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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69761118
· 쪽수 : 392쪽
· 출판일 : 2014-08-18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
2.
3.
4.
5.
6.
7.
8.
9.
10.
에필로그
저자소개
책속에서
지유는 뜬눈으로 밤을 새고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다행히 오늘은 휴일이라 출근할 일이 없었던 그녀는 아침나절 내내 모자란 잠을 보충하고 점심이 지나서야 겨우 눈을 떴다. 판다가 울고 갈 정도의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눈과, 퉁퉁 부은 얼굴은 누가 볼까 무서운 비주얼로 변해 버렸다. 게다가 이대로 침대에서 뒹굴다간 어제의 고민이 오늘까지 이어져 계속 삽질하다 땅굴파고 들어갈 것 같았다.
지유는 자신에게 가장 큰 구원투수이자, 싱크뱅크인 혜지를 호출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혜지도 바쁜지 간간이 전화로만 수다를 떨 뿐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멍한 머리를 흔들며 주방으로 들어가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들고 오디오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재생 시켰다. 진한 액체가 그녀의 둔한 움직임을 깨우는 순간 지유는 혜지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 건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지금 죽어 있습니다. 나중에 제가 환생하거든 그때 전화 드리겠습니다.]
여보세요, 라는 말을 할 타이밍도 주지 않고 흘러나온 멘트. 딱! 혜지다운 말이었다. 혜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자신의 지금 기분과는 상관없이 웃음이 나왔다.
“지금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아직도 자는 거니? 일어나!”
[야! 네가 친구냐? 내 목소리 심상치 않은 거 모르겠어? 나 진짜 요사이 힘들었단 말이다. 오늘 겨우 쉬는 날이고만. 게다가 어제 밤새고 일해서 아침에 잠들었단 말이야!]
그녀의 잠을 깨운 지유가 밉다는 듯 전화기 너머에서 혜지가 절규하듯 울부짖었다.
“나도 어제 밤새고 새벽에 잠들어서 지금 일어났거든! 너도 이쯤에서 일어나야지 않겠니? 그리고 죽어 있는 널 내가 깨웠으니 내가 너의 생명의 은인이시다! 지금 집에 기름기 좔좔 흐르는 갓 볶은 콜롬비아 수프리모 원두커피가 있는데, 그거 마시고 싶거든 얼른 뛰어와, 친구!”
[헉! 수프리모!]
콜롬비아 수프리모는 혜지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였다.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바로 혜지가 대답을 했다.
[기다려, 친구야! 나 세수만 하고 갈 테니까. 뜨겁고 아주 찐하게 한 잔 내려놓고 기다려. 나 지금 날아간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혜지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새도 아닌 게 날아온다니! 하여간 성질 급한 것은 알아줘야 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자신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자 믿는 사람이 혜지였다. 자신에게는 언제나 든든한 언니이자 후원자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정말 날아온 듯 빠른 시간에 도착한 혜지는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커피를 외쳐대고 있었다.
“야! 커피 커피 커피 내놔 봐!”
“숨 좀 돌리고 커피를 찾든가.”
커피만을 부르짖는 혜지를 위해 그녀는 얼른 에스프레소를 내렸다. 갓 내린 커피를 내놓자마자 혜지는 정신없이 한 모금을 마셨다.
“아! 이제야 내 친구 얼굴이 보이는구나.”
“퍽도 빨리 보이는구나, 친구야!”
커피를 마시고 있는 혜지를 바라보니 지금 그녀의 얼굴빛이 무척이나 안 좋아 보였다.
“무슨 일 있었어? 얼굴이 반쪽이 되었네.”
지유가 그녀를 걱정하며 물었다.
“말하자면 길어. 너무 길어서 밤새야 해. 나중에 날 잡아서 이야기하자. 도저히 눈물 없이는 듣지 못하는 스토리가 있단다. 그나저나 커피에 눈이 멀어서 할아버지한테 인사도 못 드렸네. 인사드리고 올게.”
의자에서 일어나려는 혜지를 붙들고, 지유는 텅 빈 조부의 방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할아버지 할머니, 지금 집에 안 계셔. 양평에 있는 별장에 가 계셔. 할아버지가 좀 안 좋으셨거든. 그래서 좋은 공기를 벗하고 싶다고 양평으로 가셨어.”
