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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기억

문학과 기억

강소희, 김영삼, 최윤경, 최창근 (지은이)
  |  
전남대학교출판부
2018-12-14
  |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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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기억

책 정보

· 제목 : 문학과 기억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한국문학론 > 한국문학사
· ISBN : 9788968495779
· 쪽수 : 318쪽

책 소개

인문학 학술총서 7권. 한국 사회의 중요한 정치적 사건과 문학적 재현의 양상을 재조명하고 그 속에서 권력의 담론지배양상과 이를 극복하는 문학적 시도를 조망하고 있다. 권력이 민중에게서 ‘자유’를 탈취해가는 과정을 고찰하고 이를 다시 회복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목차

제1부 사건과 재현

1980년대 ‘죽음’의 재현양상 연구 _강소희 / 16
오월을 호명하는 문학의 윤리 _강소희 / 54
‘객관적 폭력’의 비가시성과 폐제되는 식모들의 목소리 _김영삼 / 85
세월호 ‘사건’과 ‘사건’ 이후 문학의 가능성 _김영삼 / 122
이중적 예외상태로서의 5ㆍ18과 민중ㆍ민족문학 담론 _김영삼 / 158
소설이 ‘오월-죽음’을 사유하는 방식 _최윤경 / 197

제2부 권력과 자유

박경리 『표류도』에 나타난 ‘자유’ _최윤경 / 222
1950년대 실존주의의 유행과 ‘불안’에 대한 고찰 _최창근 / 241
1950년대 후반 ‘자유’의 해석을 둘러싼 갈등 _최창근 / 261
절대적 환대의 가능성에 대하여 _최창근 / 294

저자소개

최윤경 (지은이)    정보 더보기
현대소설이 전공이고 전남대학교에서 「《화두》에 나타난 근대성과 소설 형식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학위논문의 후속연구로 《화두》에서 최인훈 소설 전체로 범위를 넓혀 소설의 형식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대표 논문으로 「「광장」 개작의 의의: 폭력에 대한 인식의 변화」, 「소설이 오월―죽음을 사유하는 방식: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중심으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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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 등에서 현대문학과 비평을 강의하고 있다. 역사적 ‘사건’과 문학적 ‘재현’ 간의 정치철학적 이행관계에 관심을 두고 「1960년대 소설의 정치철학적 연구」(전남대 박사학위논문)를 썼다. 이후 「세월호 ‘사건’과 ‘사건’ 이후 문학의 가능성 1,2」, 「재현 너머의 5 ? 18, ‘타자―되기’의 글쓰기」, 「이중적 예외상태로서의 5 ? 18과 민족 ? 민중 문학담론」 등의 연구논문으로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1960년대 한국문학》(공저), 《창의적 글쓰기》(공저), 《논리적 말하기》(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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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희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와 동신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전공은 현대문학비평이다. 전남대학교에서 「1980년대 한국소설에 재현된 주체의 정치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정치철학의 개념과 이론을 바탕으로 80년대 문학장을 읽어내는 연구를 하고 있다. 대표 논문으로는 「타자를 재현하는 영화의 윤리적 태도―탈북자를 다룬 영화들을 중심으로」, 「오월을 호명하는 문학의 윤리―임철우의 《백년여관》과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중심으로」, 「1980년대 ‘죽음’의 재현 양상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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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근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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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제1부 사건과 재현

