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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시인과 시학

남도의 시인과 시학

김동근 (지은이)
  |  
전남대학교출판부
2019-01-31
  |  
18,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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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시인과 시학

책 정보

· 제목 : 남도의 시인과 시학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한국문학론 > 한국시론
· ISBN : 9788968495953
· 쪽수 : 320쪽

책 소개

남도 지역에서 발아한 시문학 정신의 통시적 흐름을 추적하는 동시에, 한국 근ㆍ현대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시기마다 공시적 주체로서 남도의 시문학이 수행해온 시대적 소통의 양상을 탐색한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다.

목차

제1부 총론
남도 시문학의 어제와 오늘 / 김동근 / 10

제2부 남도 서정의 시니피에
조운 시조의 현실 의식 / 최호진 / 36
박흡 시의 죽음 의식 / 정병필 / 60
최하림 시세계의 내포와 외연 / 김미미 / 90
식민지 지식인 임학수의 전향 논리 / 김혜미 / 136

제3부 남도 시인의 시니피앙
여상현 시의 현실 대응 전략 / 정민구 / 168
목일신 동시의 아동 이미지 형상화 / 정다운 / 192
이수복 시의 문장 부호 역할 / 김민지 / 212

제4부 서정의 힘, 의미 작용의 미래
지향과 의식의 작용, 범대순 시론의 의미구조 / 김동근 / 238
의식과 의미의 양립, 문병란의 구성적 발화 / 최혜경 / 267
광주의 봄을 위한 엘레지 / 김청우 / 298

저자소개

김동근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2021년 현재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 현대시에 대해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현대문학이론학회, 한국지역문학회, 한국비평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계간 『문예연구』 올해의 평론가상(1998), 광주광역시 문화예술상 박용철문학상(2019)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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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남도와 예향,
그리고 남도 시문학의 뿌리