혜지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지유를 바라봤다.
“이런! 바쁘다는 핑계로 할아버지 근황도 모르고 살았구나. 죄송스럽네.”
“괜찮아. 너무 마음 쓰지 마.”
혜지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던지라 지유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런데 무슨 일로 날 호출했는가, 친구?”
지유는 혜지를 가만히 응시했다.
“혜지야……!”
“왜? 말해. 네 표정 보니 뭔가 심각한 것 같은데 말이지.”
“그러게. 내겐 심각한 일이네. 내가 무지하게 나쁜 년이 된 것 같아서 말이야.”
긴 한숨을 한 번 내쉰 지유는 그녀답지 않게 초점 없는 눈빛으로 창밖을 보며 심란한 듯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제 말이야, 석민 오빠하고 저녁을 먹었어. 그런데 그 자리에 정후 오빠랑 지금 내가 맡은 리조트 건의 법률담당 변호사가 같이 왔더라. 변호사가 여자인데 정후 오빠랑 제법 친밀한 사인가 봐. 평상시에 오빠 동생 하는…….”
심란한 목소리라고만 느꼈는데 뭔가 다른 뾰로통함이 들어 있는 지유의 목소리를 듣고서 혜지는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정후 오빠한테 막 이렇게 붙으면서 만지고 웃고 말이지, 아주 가관도 아니었어. 옆에서 보기에 짜증나더라. 나한테도 뭔지 모르겠지만 공격적으로 말하고. 그리고 정후 오빠도 그래, 그런 여자를 그냥 두더라니까!”
“그래서?”
혜지는 지유를 똑바로 보고 시니컬하게 물었다.
“응?”
“그래서 뭐? 네가 오빠의 애인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인 그 두 사람이 붙든지 말든지, 블루스를 추든 키스를 하든 네가 뭔 상관인데?”
“어? 그게…….”
지유는 혜지의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아직까지도 알 수 없는 감정이었으니까.
“아무튼 계속해 봐.”
“어. 그렇게 합석한 앞의 두 사람이 내 앞에서 짜증나게 하지,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양식을 먹지, 그래서 내가 좀 예민해져 있었나 봐. 집까지 석민 오빠가 바래다줬는데 차 안에서 갑자기 키스를 해 오는 거야. 내가 얼마나 놀랬게?”
지유는 그때를 떠올리며 정말 놀란 표정을 해 보였다.
“처음에 베이비 키스를 해 오는데 그냥 그러려니 했어. 그런데 갑자기 딥 키스를 하기 시작하면서 내 옷 속으로 손이 들어오더라고. 얼마나 놀랐는지! 그 느낌이 너무 싫어서 나도 놀랬어.”
“그래?”
아무렇지도 않은 듯 혜지는 지유의 반응을 받아들였고, 계속 말해 보라는 눈빛을 보냈다.
“응! 내가 10년 넘게 좋아하는 석민 오빠가 스킨십을 해 오는데 좋아야 하잖아. 그런데 그게 아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마냥 싫더라!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인데…….”
고개를 떨구며 지유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더 나를 짜증나게 한 건 정후 오빠가 그 변호사를 바래다주러 갔다는 거였어. 그것이 석민 오빠의 키스보다 더 신경이 쓰이고 못 견디겠더라. 나 나쁜 년 맞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 석민 오빠인데. 그런데 왜 거기서 정후 오빠가 더 생각나는 거냐고!”
“질투잖아!”
“응! 그래, 질투! 응? 뭐라고?”
혜지의 대답에 화들짝 놀라 쳐다보는데 혜지가 지유의 바로 앞에서 고개를 심하게 아래위로 끄덕였다.
자신이 질투를 하는 거라고?
지유는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이 엄습해 왔다.
“말도…… 안 돼.”
“말 된다!”
“내가 정후 오빠를 좋아하는 거라고? 이 유지유가?”
“응. 너의 지금 상태를 보건대 분명히!”
혜지의 단호한 말에 지유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기계적으로 혜지가 하는 말을 반복하기만 할 뿐이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지금의 모습은 질투가 분명했으니까.