1980년대 ‘죽음’의 재현양상 연구
강소희

사건으로서의 ‘죽음’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는 ‘오월광주’가 원-사건으로 자리한다. 80년 5월 18일, 전남대 정문 앞 시위를 시작으로 27일 도청에서의 마지막 항전에 이르기까지, 국가폭력이 낳은 광주시민들의 죽음이 그것이다. 철저한 광주의 고립화와 언론 통제로 인해 ‘유언비어’로 존재하던 이 사건은 점차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되어 산 자에게 전해졌고, 이후 오월광주는 80년대 정치적 투쟁의 중심적 시공간이 되었다.
매년 오월이 되면 광주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연일 벌어졌다. 유족과 광주시민을 중심으로 소규모로 치러지던 5ㆍ18 추모제는 83년 단계적 유화조치 이후 사면ㆍ복권된 민주인사와 학생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로 확대되었고, 이때부터 ‘민주’를 외치는 장소마다 ‘광주의 영령들’이 호명되었다. 나아가 오월광주는 한국사회에 만연하던 국가폭력이 국민의 몸을 파괴하는 현장을 적나라하게 증언하는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현존하는 국가 체제의 정당성에 근본적인 질문을 불러일으켰으며, 열흘간 광주시민들이 보여준 저항과 연대의 구성체는 혁명과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은 오월광주가 남긴 이러한 요구와 질문에 응답하고, 그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시도들 속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한편 80년 5월 30일 광주의 진상을 알리는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남기고 기독교 회관에서 투신한 대학생 김의기와 같은 해 6월 9일 노동 3권 보장과 광주 학살에 대한 전단을 배포하다 신촌역 부근에서 분신한 노동자 김종태를 시작으로,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던 87년을 지나 91년 5월 투쟁에 이르기까지 수십 명의 학생과 노동자가 운동의 과정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보다 더 많은 이들이 투쟁의 과정에서 국가폭력에 희생되는데, 전두환 정권은 이들의 죽음을 병사나 사고사로 은폐ㆍ조작하고, 폭력의 흔적을 지울 수 없는 시신을 탈취하여 매장ㆍ화장하거나 거리에 유기하는 일이 허다했다. 특히 사회운동을 하던 젊은이들이 군에 입대한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하거나, 수배 중이던 노동자와 대학생이 대공과에 연행된 후 시신으로 발견되곤 했다.
이처럼 80년대는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이 일상화된 “예외상태가 상례”화 된 시간이었고, 산 자들은 바로 이 죽음을 운동의 근원적 동력으로 삼아 새로운 정치적 공간을 구성하고 저항과 연대를 실천하고자 했다. 본 논문에서 주목하는 것은 바로 80년대를 특징짓는 하나의 사회적ㆍ정치적 현상으로서, 국가폭력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건으로서의 죽음’이다. 죽음에 사건의 지위를 부여하는 까닭은 우선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생로병사의 마지막 관문으로서의 자연스러운 죽음과 변별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오월광주를 중심으로 국가폭력에 의해 발생한 죽음을 80년대의 정치적 주체들을 탄생시킨, 바디우적 의미에서의 ‘사건’으로 해석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죽음은 우리의 감각과 경험을 초과하는 대상이다. 죽음이란 ‘아직’ 경험되지 않은 것으로 삶에 ‘이미’ 각인되어 있다는 점에서 감각과 경험체계의 공백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살아있는 자에게 죽음은 언제나 타인의 죽음을 통한 추체험일 수밖에 없고, 또한 살아있는 자들의 기억과 언어를 통해서만 죽음은 현존하는 것이 된다. 죽음이 지닌 이러한 아포리아는 무엇보다 죽음이 재현의 대상이며, 재현된 것을 통해서만 접근가능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죽음은 ‘알 수 없는 것’으로 끊임없이 재현의 욕망을 추동하며, 우리는 ‘알지 못하는 자’의 언어로 재현된 것을 통해서만 비로소 죽음에 다가선다. 따라서 80년대의 죽음에 주목하겠다는 것은 죽음의 재현과 이를 둘러싼 담론을 읽어내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공존한다. 하나는 현실, 사건, 사물 등을 ‘다시(re) 나타내다(present)’이며, 다른 하나는 이를 통해 나타난 것들을 ‘대표하다(represent)’이다. 문제는 재현이 지닌 의미의 이중성, 즉 ‘나타냄’과 ‘대표함’이 종종 서로 전이되거나 착종되어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이때에 재현한다는 것은 ‘나타냄으로서 대표함’ 혹은 ‘대표함으로 나타남’으로 귀결되며, 이는 80년대의 죽음을 둘러싼 재현의 장에 있어서도 대표와 잔여를 분리ㆍ호명하는 포섭과 배제의 이중적 전략이 작동되었음을 방증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다음의 두 가지 작업을 진행한다.