흔히 광주와 전남을 ‘남도’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런데 그 명칭이 함의하고 있는 의미는 단순히 지역적 경계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게의 경우, 남도라는 이름이 문화예술적인 특질을 함께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남도에 부여된 그 문화와 예술적 특질 또는 가치가 바로 ‘예향’이다. 광주와 전남이 1987년을 기점으로 행정적으로 분리되었다 하더라도, 남도는 그 행정적 경계를 넘어 오랫동안 하나의 뿌리에서 싹튼 문화적 특질과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남도를 ‘예향’이라고 일컫는 것은 예로부터 문학을 필두로 예술의 전통이 살아 숨 쉬며 오늘에까지 면면히 계승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온후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살아온 삶의 성향이 남도를 특히 운문적 형상을 즐기는 시문학의 모태이자 산실이 되게 하였다. 우선 남도의 지세만 보더라도 산자수명한 자연풍광의 모든 실체들이 문학적 요소로 어우러지기에 부족함이 없다. 예부터 산문은 북이요, 운문은 남이라 일컬었던 점 역시 이를 말하고 있거니와, 역사적으로도 학문적 지향이 농후했던 경상도에 비해 전라도에는 시가의 문학적 요소가 뿌리 깊게 산재되어 있었다는 점도 이를 반증한다.
남도창을 위시한 서편제, 남종화 등 이 지역에서 꽃피운 예술적 실체가 한국 예술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그 중에서도 남도를 예향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담양을 중심으로 누정 가단을 형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문학적 흥취를 발현시켜 온 가사문학이라 할 수 있다. 가사문학으로 대표되는 남도의 시가문학은 이러한 예술 영역 중에서도 특히 오래된 전통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정서와 사상을 집약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예향 남도의 가치를 가장 확실하게 담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도를 한국 시문학의 산실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전통으로부터 기인한다. 고려시대 해동 제일의 문장가이자 시인이었던 김황원이 이 지역에서 났으며 조선시대 시가문학의 본류인 시조와 가사의 완성과 융성이 면앙정, 식영정 등 남도의 가단과 시인들에 의해 주도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영남권에서 서원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이 흥성하였다면, 호남권에서는 가단을 형성하여 시가문학을 미학적으로 완성시켜 왔던 것이다. 송순, 임억령, 정철, 임제, 김인후, 백광훈, 윤선도 등 수많은 시인들에 의해 창작된 남도의 시가문학은 시어 구사, 표현 기교, 구성의 정교함, 섬세한 정조 등에서 타 지역 시가문학과는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예술성을 갖추고 있다. 이들이 남도문학뿐만 아니라 조선의 시가문학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남도 시문학의 뿌리가 곧 한국 시문학의 원천이라해도 무방할 것이다.
한국 시문학사에서 남도 시문학이 갖는 위치는 이러한 전통으로서의 의미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 지역에서 발아한 이러한 시문학 정신이 통시적으로 면면히 계승되어 왔음은 물론이려니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한국 시문학의 양식적 변화를 추동해온 강력한 진원지 역시 남도라 할 수 있다. 즉 우리 근ㆍ현대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시기마다 남도 시문학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었고, 독보적인 시인들이 등장하여 그에 상응하는 공시적 실체로서의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남도에서 구한말이나 개화기의 시문학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이런 점 때문에 초창기의 한국 근대시를 논하는 자리에서 광주ㆍ전남이 배제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는 우선 우리의 근대화 통로가 서울과 평양, 부산이었다는 점에서 찾아진다. 이는 근대화 과정에서의 문단 형성이 중앙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광주ㆍ전남은 개화의 중심지인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정치ㆍ문화적으로 지역적 한계를 갖고 있었던 만큼 서구 문화의 충격도 비교적 늦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근대문학의 초기 형성과정에서 이 지역의 문인을 찾아보기 어렵게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남도에서는 오히려 판소리나 가사, 한시 등 전통문학의 자산들이 계승될 수 있었고, 무조건적이고 서구 편향적인 오류를 줄일 수 있었다고 보인다. 이러한 경향이 1930년대까지도 이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 광산 출신 명창 임방울과 1932년 ‘목포시사(木浦詩社)’라는 정자를 지어놓고 봄과 가을에 두 차례씩 전국 규모의 한시 백일장을 열었던 무정(茂亭) 정만조 등의 활동이 이를 반증한다. 이런 점에 비추어볼 때 상대적으로 근대화 과정이 지연되었던 광주ㆍ전남의 경우, 비록 개화기의 시적 성과를 뚜렷하게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우리 문학의 전통성을 더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 한국의 시가문학은 개화가사와 창가, 신체시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 시가문학이 역사적으로 면면히 이어온 문학적 발화의 내재적 전통을 무시하고 서구의 시문학을 흉내 내기에 급급하였다. 특히 최남선과 이광수의 신체시는 서구화의 모델이었던 일본 근대시에 대한 모방의 결과물이었다. 이에 반해, 구한말에서 개화기에 이르는 근대 전환기에 남도 시문학의 실체는 전통양식으로서의 한시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그 대표적 시인이 광양 출신의 매천(梅泉) 황현(黃玹)이다.
1855년 음력 12월 11일 광양군 봉강면 서석촌에서 태어난 황현은 당대의 대문장가인 이건창(李建昌)과 정만조(鄭萬朝)에게 극찬을 받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시문에 재능을 보였다. 그는 1864년 흥선대원군의 집정부터 1910년 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 구한말의 역사를 기록한 『매천야록(梅泉野錄)』을 집필한 역사가이자 문장가이지만, 1910년 한일합방의 치욕을 당하자 칠언절구의 절명시(絶命詩) 4편을 남기고 56세를 일기로 자결한 애국지사이자 시인이기도 했다. 남도의 시문학사에서 매천 황현이 갖는 의의는 결코 작지 않다. 그것은 조선시대 시조ㆍ가사문학 이후 근대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공백기로 남을 뻔했던 광주ㆍ전남의 시문학사를 이어주는 지렛대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시문학이 비록 근대적 양식이 아닌 한시 양식을 취했다 할지라도 아래 작품처럼 당대의 창가류 시가에서는 보기 어려운 민족 주체로서의 근대의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鳥獸哀鳴海岳嚬 조수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槿花世界已沈淪 무궁화 세상이 이젠 잠기고 말았네.
秋燈掩卷懷千古 가을 등불에 책 덮고 옛 세월 생각하니
難作人間識字人 사람 세상에 지식인 노릇 어렵구나.
- 황현, 「絶命詩」 제3수

