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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88968334757
· 쪽수 : 228쪽
· 출판일 : 2024-08-22
책 소개
목차
시작하며_ 역사에 상상력을 더하는 기록 한 줄, 유물 몇 점
1부 불편한 고대사
1. 신라 시대 성골과 진골의 진짜 차이는?
2. <춘향전>의 원전은 누구의 어떤 이야기일까?
3. 한반도 최대·최고의 저수지와 임나일본부설
4. 고구려의 땅 무려라에 대하여
5. 백제 멸망의 순간, 민족의 반역자 예식진
6. 백제·고구려의 유민일까? 라후 부족의 슬픈 이야기
7. 아프간 와칸 회랑을 뚫다, 고구려의 후예 고선지
8. 발해 문왕의 대당 정치 공작? 안녹산의 난 파헤치기
9. 세 번째 고구려, 이정기의 왕국 제나라를 아는가
2부 불편한 고려사
10. 궁예의 철원 vs 왕건의 개성
11. 윤관 장군의 공험진과 동북 9성, 그리고 연해주?
12. 몽골이 불태운 황룡사 9층 목탑, 그에 맞선 팔만대장경
13. 조선 왕조 시작의 계기가 위화도 회군만이 아니다?
14. 공자의 유학 vs 한무제의 유교 vs 주자의 성리학
3부 불편한 조선사
15. 세조의 칼날에 맞선 순흥 안씨의 비극
16. 조선의 천재 율곡 이이, 10만 양병설의 시작
17. 녹봉 이외의 재산을 취하지 않겠노라, 작은 거인 오리 이원익
18. 임진왜란을 눈치채고 알려 준 태국 국왕이 있었다?
19. 임진왜란 바로 그때, 조선을 덮친 대기근
20. 전하, 이순신은 역적이 아니라 충신이옵니다
21. 하늘을 날아서 진주성의 왜놈들을 무찌르다!
22. 조선 최고의 개혁 대동법의 시작 이원익, 완성자 김육
23. 청나라로 팔려 간 조선의 가짜 공주
24. 장희빈은 정말 희대의 악녀였을까?
25. 인현왕후의 오빠 민진원, 대규모 간척 사업을 일으키다
26. 게장과 감, 같이 먹으면 독약인가? 경종의 죽음 미스터리
27. 대자보와 답안지에 분노한 영조, 나주 괘서 사건과 토역 경과
28. 영조는 왜 술을 빚지도 먹지도 못하게 했을까?
29. 정조 이산은 왜 아버지의 능을 옮겼나
30. 조선 궁궐사 최악의 남매는?
31. 어머니를 향한 정조의 마음과 김홍도의 후불탱화
32. 정조 이산이 읽고 통곡한 책은?
33. 나주 기생과 신 안동 김씨가 합작한 최악의 매관매직 사태
34. 변학도의 생일잔치에서 읊은 이몽룡의 한시, 그 카타르시스
35. 15세에 마카오 유학길에 오른 신학생 김대건을 맞아 준 이는?
36. 19세기 조선에 들끓었던 콜레라, 동학교도들이 방역했다고?
37. 1815년 탐보라 화산 대폭발 이후 전 세계의 역사가 바뀌다
38. 조선 멸망의 시발점은 왜 하필 사쓰마와 조슈였을까?
39. 조선의 아이돌 바우덕이가 경복궁 중건의 일등 공신?
40. 찹쌀떡 행상에서 주미공사까지, 매국노 이하영의 인생
41. 조선의 남자 조리사 안순환의 요리 그리고 을사늑약
42. 대마도는 우리 땅이다
마치며_ 역사와 상상력이 만날 때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지배층은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도 온갖 날조와 왜곡과 말도 안 되는 상상들을 보태서 참으로 불편하고 이상한 역사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머나먼 과거일지라도 자기들의 기득권 카르텔에 조금이라도 손상이 간다 싶으면 조상의 과거까지도 깨끗하게 세탁한다.
_<시작하며> 중에서
거기에는 3대에 걸친 비열한 매국노의 삶이 있었다. 예씨 집안은 고국인 백제를 팔아서 당나라 고위 관직과 귀족의 삶을 살았다. 이러니 국가가 멸망의 위기에 다다랐을 때, 무슨 애국과 부흥 운동의 삶을 강조하겠는가? 우리는 그런 줄도 모르고 삼천궁녀 설화나 믿고 오해하며 살았던 것이다. 예식진의 매국 행위에 700여 년을 내려온 백제의 모든 자존심과 문화유산이 사라져 버렸다. (…) 의자왕은 태자 부여 효를 데리고 웅진성으로 거처를 옮긴다. 피난이라고 많이들 쓰던데, 나는 피난이 아니라 정상적인 통치 행위로 본다. 여기에서 항전 의지를 다시금 천명하던 백제 의자왕은 뜻밖에 웅진성 태수 예식진으로부터 배신을 당해 체포된다.
_<1부 5_백제 멸망의 순간, 민족의 반역자 예식진> 중에서
여진 정벌군의 원수 윤관 장군은 이 듣기만 해도 험준한 곳에 9개의 진을 세워 남측의 백성들을 옮겨 살게 했다. 그런데 이 동북 9성이 세워진 뒤 고작 2년이 지난 1110년, 여진족들은 제발 동북 9성을 돌려 달라고 고려 왕실에 애원을 했다. 이런 와중에 고려 왕실이 결국 돌려주기로 하는데, 그 이유는 ‘너무 멀어서 효과적으로 관리하기가 힘들다’라는 것이 주종을 이루었다. ‘너무 멀어서’, 이게 상상력의 포인트가 된다. 아니, 상상력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史實)의 포인트가 된다.
도대체 동북 9성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쯤인가? 9개의 군진을 설치했다면 어디 어디가 9성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우리 역사학계는 아직도 확정을 짓지 못하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현재 동북 9성의 소재지 대부분이 우리의 적대 국가인 북한 땅이라는 점이고, 두 번째 이유는 우리 스스로의 자학(自虐) 사관이다.
_<2부 11_윤관 장군의 공험진과 동북 9성, 그리고 연해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