럽 각지를 돌며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1921년, 해외 특파원으로 건너간 파리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 유명 작가들과 교유하는 등 근대주의적 작가들과 미술가들과 어울리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23년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詩)』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시대에』, 『봄의 분류(奔流)』,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소설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후 1920년대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피츠제럴드’와 ‘포그너’와 함께 3대 작가로 성장하였다. 그의 첫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1926년에 발표했는데, 헤밍웨이의 대다수 작품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에 발표되었다. 전쟁 중 나누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전쟁문학의 걸작 『무기여 잘 있거라』(1929)는 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데 공헌했으며, 1936년 『킬리만자로의 눈』,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는 출판되자마자 수십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다. 이후 10년 만에 소설 한 편을 발표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52년 인간의 희망과 불굴의 정신을 풀어낸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여 큰 찬사를 받았으며,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이 해에 두 번의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데, 말년에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집필 활동도 막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동의 규범에 철저한 만큼이나 죽음과 대결하는 삶의 성실성과 숭고함을 작품에 투영하려 노력해왔다. 1959년에는 아이다호 주로 거처를 옮겼고, 1961년 여름, 헤밍웨이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1961년 케첨의 자택에서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작으로는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52년 『노인과 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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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50년 프랑스 항구도시 디에프 근처 미로메닐 성城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별거 이후 에트르타에 있는 어머니의 별장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이때 경험한 노르망디의 대자연, 시골 사람들의 성정과 습성 등은 그의 작품의 배경과 소재로 자주 나타난다. 고등학교 시절, 작가로서의 삶에 사표가 된 두 명의 스승, 시인 루이 부예와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를 만난다. 1869년부터 파리 법과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지만, 이듬해 프로이센과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군대에 징집되어 학업을 중단한다. 1871년 7월에 제대하여 1872년 3월 아버지의 소개로 해군성에 취직한다. 1880년 모파상은 에밀 졸라 등과 함께 소설집 『메당의 저녁Les Soirees de Medan』을 출판하고, 여기 수록된 「비곗덩어리」가 프랑스 문단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890년까지 10년 동안 300여 편에 이르는 중·단편과 6편의 장편, 5편의 희곡 등을 창작하며 플로베르, 졸라와 더불어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 10년은 육체와 정신의 병이 심각하게 나빠진 시기로, 그는 척추 통증과 시력 저하, 불면증 등 갖가지 질병에 시달렸다. 몇 번의 자살 기도 이후 1892년 파리 교외의 정신병원에 보내진 뒤 그곳에서 거의 혼수상태로 지내다가 1893년 7월 6일 생을 마감했다. 사진출처 -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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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온 주잇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49년 미국 메인주 사우스버윅에서 태어났다. 의사인 아버지가 어부들과 농부들을 왕진할 때 따라다니며 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체험했고, 어린 시절 류머티즘성관절염 진단을 받아 자주 산책해야 했는데 그때 고향에 애정을 갖게 되었다. 주로 메인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기대 많은 작품을 남긴 주잇은 당대 최고의 지역주의 소설가였다. 대표작인 《뾰족한 전나무의 땅》(1896)은 살아가는 지역이 길러내는 사람들과 그들이 이룬 공동체, 그리고 밀려오는 시간에 완만히 퇴적되는 곡진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어슐러 K. 르 귄이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리듬”이라며 극찬했고 윌라 캐더는 ‘미국 문학의 3대 걸작’이라 한 뒤 직접 편집까지 맡았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는 《디프헤이븐》(1877), 《시골 의사》(1884), 《백로》(1886) 등이 있다. 주잇은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가까운 여성들과 동반자적 관계를 맺으며 살았다. 