曾無支厦半椽功 나라 떠받친 서까래 같은 작은 공로도 없으니
只是成仁不是忠 다만 仁을 이뤘을 뿐 忠을 이루지 못했구나.
止竟僅能追尹穀 겨우 尹穀을 뒤 따라 목숨 끊는 것으로 그칠 뿐
當時愧不섭陳東 그때의 陳東처럼 직언하지 못한 것이 부끄럽구나.
- 황현, 「絶命詩」 제4수

위의 시 제3수는 한일합방으로 인해 무궁화강산이 짓밟혀버린 데 대한 회한을 노래하고 있으며, 제4수는 중국 송나라 때 몽고의 침략을 받자 자결을 선택했던 윤곡(尹穀)과 황제에게 직언을 하다 죽임을 당했던 진동(陳東)이라는 두 충신에 관한 고사를 인용하여, 자결을 실행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심정을 자책의 방식으로 피력하고 있는 내용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황현의 충(忠) 사상이 임금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한시 양식을 빌어 쓰였다할지라도 기존의 한시들이 보여주었던 봉건적 충의 의미와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황현의 충은 개인과 민족과 국가라는 근대적 삶의 체계에 대한 인식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과 서구가 동시에 길항하고 있던 근대 전환기 우리 시문학의 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남도 시단의 형성,
근대시의 발아와 생장

남도의 근대 시문학은 근대세계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거부하거나 비판하였으며 과거 유산에서 전통을 추출해 내기도 하였다. 즉 광주ㆍ전남의 근대 문단은 시대적으로 전통의 단절과 계승이라는 모순되고 서로 위반되는 요소를 동시에 내재하면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통은 근대적인 정신에서 보자면 극복의 대상이지만, 식민지 현실이라는 민족이 처한 상황에서 보면 계승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양면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남도의 근대시를 발아시킨 두 시인이 목포의 김우진(金祐鎭)과 영광의 조운(曺雲)이다.
김우진의 시가 당시 동인지나 잡지에 일체 투고되지 않았던 관계로, 그동안 김우진에 관한 연구는 주로 연극운동의 측면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의 시 작품들이 『김우진전집』을 통해 알려지게 되면서 시인으로서의 김우진에 대해서도 새롭게 평가되고 있다. 1982년에 ‘전예원’에서 발간하고 2000년에 ‘연극과인간’에서 증보한 『김우진전집』에는 한시 5편과 더불어 자유시 48편이 수록되어 있다. 자유시 48편은 일본 유학시절인 1921년부터 자살 직전인 1926년 사이에 쓰인 것이다. 여기에 일기 형식으로 쓰인 시까지 포함한다면 60여 편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김우진이 당시로서는 다작이라 할 수 있는 자유시 작품을 창작했다는 것은 그가 일기에서 “속류(俗流)는 시를 치(嗤)한다 하여도 나는 시인이 될 것을 바란다.”고 쓰고 있는 것처럼 그의 시적 지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엇지면 그갓히도 따뜻하게
나의 몸을 검처 안으면서도,
엇지면 그리도
내의 가는 燈불에 바람질 하심닛가.
징상시럽게도 흰 이를
악물며
엇지나 畏怖의 춤을
그갓히 팟허 쥬심닛가.
- 김우진, 「아버지께」 일부

위의 시는 아버지를 모티브로 하여 1919년에 쓴 첫 작품이다. 이 시에는 반봉건적이며 반식민주의적인 김우진의 의식세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앞에서 논했듯이 김우진의 창작 활동은 관료형 지주였던 부친 김성규의 한시에 대한 차운시 형태로 출발하였다. 그리고 그의 부친의 한시가 봉건적 세계관에 입각해 시대에 대한 즉자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면, 김우진의 한시는 시대를 대자적으로 꿰뚫고자 했었다. 아버지와의 이러한 갈등이 위의 시 「아버지께」를 통해 자유시 형태로 표출되면서 김우진이 시적 전환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 이는 단순히 세대 간의 갈등을 노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대 또는 현실과의 불화를 형상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 형식이나 어법에 있어서도 초기 자유시로서의 성과를 분명하게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한국 시문학사에서 최초의 근대 자유시로 알려진 김억의 「봄은 간다」, 주요한의 「불노리」와 같은 해에 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매체를 통해 발표되지 않았던 관계로 「봄은 간다」나 「불노리」에 비해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시 「아버지께」를 다른 두 작품에 비교할 때 언어의 선택과 묘사에 있어서는 비록 거친 면이 있다고는 하겠으나, 근대적 자의식에 의해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시의식에 의해 형상화한 측면에서는 오히려 두 작품보다 앞서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한국 근대시문학사를 검토하는 자리에서 재론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天井, 鐵扉, 창 유리의 冷潮.
혼자 봄빛에 잠자는 外景,
온갖 중력으로 누르는 外圍,
그리고 기대어 앉은 신경을
마비시키는 피로.