하나는 당대에 생산된 기사와 민주화운동단체들의 성명서, 추모사, 발기문 등의 자료를 대상으로 80년대의 죽음이 재현되는 양상을 분석하는 것이다. 특히 국가 공동체와 민족ㆍ민중 공동체의 경계를 설정하고, 그 공동체의 주권권력을 회복ㆍ전복하려는 지배권력과 저항세력의 정치적 기획이, 죽음을 몇 개의 고유명으로 고정화하는 상징전략에 주목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 고유명에서 배제된, 죽음의 잔여를 형상화하고 있는 김소진의 소설 「열린사회와 그 적들」과 6월 항쟁 당시 명동성당에서의 농성과정을 담은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명성, 그 6일의 기록>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87년 6월 항쟁 이후 지배적 담론 속에서 혁명의 곤경으로 취급되었던 ‘빈민’의 존재와 이들이 꿈꾸었던 ‘민주화’에 대해 탐색해보고자 한다.
본 논문의 주제와 연관된 80년대 죽음에 관한 연구는 죽은 자들의 이름과 삶을 사실적으로 기록ㆍ정리하고 죽음의 구체적인 원인을 확인ㆍ기술하는 작업을 제외한다면, 오랜 시간 학술적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이는 물론 객관적 학문의 연구 대상이 될 만큼, 80년대에 대한 연구자들의 시간적ㆍ감정적 거리가 확보되지 못한 탓이 크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동안 80년대의 죽음이 진보와 보수라는 틀 속에서 정치적 아젠다를 위한 사건으로 호명됨으로써, 강력한 정치색을 띤 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교적 최근 몇 년 사이에, 주로 역사학과 사회학 분과에서 죽음을 통해 80년대를 이해하려는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이 결과물들을 ‘열사’에 대한 연구로 묶을 수 있는데, 김원, 김정한, 천정환의 논의가 이에 해당한다. 먼저 김원은 열사의 죽음이 적대와 분노의 정념을 생산함으로써 새로운 정치 공동체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는 과정을, 김정한은 열사의 죽음을 추모하는 행위를 통해 열사를 정치주체의 모범으로 상징화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한편 천정환은 노동열사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전태일의 죽음으로부터 2000년대까지 꾸준히 이어진 노동자들의 ‘자살’에 주목하고, 열사의 죽음에 내포된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해 살피고 있다. 특히 저자가 문제 삼는 것은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이후 노동자들의 죽음이 잇따라 일어남에도 이것이 집합적 연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숭고한 개인의 희생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노동자들을 출구 없는 압박”으로 몰아가는 노동현실과 “노동운동이 처한 심각한 위기 상황의 반영”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열사’에 대한 연구들은 노동자가 처한 한계상황에 대해 동일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과 전망을 80년대의 사회운동에서 발견하려는 시도들이다. 이는 오랜 시간 학술적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죽음을 가능성을 품은 하나의 사건으로 다시 사유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노동의 성격과 노동자가 처한 현실이 80년대와 동일하지 않은 것처럼, 80년대의 운동방식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으며 지금의 대안이 될 수도 없다. ‘열사의 정치’는 이미 실패한 형식이며, ‘열사’란 그 과정에서 죽음에 부여된 고유명이다. 따라서 실패의 고유명을 읽는 작업만으로는 부족하다. 죽음을 상기하는 것이 정치적 가능성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유명의 잔여들, 봉인된 기억의 영역이 발견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작업이 계속될 때 천정환의 바람처럼 오늘날 “노동자 주체의 재구성”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이 재현된 것을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라면, 문학을 비롯한 예술은 죽음의 잔여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이라는 믿음이 본 연구의 시작점이다. 개별적 인물과 사건들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선형적 시간 속에 배치한 결과물이 역사라면, 이렇게 서술된 역사는 우리의 공식기억과 상징체계를 공고히 하는 지배적 요인으로 작동한다. 반면 문학은 근본적으로 이 매끄러운 장에 균열을 일으키는 작업이다. 문학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봉인된 사건과 잊혀진 기억들, 당대의 상징체계에서는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비루하고 남루한 존재들 속으로 파고들어가, 우리의 공식기억과 상징체계의 구멍 뚫린 맨얼굴을 드러낸다. 따라서 본 논문은 80년대의 죽음이 어떻게 포섭과 배제의 이중 과정을 거쳐 왔는지를 비판적 시각에서 분석하고, 배제된 죽음과 그 속에 담긴 꿈이 형상화된 문학적 파편들을 찾아 읽음으로써, 80년대에 대한 지배적 담론과 기억에 새로운 분절화를 일으킬 계기를 발견하려는 시도의 첫걸음이다.