특히 보스턴에서 문학 살롱을 개최하던 애니 필즈와 각별했으며 둘은 헨리 제임스의 《보스턴 사람들》 집필에 영감을준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한 주잇은 캐더의 모든 초기작을 세심히 읽어주며 소설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1902년 불의의 마차 사고로 큰 부상을 당해 작가로서의 경력이 사실상 끝났고 1909년 몇 차례 뇌졸중을 겪은 후 사우스버윅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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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2년 일본 도쿄의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1913년 도쿄제국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14년 기쿠치 간, 구메 마사오 등과 함께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하고 〈라쇼몬〉, 〈코〉 등을 발표했는데, 〈코〉가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극찬을 받으면서 문단에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합리주의와 예술지상주의의 작풍으로 시대를 풍미했으나 말년에는 자신의 삶을 조롱하는 자조적인 작품들을 많이 썼다. 서른다섯 살 되던 해인 1927년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은 일본 근대사에서 관동대지진과 견줄 만큼의 사회적 충격이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1935년 일본 출판사 문예춘추의 사주이자 아쿠타가와의 친구였던 기쿠치 간이 아쿠타가와 상을 제정, 현재까지도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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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다른 책 >
에드워드 페이슨 로 (지은이)    정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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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성 (옮긴이)    정보 더보기
도쿄대학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하고, 인하대학교 영미유럽인문융합학부에서 번역을 가르치고 있다. 『피그맨』으로 2012년 IBBY(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아너리스트 번역 부문 상을 받았다. 옮긴 책으로 『지구에 온 너에게』, 『언덕 너머 집』, 『아놀드 로벨 우화집』, 『폴라 익스프레스』, 『이름 없는 남자』, 『페퍼와 나』, 『모두의 고양이』 등이 있으며, 쓴 책으로 『책 읽어주는 로봇』, 『내 친구 이크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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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영 (옮긴이)    정보 더보기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프랑스에서 불어를 공부했다. 편집자로 일하다 세계 고전 문학 시리즈를 만들며 고전의 매력에 빠졌다. 지금은 프랑스 책을 소개하고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어린 왕자》, 《봄볕 아래에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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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안 (옮긴이)    정보 더보기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여러 책을 만들었다. 지금은 문학, 특히 고전문학을 읽고 번역하며 문장의 깊이를 음미하는 시간을 즐긴다. 그렇게 마음에 남은 문장들을 모아 《고전의 속삭임》을 엮었고 옮긴 책으로는 《여름 언덕에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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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블레이크 부인은 자신이 헌신하고 있는 일과 그것이 여성 단체들의 도움으로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녀는 각 지역의 여성 클럽과 그 모임들이 만들어 내는 활력 그리고 여성들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모습을 열정적으로 묘사했다. 그녀의 말은 설득력 있고 감동적이었으며, 무엇보다 듣는 이들의 마음을 환하게 밝히는 힘이 있었다.
_<세 번의 추수감사절>, 샬럿 퍼킨스 길먼


그래, 이제 너는 가을에 이르렀구나. 일을 했고 그 결실을 거두고 있지. 사람도 이 땅을 닮은 존재란다. 대지가 생명을 낳고 이어가듯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마른 잎에서 다시 푸른 잎이 돋아나듯, 나는 네 안에서 다시 태어나고, 너도 네 아이들 속에서 다시 태어날 거야. 내가 이 말을 하는 건, 늙음이 너를 두렵게 하지 않기를 바라서란다. 저 푸른 잎사귀들이 내년 봄, 자신이 떨군 씨앗에서 다시 돋아나듯, 너도 그렇게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길 바란다.
_<장 구르동의 가을>, 에밀 졸라


무엇보다도 인간의 교류만큼 기묘한 일은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것은 끊임없이 변하고 터무니없이 비이성적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혐오였던 감정이 이제는 가장 강렬하고 황홀한 사랑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순간, 그녀는 곧장 그것을 거부했다. 마음이란 얼마나 모호한가. 이 놀라운 인식들, 고통과 기쁨이 교차하는 이 감정을 표현할 단어가 고작 몇 개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그렇다면 이 감정을 무엇이라 불러야 한단 말인가.
_<함께 그리고 따로>, 버지니아 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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