육체는 잠자고
영은 방황할 때
겹겹의 벽으로 둘러싸는 外圍!
小宇宙의 이 안
내 존재까지 부정하려는 피로!
다만 뒤돌아보며
급히 부르는 書架!

나는 걷고자 한다.
月夜도사의 고난으로,
그런 무겁고 큰 外圍여!
- 김우진, 「피로」 전문

위의 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시에서 자유시로 전환한 김우진의 시가 아직 시적 형상화에 미숙성을 드러내고 있음은 물론이다. 또한 “낭만적 주정성과 상징주의적 요소에 폴 베를렌의 퇴폐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다거나, “시적 사유가 초월적ㆍ초역사적인 지점에서 이루어져 전통적인 사유보다는 서구적인 사유에 이어져” 있어 허무주의적이고 염세적이며 사변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당대의 대표적 시인이자 한국 근대시의 선구자로 인정되는 김억이나 주요한의 시, 나아가 1920년대 <백조파> 시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되는 한계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가 근대적 현실에 대한 인식의 깊이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근대시에 나타난 초기적 모습의 진전된 양태라 할 수 있는 것이며, 한국 근대시의 실체이자 남도 시문학의 자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가 남긴 이러한 자산이 1930년대 들어 목포를 중심으로 그의 동생 김철진이 주도한 『호남평론』의 문학 운동으로 연결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고 하겠다.
한편, 남도의 근대 문단은 1922년 창립된 영광중학원에 작문 교사로 부임한 조운(曺雲)에 의해 형성되기 시작한다. 조운은 『조선문단』 2호에 「초승달이 재를 넘을 때」라는 시조 작품을 발표하면서 중앙 문단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의 시조 작품으로는 『조운시조집』에 73편과 「법성포 12경」(『조선문단』 8, 1925), 「완산칠영(完山七詠)」(『조광』 2, 1935), 「영호청조(暎湖淸調)」(『조선문단』 12, 1925) 등의 서경시조가 전한다. 조운은 또한 <자유예원(自由藝園)>이라는 문학 서클을 만들어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에 행사를 갖고 장원한 작품을 ‘개벽사’에서 발행하는 여성 잡지 『부인』에 실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1922년 교원으로 부임한 목포 출신 박화성이 여기에서 세 번 장원하자 조운은 박화성의 소설가적 소질을 발견하고 소설 쓰기를 권하였다. 박화성이 단편 「팔삭동(八朔童)」과 「추석전야(秋夕前夜)」를 써 오자 이 중 「추석전야」를 춘원 이광수에게 보였으며, 춘원은 이를 1925년 『조선문단』 1월호에 추천 발표케 하였다. 이로써 박화성이 소설 부문에서는 최초로 중앙문단에 진출한 것이다. 이는 <자유예원>이 광주ㆍ전남 최초의 근대 문단으로 자리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박화성 역시 “내 문학의 온상이 영광”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조운이 비록 시조시인이었다고는 하나 전통시조의 고답적인 양식성에 머무르지 않고 파격적인 자유시형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근대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육당 최남선이나 가람 이병기의 신시조와도 확연히 다른 언어의식과 구조적 파격성을 보이고 있어 가히 전통과 혁신을 아우른 대표적인 시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운은 나아가 남도의 시문학사에서 근대 문단의 터를 닦은 선구자로서의 큰 의의를 갖는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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