국가폭력의 정당화와 제거되는 ‘비국민’
1980년대는 무엇보다 죽음이라는 공백과 대면한 시대였다. 특히 국가폭력이 일상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이로 인한 시민들의 죽음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상황은 신군부의 정당성에 봉합할 수 없는 균열을 가져왔으며,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사유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때 죽음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의 문제는 현존하는 정권과 이에 저항하는 세력이 구성하려는, 공동체의 경계를 설정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죽음을 재현하는 일이 곧 정치적 행위였던 것이다.
따라서 신군부가 생산했던 5ㆍ18 담론의 상징전략은 바로 국가폭력의 정당화였다. 중요한 것은 국가가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행사했는가’하는 문제에 놓여있는 것이다. 전쟁과 같이 국민의 안전과 생존이 불안한 상황에서 이를 위협하는 대상을 향해 무력을 사용했다면, 그것은 국민을 지키기 위해 행사된 정당한 폭력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군부의 5ㆍ18 재현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국가가 지켜야 할 국민과 무력으로 제압해야 할 대상을 구별하는 것, 즉 국민과 비국민의 경계를 설정하는 일이었다.

지난 18일 수백 명의 대학생들에 의해 재개된 것은 상당수의 타 지역 불순인물 및 고첩들이 사태를 극한적인 상태로 유도하기 위하여 여러분의 고장에 잠입, 터무니없는 악성 유언비어의 유포와 공공시설 파괴ㆍ방화, 장비 및 재산 약탈행위 등을 통하여 계획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 선동하고 난동행위를 선도한데 기인된 것입니다. 이들은 대부분이 이번 사태를 악화시키기 위한 불순분자 및 이에 동조하는 깡패 등 불량배들로서 급기야는 예비군 및 경찰의 무기와 폭약을 탈취하여 난동을 자행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들의 극한적인 목표는 너무나도 자명하며 사태의 악화는 국가 민족의 운명에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 명약관화한 것이 사실입니다. 본인은 순수한 여러분의 애국충정과 애향심이 이들의 책동에 현혹되거나 본의 아니게 말려들어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파탄을 자초하는 일이 없도록 조속히 이성을 회복하고 질서유지에 앞장서주시기 바라며 가정과 지역의 평화적 번영을 위하여 맡은 바 생업에 전념해 주시기를 충심으로 당부하는 바이며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처음으로 신군부가 국민의 경계 밖으로 밀어낸 대상은 ‘깡패와 불량배 등 현실불만세력’이다. 인용문은 계엄사령관 이희성의 첫 번째 담화문으로, 이는 오전 방송을 통해 발표했던 것을 수정해 신문에 게재한 것이다. 오전 발표에서는 “서울을 이탈한 학원 소요 주동 학생 및 깡패 등 현실불만세력이 대거 광주로 내러가 사실무근한 유언비어를 날조해 퍼트린데 기인”한다며, ‘학생과 깡패’를 5ㆍ18의 핵심집단으로 동시에 지목했다. 그러나 신문에 게재된 담화문에는 학생들의 평화적인 시위와 깡패ㆍ불량배의 폭력적인 난동을 구분하고, 불만세력의 선동에 의해 학생들이 시위를 일으킨 것으로 수정된다. 그리고 이러한 학생과 폭도의 구분은 “법을 어기고 난동을 부리는 폭도는 소수에 지나지 않고 대다수의 주민 여러분은 애국심을 가진 선한 국민임을 잘 알고 있”다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다수의 선한 국민과 소수의 악한 폭도를 분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신군부의 첫 번째 상징전략은 전체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소수 폭도들의 사건으로 5ㆍ18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재현의 틀 속에서 계엄군의 폭력은 국가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소수 폭도들을 향해 불가피하게 행사된 정당한 무력행위로 규정된다. 그러나 사건 발생 초기에 5ㆍ18의 핵심세력으로 지목되었던 ‘현실불만세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뒤로 물러나는 양상을 보인다. 왜냐하면 소수 폭도들에 의한 사건이라는 재현은 5ㆍ18이 광주시민의 항쟁으로 확장됨으로써 설득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주시민을 움직이게 만든 원인, 즉 ‘지역감정’과 ‘배후세력’을 발명하는 것이 신군부의 두 번째 전략이었다.
이희성이 31일에 발표한 담화문에는 처음에 언급되지 않았던 두 인물이 5ㆍ18의 배후세력으로 새롭게 등장하는데, 바로 간첩 이창용과 정치인 김대중이다. 남파간첩 이창용으로 제시된 북괴의 고첩과 이에 협력하는 불순분자들, 그리고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학생들을 배후에서 조종해온 김대중을 ‘광주폭동사태’의 배후세력으로 지목한 것이다. ‘불순분자 및 고첩’은 사건 발생에서부터 줄곧 비국민으로 지목된 대상이었다. 6ㆍ25전쟁에 대한 역사적 기억과 남북분단이라는 정치적 상황은 국민이라는 공동체를 상상하는 데 있어서 북한을 중심적 타자로 자리하게 했다. 특히 정권의 정당성에 균열이 벌어질 때마다 북한과 간첩의 존재를 부각시켜 위기설을 유포하고, 북에 대한 적의를 고취시키는 반공교육을 시행함으로써, 당시 ‘북한’을 국민의 타자로 설정하는 구도는 익숙하고도 유효한 것이었다. 간첩 이창용의 등장은 신군부가 주동세력의 한 축으로 지목한 ‘불순분자’에 이름과 사건의 경위를 실재하는 것처럼 부여해 빈약한 설득력을 메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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